2. 가족의 행복이 제 유일한 꿈이에요

오늘의 처방: 나만을 위한 글쓰기를 시작해 봅시다

by 김해랑

- 안녕하세요, 엉터리 상담사 K입니다. 제가 어떠한 전문성도 없다는 건 잘 알고 계시죠? 전 그냥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하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네, 알죠. 아주 잘 알아요. 지금도 침대에 엎드려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잖아요. 그닥 믿음직하진 않아요.


- 그런데 왜 제게 상담을 요청하셨나요? 전문 심리상담기관도 있는데.


일단 돈이 없고요. 심리상담이 50분에 10만원꼴인 거 잘 아시잖아요... 지금 회사를 관둔 상태라 아껴 살아야 해요. 아파서 그만둔 거라 회복되기 전까지 다시 일을 할 엄두가 안 나거든요. 음, 그리고 예전에 심리상담 받았을 때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이 있어요. 타인과의 상담으로 해결되는 부분이 있지만, 스스로 생각을 가다듬는 연습도 많이 해 둬야 나중에 혼자서도 다친 자신을 잘 보듬을 수 있다고요. 근데 사실 돈이 있었으면 전문 기관을 갔을 거예요. 솔직히 돈이 없어서...


- 아하! 그렇군요. 저도 돈은 없지만 오지랖이 넓어요. 제가 최선을 다해 오지랖을 부려드릴게요. 그런데 친구들도 꽤 있으신 걸로 아는데, 왜 저랑 이러고 계신가요?


미안하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아픈 걸 꽁꽁 숨기는 건 아닌데요. 그리고 힘들 때마다 이야기도 하곤 하는데... 그 친구들이 신경을 써줄 때마다 고마움과 동시에 미안함이 몰려와요. 그 친구들의 하루 중 일부가 저 때문에 눅눅해지는 것 같아서요. 당신은 어차피 나니까, 아무리 침울한 이야기를 해도 미안하지 않잖아요. 아, 이쯤에서 그만해야겠다, 하는 생각 없이 최선을 다해 눅눅해질 수 있으니까.


- 오랫동안 봉지 열어둬서 눅눅해진 과자도 나름 맛있는 법이죠. 좋아요! 자, 당장 생각나는 고민은 뭔가요.


사람들은 왜 살까요? 저는 사는 이유가 가족뿐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그만 살고 싶은데도 굳이 사는 이유가 그것뿐이에요. 전 한부모가정에서 외동으로 자랐는데요. 저를 키워주신 아빠께 '은혜 갚은 까치'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왔어요. 사실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라면 저는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을 것 같아요. 우울증을 오래 앓아서 순간순간 안 좋은 생각이 들 때도 '안 돼, 내가 먼저 가버리면 얼마나 슬퍼하시겠어.'하는 마음으로 버텼고요.


- '은혜 갚은 까치'로 표현할 정도로 아버님께 감사한 마음이 큰가봐요.


네, 어릴 때 저를 맡아 키우겠다는 사람이 아빠밖에 없었어요. 부모님이 이혼하셨는데, 귀책사유가 있던 쪽인 외가는 말할 것도 없었고, 애초에 저도 거기 가기 싫었고. 친가 쪽 조부모님은 저를 그닥 달가워하지 않으셨어요. 어릴 때 어른들이 방 안에 들어가 있어라, 하고 자기들끼리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거, 애들 귀에 다 들리거든요. 궁금하잖아요. 방문에 귀를 바짝 대고 다 듣는 거죠. 조부모님 입장에서 저는 자식의 새출발을 방해할지도 모르는 아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 잠들기 전에 불안이 불쑥불쑥 찾아올 때가 있었어요, 그 어린 나이에. '아빠마저 날 두고 떠나버리면, 나는 정말 혼자야.' 하면서 강아지 인형 하나를 끌어안고 애써 잠들기 일쑤였죠. 그 인형한테 말을 걸면서요. '너는 내 옆에 맨날 있어 줄 거지?' 결국엔 친가 식구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연이 끊어졌고.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상은 저한테... 아빠뿐이었죠.


- 힘든 세상을 둘이서만 의지하며 살아왔을 테니까, 유대감이 클 수밖에 없겠네요. 그래도 아버님을 제외하고 다른 것들, 당장 내일 죽는다면 아쉬울 만한 인연이나, 미래의 기회나, 뭐 그런 것들은 없나요.


있죠. 많죠. 그간 만나온 많은 사람들이 참 소중하죠. 그들과 다시 웃을 날이 없어진다는 건 많이 슬퍼요. 그들에게 슬픔을 안겨 주고 떠날 생각을 하면 심장을 찌그러트리는 것처럼 아프고요. 그런데 제가... 너무 아파요. 행복을 못 느끼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보다, 고통을 안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기대감이 더 큰 거죠. 이 아픔에서 해방될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이 강해지면 정말 위험한 순간이 오는 거고요. 그럼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병원 예약을 당장 내일로 당기고, 의사 선생님께 저 좀 위험한 상태인 것 같아요, 하고. 약을 늘리고...


- 음, 그럼 주변 사람들 말고요, 미래의 기회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으시네요. 죽으면 못 이룰 것들이 있잖아요. 직업적인 꿈이라던가.


그 자리가 사회에 필요한 자리라면 저보다 나은 누군가가 대신 잘 할 거예요. 사회에 그닥 필요없는 자리였다면 공석으로 둬도 괜찮을 거고.. 그러니까 제가 세상에 꼭 존재해야만 할 필요성은 없는 거죠. 아, 아빠를 위해서 집을 사 드리고, 노년기를 대비할 목돈을 마련해 드리고, 아빠가 기뻐할 직업을 갖고, 그런 것들은 못 하겠지만요. 근데, 그런 것들을 위해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것도 다 놓아버리고 싶어요.


- 가보고 싶은 곳은 없으신가요?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죠 뭐.


- 먹어보고 싶은 거는요?


입에 들어가면 다 똑같아요.


- 음, 디저트류를 굉장히 좋아하시는 걸로 아는데. 빵지순례같은 건 안 하고 싶어요?


상태 좋을 때는 세계일주도 꿈꾸죠. 근데 상태 안 좋을 때가 더 많으니까 댁을 찾아온 거잖아요. 지금은 배달 어플 키는 것도 귀찮아요.


- 아하, 음... 타인이나 사회에 필요하지 않은 생명체는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아까 사회가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아빠를 위해 하던 것들을 놓아버린다면 살 이유가 없다고 하셨는데.


아뇨 뭐, 본인이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거죠. 필요 없는 생명체는 살 가치가 없어! 이런 무서운 주장을 하려던 건 전혀 아니었어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고민 없이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겠죠. 그게 건강한 마인드죠. 근데 저는 좀 삐뚤려 있는 상태라서, 그냥 제가 삶을 정리하려고 되돌아 볼 때 제가 굳이.. 반드시 살아야만 할 필요성이 없다면 그냥 홀가분하게 떠나도 되지 않을까, 싶다는 거죠.


- 그럼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살아가시면 어때요. 해야 하는 일 말고.


하고 싶은 게 없는데요.


- 지금 무기력의 끝을 달리시나봐요.


그럼요.


- 음... 정리하면,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아버님이었고, 근데 지금은 그것마저 놓아버리고 싶다. 흠, 그렇게 마음이 변한 이유는 뭔가요? 유일한 이유 정도였으면 그걸 놓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지쳐서요.


- 지친다라...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드셨나요?


연기하는 거요. 충족되지 않는 기대를 충족시키려 노력하는 것도요. 내게 아무 문제가 없고 아무 고민이 없는 것처럼, 내가 무엇이든 씩씩하게 잘 해내고 있는 것처럼 안심시키는 게 이제는 너무 벅차요. 힘들다고 얘기하면 위로보다 상처가, 좋은 소식을 자랑하면 칭찬보다 아쉬운 소리가 되돌아오는 날이 많았거든요. 네가 게을러서 혹은 뭘 잘못해서 그런 거 아니냐, 좀 더 열심히 하면 더 잘 됐을걸, 뭐 그런 말들 있잖아요. 아빠는 제가 '잘 자라길' 원했어요. 엄마 없이 자라서 그렇다는 말을 듣게 하기 싫다고 하셨죠. 주변에 증명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거예요. 날 키우는 걸 다들 말렸으니까. 물론 가끔은 받고 싶은 위로를 받은 적도 있었어요. 근데 그거에 너무 감동해서 다음 번에도 의지하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 때 생각과 다른 답이 돌아오면, 비수가 두 배로 꽂히는 기분이에요. 기대가 꺾이는 거니까. 끝이 없는 계단을 계속 오르는 기분이에요. 한 계단 오르면 아빠의 기대는 두 계단 높아지는 기분. 이제는 너무 벅차서, 오르던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기분. 이미 굴러 떨어진 것 같기도 한데.


- 자유로운 비행의 시작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요. 그 계단만이 그간의 유일한 길이었다면, 거기서 낙하하다가 날개가 돋은 채 새로운 길로 비행할 수도 있는 거죠.


방법을 모르겠어요. 그럴 양분이 제게 없는 것 같아요. 그동안 너무 긴 시간을, '나의 행복'을 중시하는 습관을 안 들인 채로 살아왔어서.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날 잘 챙겨 먹이고 잘 입히고 좋은 것 구경시켜 주고 하는 법도 다 모르겠고. 그래서 새로운 길을 걸어갈, 걸어가기도 전에 발견이라도 할 용기가, 의지가, 다 없는 것 같아요. 너무 지쳐 있는 것도 같고.


- 그걸 해 보고 싶어서 저와의 대화를 시작하신 것 같은데요. 하품을 하면서도 키보드를 두들기는 이유가 그건 것 같고.


그렇긴 해요. 죽고 싶다고 말은 하면서도 사실 살아보고 싶긴 하거든요.


- 저와의 대화를 한 차례 끝낼 때마다. 숙제를 하나씩 내 드릴 거예요. 오늘의 숙제는 '다음 글도 꼭 쓰기' 입니다. 차근차근 알아가 보죠. 새로운 길을 탐색하는 방법을요.


사실 댁이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기는 한데요, 글쓰기는 제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해 볼게요.


- 좋아요, 그거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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