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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der Aug 29. 2024

해가 뜨겁다

추석이 다가온다

해는 뜨겁고 속은 타들어 갑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탄 거야?"

아내가 검게 탄 나의 팔을 보며 어디를 돌아다니기에 이렇게 탄 거냐고 묻는다. 최근 차가 고장 나서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한 것을 제외하면 딱히 돌아다니는 것은 점심시간 식사를 하러 돌아다니는 게 전부인데 도대체 언제 이렇게 검게 탄 것인지 궁금하다.


"요새 심적으로 힘들어!"

아내가 발령으로 고생이 많다.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계속 밀려오고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나한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기에 기도하라고 했다. 사람들이 바뀌길 기도하면 되냐고 묻기에, 사람들은 마흔이 넘으면 바뀔 수 없으니 그런 것은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답해준다. 차라리 바람에 날려 눈앞에서 안 보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게 더 빠를 것 같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서로 마주 보고 헛헛하게 웃어본다.


"계획은 변경되라고 세우는 걸까?"

계획을 세웠는데 되는 게 없다. 올해가 삼재라서 그런 걸까 의심도 해보지만 아무튼 무언가 계속 삐걱거린다. 이렇게 결정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해보지만, 지금의 상황이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많은 것들이 결정되어 떨어지고 우리의 인생은 그 떨어지는 것들을 등에 지고 감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신화 속 시시포스처럼 내일도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 바위를 산꼭대기로 계속 올리려고 노력하다가 은퇴하면 꼴도 보기 싫은 바위를 보지 않을 수 있을까 상상해 본다.


내 삶이 무기력의 연속이라면?_희망 없는 노동을 반복하며 살고 있는 시시포스의 후예들에게 p.41

“희망 없는 노동의 반복, 바로 그 낙담이 신들이 생각해 낸 인간에 대한 최대의 벌이었다.”

그리스 신화 중에서 <시스포스의 신화>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시시포스는 신들을 속인 형벌로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는 바위를 끝없이 산꼭대기로 다시 밀어 올려야 하는 희망 없는 노동을 반복한다. 시시포스에게 내려졌던 형벌은 ‘꿈의 박탈’이다.

“물질보다는 가치 중심의 지향점을 설정함으로써 “내 삶에 대한 열정”을 되살릴 수 있다.”

《나는 왜 일을 하는가?》(서기원, 바른북스, 2024.06.24.)


쌓여있는 문제 속에서 평온함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다.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 따위는 나의 일이 아니라고 평온한 얼굴로 배를 째고 있다. 밥벌이의 공포를 벗어난 평온한 얼굴을 보면서 열심히 사는 것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고민하게 된다. 하늘은 높고 태양은 뜨거운데 나는 어찌 태양을 피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싶다.

"밥벌이가 아니라 행복하려고 사는 게 인생이라고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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