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오는 유행처럼
사무실에서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오늘부터 도시락 먹기로 했어요."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분들이 도시락을 싸 오기 시작했다. 물가도 많이 오르고 딱히 맛집도 없는 지역에 월급은 오르지 않는 상황에 합리적인 선택이라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긴 이제 식당에 가도 한 끼 1만 원 미만의 메뉴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다들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고 저렴한 브랜드의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게 당연한 선택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최근에는 같이 밥 먹자는 선배들도 사라진 것 같다. 가끔 후배들과 같이 밥 먹고 계산해 주면 너무 좋아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 신입 때는 밥 사주는 선배들이 많았는데 요새 정말 밥 사는 사람도 사라졌구나 싶다.
"무슨 반찬 싸왔니?"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급식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도시락을 싸고 다녔는데, 서로 무슨 반찬을 싸왔는지에 따라 점심시간 옆자리 짝이 변하는 시기였다. 지금처럼 김밥이 흔하지 않은 시절 가끔 소풍인 형제가 있는 날에는 어김없이 싸 온 김밥을 서로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각자의 도시락 반찬을 통해 친구의 어머니들의 패턴과 성향도 알게 된다. 학기 말이면 목요일이면 이 친구는 오징어 진미채를, 저 친구는 돈가스 반찬을 싸왔구나 예측이 되었다. 가끔 반찬 대신 다른 것들을 싸 오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때 짝이던 친구는 항상 도시락 반찬으로 생당근과 마른 멸치를 싸왔다. 그래서 같이 마른 멸치의 머리를 떼어내고 같이 가져온 고추장에 찍어 먹었던 기억도 난다. 살면서 마른 멸치를 가장 많이 먹은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도 술안주로 마른 멸치를 주는 곳을 가면 그 친구와 먹던 마른 멸치가 생각나 반갑다.
"시발비용이야!"
가끔 맨날 어떻게 1,500원짜리 커피만 마시냐며 힘든 출근길 돌체라테에 샷을 추가하고 사이즈를 업하여 주문한다. 물론 다 마시면 눅눅해진 종이빨대같이 아쉬움이 남는다. 평소 마시는 아메리카노 6잔 가격의 사악한 돌체라테는 그래도 첫 한 모금만으로도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다. 이게 다 출근길이 험난하기 때문이라고 탓하지만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오늘도 언덕에 결국 굴러 떨어질 돌을 올리러 늦지 않게 출근하려 애쓴다. 그래 단 하루 만에 물려버린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가끔 맛집에도 가고 하는 게 인생이지 하며 대신 오늘은 아침부터 머리가 팍팍 돌아가겠구나 힘내본다.
돈의 숫자보다 구매력이 더 중요해요 p.26
내 월급은 제자리걸음인데 물가가 오른다면? 내 월급은 상대적으로 내려간 거나 다름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살 수 있는 물건의 개수가 줄어들거든요. 이처럼 내가 원하는 물건을 몇 개나 살 수 있는가를 따져봐야 하는데요. 이를 ‘구매력’이라고 해요. 구매력은 쉽게 말해 돈으로 교환할 수 있는 가치를 말해요.
이 구매력이 바로 물가상승률로 인해서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거예요.
단순히 생활비로 쓰기 위해 모아둔 돈이 아니라면, 물가상승으로 구매력이 떨어지는 내 돈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돈은 끓는 물처럼 계속해서 증발하고 있다는 점! 즉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서, 현금만 들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100% 잃는 투자’라 답할 수 있겠습니다.
《나도 돈이란 걸 모아보고 싶어졌다》(길시영, 부커, 2023.06.14.)
어렸을 때 도시락은 정겨운 느낌이었는데, 최근의 도시락은 힘든 밥벌이의 고단함으로 느껴진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빠르게 오르는 물가에 비하면 제자리걸음 중인 나의 월급은 계속 작게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다들 빠르게 올라가는 물가에 더 빠듯하게 절약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뉴스에서도 사무실에서도 보게 된다. 나도 모르게 모든 일에 가성비부터 따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이렇게 사는 게 잘 사는 방법은 아닐텐데 반성하게 된다.
"'그래서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할 날을 꿈꾸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