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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주 Oct 31. 2023

뭉치고 흩어지는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금요일 퇴근 후 출발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기차표가 모두 매진이었습니다. 요새는 이전보다 생각이 더 뻔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은데요. 마음을 먹었을 때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모른 척하곤 하는 스스로의 성미를 아주 잘 알기에 오후 반차를 썼답니다.


해가 짱짱할 때 기차를 타는 건 꽤 오랜만이었고 저는 바깥 풍경도 구경하고 간만에 여유로이 즐기고 싶었지요. 그러나 자리에 앉자마자 풍경도 여유도 아무 소용이 없어졌습니다. 뭐든 귀찮아지니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구요. 꿈인지 생시인지 어느 순간 이거 참 제가 두둥실 떠오르더니 잠에 빠진 저의 몸뚱어리가 보이는 것입니다. 감각이 지나치게 생생했던 탓에 단단히 돌아버리고 말았는가 두려운 마음이 울렁거렸지요. 잠시 후 역에 도착하니 미리 준비하라는 안내 방송을 듣고서야 마침내 분리된 제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정신이 현실과 멀어지면 안 될 텐데요. 자리에서 벗어나 기차에서 내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심장이 수억 수천 번 둥둥거린 것만 같았습니다. 무슨 정신으로 종착지로 향하는 버스를 잡아탔는지 여태 얼떨떨하군요. 몇 개의 정류장을 지났을까요. 익숙했던 몇몇 정류장에서 수많은 제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거여요. 무리 지어 재잘재잘 떠들고, 하염없이 발 장난을 치고, 가방 안을 스스로 와르르 쏟아내고, 지금은 다 없어진 그렇고 그랬던 시절의 각기 다른 저를 보았답니다. 쓸쓸했지만 왠지 모를 미소가 감돌았지요.


그 시절 저는 초록색이 되고 싶었습니다. 싱그러움을 가지마다 빽빽하게 담고 있는 한 여름의 나무를 보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하루 종일 웃으면서 다니는데 마음은 언제나 텅 비어있던 나날이었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에 익숙해지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었는데요. 솔직해지자면 저의 것은 괜찮으나 남들의 공허가 괜찮지가 않았습니다. 그들의 얼굴에 어리는 아쉬움을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네요.


궁금했습니다. 다른 이들도 저와 같이 하루에도 심장이 쥐어짜곤 하는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였습니다. 한 번 시작된 생각은 강이 되어 흘러갑니다. 생각을 끊어낼 수 없어서 삶을 그만두고자 하는 충동을 느끼기도 하였지요. 별거 아닌 일도 별거처럼 생각하고 지끈지끈 피곤을 생산하고 또 생산했습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지는 꽤나 명확했습니다. 왜 모두 저와 같지 않으냐는 그야말로 생각의 전제부터 아주 틀려먹었지요. 그때부터 저는 매일 남들은 그렇지 않음을 반복하였습니다.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아무래도 완벽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하였나 봅니다. 정말이지 낭패입니다. 매일 스스로 속상함을 생산하고 피곤하고 끝내 스스로 미치는 결말뿐이 없는 것 같으니요.


사람이 세상이 생이 너무 좋아서 너무 끔찍하다 느끼는 것도 다를 것 없습니다. 저는 저밖에 없어지는데요. 모든 것이 엉켜버리는 중에도 저만은 그대로 있기에 그렇습니다. 어쩌면 이게 다 제 욕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욕심 없는 척하는 사람이 욕심이 제일 많은 법이지요. 갖고 싶은 것은 다 가져야만 했고 실제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만족이 되었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 없습니다. 갖고 싶다는 욕망에만 몰입되어 그것의 실제성을 착각하였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언제나 제가 생각하고 행동한 것만큼 결과가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생각은 사실이 아니고 계산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들었는지요. 맞는 말이나 누군가 저를 궤 뚫었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불편해서 아닌 척 저는 사람이 세상이 생이 지겹고 기대하는 것도 욕심도 하나 없다고 그랬습니다. 아아 뻔뻔하기 그지 없군요. 잠시 지내다 가는 생에서 제가 이토록 서운한 이유는 여태 정신 못 차리고 모든 것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근본은 바뀌지 않고 저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생각하겠지요. 왜 모두 저와 같지 않을까요. 그런데 뭐 어쩌겠습니까. 무감은 간 곳 없고 책임은 제가 질 거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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