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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주 Nov 05. 2023

돌고 도는 시계

할아버지는 술을 자주 많이 마셨습니다. 그는 자신이 술을 마시는 것은 공부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며 말을 하고는 했는데요. 어린 저는 천진난만하게 주변에 할아버지 공부한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하고 어른들은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때 그 순간이 생각나고는 합니다.


과음을 한 날이면 힘이 없어집니다. 헤롱헤롱한 정신으로 한강변을 걷는데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이 정도는 견딜만한 것 같아서 발걸음을 계속하고 마침내 수문이 개방된 모습을 보는데 무섭더라고요. 쏟아지는 물보라에 잡아먹힐 것만 같습니다. 투신을 습관적으로 떠들던 멍청하고 가여웠던 저는 살아나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이제는 어쩐지 죽음을 무거이 느낀답니다.


변수를 받아들이며 스스로 돌아볼 여유도 생겼습니다. 무조건적인 행복을 왜 그렇게 맹목적으로 바라었을까요.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영원이 된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불행의 순간에서는 영원을 야금야금 당겨오면 되는 것이구요. 미뤄둔 일들도 어느 정도 해결되고 배부르고 등 따스웁니다. 비록 한순간에 놓치고 굴러떨어질지라도 굳어가기 전에만 해결하면 될 거여요.  


할아버지가 떠난 지도 어연 십 년이 지나갑니다. 그럼에도 그의 얼굴은 여전히 제게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가끔은 제가 모르는 그의 젊은 시절을 궁금해합니다. 언젠가 저 또한 지금의 저의 얼굴이 아닌 다른 얼굴로 저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보게 되겠지요. 주름살이 깊어지고 피부가 빛이 바랜 이연주는 과연 어떨지요. 지금도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지고 있을 겁니다.


존재는 소멸을 향합니다. 아름다운 것들은 도처에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리하여 언제나 스스로에게 한 줌의 거짓 없이 지낸다면 끝내 깨닫는 것이 있을 거라 저는 믿는답니다. 노화도 하나의 과정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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