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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천 Sep 30. 2024

로버츠 스테이시, 평양 신학교 2대 교장으로 헌신

진실한 목회자가 되도록 신학생을 가르친 선교사

로버츠 스테이시 선교사(라부열, 1881~1946)는 평양 신학교 2대 교장으로 25년을 헌신하며 한국 기독교 인재 양성에 힘을 기울인 선교사이다. 


그는 1881년 2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1904년에 라피에르 대학 문과를 졸업하고 1907년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대학 시절 목회자로 헌신하기로 결심하여, 신학교 졸업한 그해 미국 북 장로교 선교사로 임명을 받고 내한하였다.


그는 평양에 도착하여 마펫의 지도 아래 한국 풍습과 문화를 익혔다. 그래서 그의 한국 말투는 평안도 사투리를 사용하였다. 그 후 선천 지역에 배정되어 5년 동안 산간벽지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이때 양전백 목사(평양신학교 1화 졸업)가 협력하여 많은 도움을 받았고, 이승훈이 정주 오산학교를 설립하는데 적극 협력하였다.


그는 이 땅에서 사역 대부분의 시간을 평양 신학교에서 인재를 양성하는데 헌신하였다. 선천 지역에서 5년간 사역을 마치고, 1913년부터 평양신학교 교수로 봉직하였고, 1924년 2대 교장에 취임하였다.(초대 교장은 사무엘 모펫) 그는 평양 신학교 잡지인 《신학지남》에 다수의 논문을 기고하여 신학 발전에도 기여했다.


그는 프린스턴 신학교 출신 선교사처럼 보수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있어서 성경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변호했다. 그는 공관복음, 로마서, 바울 서신, 요한계시록 등 신약을 가르쳤는데, 신약 성경 전체 구절을 거의 암송하여 학생들이 질문하면 성경을 펴보지 않고 <몇 장 몇 절을 읽어 보십시오>라고 할 정도였다.


평소에는 과묵했으나, 강의 시간에는 학생들을 잘 웃겼고, 지루하지 않게 가르쳤다. 그는 신학생들에게 말하기를 <사역자는 재주는 부족하더라도 진실하면 된다>고 가르쳤고 특히 삶에서 진실한 삶을 실천하도록 지도했다.  따뜻하고 포용의 사람이었고, 그의 설교는 깊고 무게가 있어 심금을 흔들었다고 전한다.


일제의 신사 참배에 반대하여 끝까지 저항하다가 1938년 평양 신학교가 폐교되었고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출국당하였다. 미국으로 돌아간 지 5년 후인 1946년에 소천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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