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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처, 경북 의료 선교에 헌신한 선교사

대구 동산의료원 2대 원장 및 대구 애락원 설립

by 신재천 Jan 11. 2025

아취발드 플레쳐 선교사(Archibald Fletcher, 별리추, 1882~1970)는 대구 동산 병원 2대 원장으로서 병원을 발전시켰으며, 특히 대구 애락원을 설립하여 경상도에서 나환자 치료의 사명을 당했다.

그는 1884년 영국에서 태어나서 1909년 8월 북 장로교 의료 선교사로 내한하였다. 그는 원주로 첫 파송되어 의료 선교를 시작했다. 그러나 원주는 감리교 선교 구역으로 결정되면서, 3개월 만인 11월에 장로교 선교 지역인 안동으로 이동하였다.


그는 안동에 도착하여 금곡동에 가옥을 구입하고 집에서 진료를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안동 성소 병원의 시작이. 안동 성소 병원은 6.25 때 문을 닫았다가 해방 후 다시 운영되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당시 안동은 1908년 안동 선교부가 설립되었으나 의료 선교사가 없어 공식적인 선교부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플레처 선교사의 부임으로 정식 선교부로 인정받았다.


후 1910년 9월 대구로 이동하여 대구 동산병원 2대 원장으로 취임하여 1942년 일제에 의해 추방될 때까지 병원장으로 봉직하였다.(초대 원장인 존슨 선교사가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 그가 재직한 32년 동안 3차례 병원 건물을 확장하는 등 병원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동산 병원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한센병 환자에도 관심을 가져 한센병 치료기관인 애락원을 설립했다. 애락원은 한국에서 세 번째 한센병 환자 치료병원이 되었다. 그는 대구 부임 직후 남성정에 초가집을 마련하고 한센병 환자 20여 명을 수용하였는데 이것이 애락원의 시작이 된 것이다. 1914년에는 예배당이 세워졌고, 1916년에는 대구 내당동에 1백 명을 수용하는 벽돌 건물의 병원을 신축했다. 병원 건축은 베일리(영국 구라 선교회 설립자)의 후원금 5천 달러로 시작되었다.


* 대구 애락원은 여수 애양원과 부산 상애원에 이어 한국에서 세 번째 한센병 환자 치료 병원이다. 애락원은 1980년대 들어서 한센병이 소멸됨으로 인해 1995년부터 일반인 진료를 시작하였다.


그는 지역사회 발전과 복음 전도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1918년 대구 YMCA 발기위원으로 활동하여 지역 사회 발전에 협력하였다. 1921년에는 동산 병원 직원으로 구성된 전도회를 조직하여 산간벽지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고 백여 개의 교회를 설립하였다. 병원 직원들이 급여 1%를 모아 무의촌 의료 봉사와 함께 교회를 세우는 <1% 사랑 나누기> 활동을 전개한 것이 큰 효과를 발휘했다.


1942년 6월 일본에 의해 강제 추방 당하였으나 1946년 다시 돌아와서 세브란스 병원 복구 사업 및 조선 기독교 서회 이사로 활동하고 6.25 사변 때는 부산으로 가서 피난민 구호 사업을 관장하였다.


1952년 선교사 직에서 은퇴하고 미국으로 영구 귀국했다. 부인 제시 로저스는 1912년 독신으로 내한하여 활동하다가 플레처와 결혼하여 여성 전도 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한 선교사이다. 이들 부부 사이에는 3남매(두 아들과 딸)를 두었다. 그의 한국 선교 이야기는 2019년 소설 <너도 가서 그리하라> 제목으로 출간되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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