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거주 시 일본어 성경교재를 편찬
조지 윈 선교사(위철치, 1882~1963)는 1909년 9월 내한하여 부산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당시 부산에서 사역하던 사이더보탐(사보담) 선교사가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내다가 가스폭발 사고로 순직하면서 그 후임으로 내정된 것이다.
그는 부산에서 1914년까지 5년간 사역하였는데, 지역 교회를 순회하며 기존 교회를 돌보고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였다. 그가 돌본 교회로는 부산 초량교회, 제일 영도교회, 구포 교회, 김해 교회 등이 있다. 1913년에는 제일 영도교회 당회장으로 1년간 헌신하고, 한국인 정덕생 목사에게 인계한 기록이 있다.
1913년 예양 협정에 따라 부산이 호주 선교부 관할 지역이 되어 북 장로교가 철수하게 되었다. 이때 그가 북 장로교 협상 대표로서 호주 선교부와 재산 처분 등 행정 처리를 담당했다. 당시 북 장로교 대표로는 존 젠소(김소)와 그가 맡아서 북 장로교 자산을 정리했다.
* 존 젠소(김소)는 평신도 선교사로 재무 전문가
또한 당시 부산에서 사역하기 위해서는 한국어와 함께 일본어가 필요하여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하여, 1914년 일본어 교재인 <일본어 공부 50강>을 편찬하여 선교사들의 일본어 공부 교재로 사용되었다. 이 책은 현재 국립 한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는 부산에서 5년간 사역을 마친 후 1914년 대구 선교부로 이동하였다. 대구에서는 울릉도, 안동 지역을 대상으로 순회 전도 활동을 하였고 1921년에는 칠성정 교회(대구 칠성 교회)를 설립하였다. 1924년에는 위철치 선교사의 조사인 김봉도가 대구 중앙교회 창립 예배를 드린 기록이 있다. (대구 중앙교회는 대구 제일 교회에서 분리 개척)
그는 12년간 대구에서 사역한 후 1926년 서울 선교부로 이동하였다. 1934년 경기도 양평 곡수 교회를 복원하는 일에 협력하는 등 경기 지역에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서울 및 경기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귀국하였다.
해방 후 잠시 내한하였으나 1948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고, 1963년 6월 미국 애리조나 주 투스콘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미혼으로 한국에 왔으나, 1910년 블랑케 에시크 (1883~1955)과 결혼하여 슬하에 3남 2녀의 자녀를 두었다. 부인 에시크은 1908년 북 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대구에서 사역 중 위철치를 만나 결혼하였다.
*참조 : 이상규 교수의 글 <부산에서 일한 선교사들>
*비고 : 조지 윈(위철치) 선교사에 대한 출생지, 출신 학교 및 한국 사역에 대한 상세 기록이 부족하여 추후 조사가 필요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