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책임 Jun 11. 2024

장기연애의 시작

우린 늘 같은 곳에 있었지


고등학교 3학년, 가을 즈음이었어요. 제 고등학교 같은 반 짝꿍은 우연찮게 초등학교 동창이었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고 있던 짝꿍에게 누구랑 그렇게 문자를 하냐고 물으니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친구라고 하더라고요.



여자였어요, 이름을 보니 누군지 기억나더라고요. 기억에 남을만한 이름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고 있는 친구였거든.


"번호 좀 알려줘"



그 친구도 제가 기억이 났는지, 반갑게 인사해 주었어요. 이런저런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왔고


어느 날, 앞으로 찾아갔습니다.

아니 저희 집 앞이기도 했죠.


어항 2개에 물고기 한 마리씩 넣고 같이 키워보자며 고백했어요.



그렇게 연인이 되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정말 여기저기 많이 다녔던 것 같아요.


기념일에는 스티커사진, 이미지사진은 꼭 찍었고, 외박이 어려운 여자친구를 위해 친구들과도 같이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차도 없고, 돈도 없었기에 오로지 기차에만 의존하며 여자친구와 전국을 뚜벅이로 다녔어요.



무더 어느 여름, 지방에서 버스를 놓치고 길바닥에서 2시간 가까이 기다리면서 긍정적으로 엎드려 졸면서, 단 한 번도 짜증을 내지 않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는 정말 이기적이고 무능력한 남자친구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행복한 시간들만 있을 것 같았지만


곧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그 당시 감정은 절망,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첫 눈물을 흘렸던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훈련소에서 가장 많은 편지를 받은 훈련병이었고, 자대 배치를 받고서도 여자친구는  주기적으로 면회도 와주었어요.


심지어 저희 부모님과 같이 면회도 오고, 저 대신 저희 엄마와 데이트도 해주었더라고요.



그렇게 여자친구 덕분에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전역일이 다가왔습니다.



여자친구는 저보다 먼저 직장인이 되어있었어요.


사회선배라며 학생이었던 저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고 데이트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했습니다.




그런데, 자존심이 상하기 시작하더라고요.



.

.

.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