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으로 3년을 고생하시던 아빠가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한 지 보름 만이었다. 나는 옷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아빠의 영정사진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아빠 돌아가셨어. 친구는 울지 말라며 자신이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주겠다고 했다.
응급실에서 아빠의 사망 확인을 하고 지하의 장례식장으로 내려온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상복을 입기도 전에 친구가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중‧고등학교 동창인 그 친구는 병원 근처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내 전화를 받자마자 휴가를 내고 왔다는 그녀는 주황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전에 아빠의 병실에서 둘이 같이 마셨던 오렌지 주스가 생각났다. 나는 그녀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따뜻한 손이 내 등을 어루만졌다. 내 울음은 가만히 잦아갔다.
상복을 입고 문상객을 맞았다. 너무 울어서 머리가 아팠다. 물을 마시러 나오자, 육개장을 나르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긴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장례식장 여기저기를 다니며 할 일을 찾고 있었다. 빈 병을 치우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말없이 웃어 보였다. 상복을 입고 아빠의 영정사진 앞에 앉아 있는 나는 더 이상 눈물도 나지 않았다. 영정사진 속 아빠는 젊고 건강했다. 익숙지 않은 향냄새를 맡으며 나는 밤새 아빠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벽이 되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상복을 입기도 전에 도착한 그 친구는 장례식장 구석에서 쪽잠을 자고 있었다. 집에 가서 편히 자고 오라는 내 말에도 친구는 집에 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집에서 씻고 옷 갈아입고 오겠다며 그녀가 집으로 갔다. 나는 가서 잠도 제대로 자고 좀 쉬고 오라고 했지만, 그녀는 두 시간 만에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왔다.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온 그녀는 또다시 육개장을 나르고 빈 접시를 치웠다. 그녀를 보고 있으니 고마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몰려왔다. 밥때가 되면 그녀는 나의 밥을 챙겼다. 입맛이 없었지만, 자꾸 내 손에 수저를 쥐여 주었다. 밥을 먹는 내 앞에 친구가 앉아 있었다. 내가 아무 말도 없이 꾸역꾸역 밥을 먹는 내내 그녀도 말이 없었다. 육개장 한 그릇을 다 비우자, 그녀가 물컵을 내밀었다. 물을 마신 나는 다시 문상객을 맞으러 갔다. 그녀는 내가 먹은 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날 새벽, 그녀는 또 장례식장에서 쪽잠을 잤다,
그녀의 나이는 겨우 스물일곱이었다.
나는 아빠의 영정사진을 보다가 잠시 눈을 감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반으로 체육복을 빌리러 왔던 그녀와의 첫 만남이 생각났다. 일면식도 없던 내게 체육복을 빌려달라는 그녀에게 나는 선뜻 체육복을 내 체육복을 내어주었고 전학생이라던 그녀와 곧 친해지게 되었다. 우리는 다른 반이었지만 취미나 취향이 비슷해 금세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첫 남자 친구와의 이별을 위로해 준 것도 그녀였고, 회사 취업을 축하해 준 것도 그녀였다.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녀와 나눈 추억들이 생각났다.
한구석에서 쪽잠을 자는 그녀에게 얇은 담요를 한 장 덮어 주었다. 베개도 없이 어디선가 가져온 수건을 둘둘 말아 베고 자던 그녀는 내 기척에 잠이 깨는지 살포시 눈을 떴다. 눈에 피곤함이 가득했다. 나도 그녀도 가까운 사람을 보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 맞는 큰일에 나 혼자였다면 정말 무섭고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옆에 있어서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집에 가서 편히 자라는 내 말을 사양하며 끝까지 내 곁에 남아준 그녀가 정말 고마웠다.
발인하던 날, 하얀 눈이 소복이 왔다. 하얀 눈과 함께 아빠는 한 줌의 재로 사라졌다.
아빠를 보내고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아무 말이 없었다. 나도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봤다. 마주 잡은 손이 따듯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엄마의 곁에는 이모가, 내 곁에는 그녀가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 있기만 했어도 그녀가 있어 나는 마음이 든든했다.
그렇게 아빠를 보내드리고 1년이 지났다. 아빠의 첫 제삿날, 퇴근을 한 내 친구가 정종 한 병을 사 들고 우리 집에 찾아왔다. 퇴근하고 들르겠다는 연락을 받긴 했지만 진짜 올 줄은 몰랐다. 아빠가 병원에 계실 때도 자주 병원에 찾아왔었는데 이렇게 제사까지 잊지 않고 있었다니 정말 놀랐다. 친구는 우리 아빠에게 술 한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제사상 앞에서 절을 하는 모습을 뒤에서 가만히 보고 있었다. 주황색 티셔츠를 입고 장례식장 구석에서 쪽잠을 자던 그녀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육개장을 나르던 그녀의 모습도 생각났다. 아빠의 병실에서 나와 같이 오렌지 주스를 마시던 모습도 생각났다.
제사상을 물리고 다 같이 밥을 먹었다. 탕국과 밥을 먹던 그녀는 자기가 사 온 정종을 한잔 마셨다. 그녀가 취업 준비생이었을 적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며 용돈을 주셨던 이야기를 하며 그녀는 아빠를 추억했다. 그때 주신 5만 원이 너무 감사했다고 했다. 엄마는 그녀에게 술을 한 잔 따라주셨다. 반쯤 남은 정종병에는 그녀의 사랑이 넘실대고 있었다.
그 후 16년이 지났다.
아빠의 제사가 다가와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가 정종을 한 병 집어 카트에 넣었다. 정종을 보니 그녀가 생각났다. 아빠의 첫제사 이후로 더 이상 그녀가 제사에 오지 않지만, 그녀는 내게 꼭 전화를 한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장례식장에서 쪽잠을 자며 음식을 나르던 그녀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때 그녀에게 받은 위로와 위안은 평생 가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내게 보여준 우정은 가족의 사랑 그 이상이었다. 내 인생에 가장 힘든 시간에 가장 큰 사랑을 보여준 그녀에게 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아이들이 소리를 빽빽 지른다. 육아에 지친 그녀는 오늘도 우는소리를 한다. 통화 끝에 주말에 만날 약속을 잡았다. 아이들 때문에 번번이 취소되는 약속이지만 이번에는 꼭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와 무얼 먹으러 갈까 검색하는 내 손가락이 휴대전화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