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나이에 10을 더하면 내 나이가 된다

믿을 수 없다기보다 믿기 싫은 내 나이 40대

by 송이


언제부터인가 나이를 말할 때 생년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30대 후반부터 내 나이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가끔 나이가 어떻게 되냐는 질문을 받으면 ‘올해 내가 몇 살이더라?’ 생각하다가 결국엔 “83년 생이요”라고 대답한다. 사실 내 나이는 기억도 못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샤이니 태민이의 나이만큼은 정확하게 기억한다. 웃긴 얘기지만 올해 서른세 살인 그가 나보다 열 살 어리니까 그의 나이에 10을 더해서 내 나이를 생각해 내기도 한다.


해가 바뀌면 나는 마흔네 살이 된다. 사(4)자를 단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마흔네 살이다. 마음은 꽃다운 30대인데, 현실의 나이는 사십 대 중반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게 믿을 수가 없다.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할 때 1983년을 찾으려면 스크롤을 끝없이 내려야 한다. 게다가 설문조사에서 40-50대에 체크해야 하는 내 나이를 믿을 수 없기보다는 믿기 싫다.


요즘 부쩍 흰머리가 늘었다. 아직 새치 염색을 하진 않아도 되지만 자꾸만 늘어나는 흰머리를 보면 속상하다. 눈가의 주름살도 손에 조금씩 생겨나는 검버섯도. 처음 손에 검버섯을 본 날은 너무 우울해서 술을 마셨다. 그런데도 내 나이 듦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인지 몇 살이냐고 물으면 정확한 나이를 대답 못 한다. 불혹이라는 정말 늙어 보이는 호칭을 가진 사십 대의 내 나이를 부정하고 싶다. 그래서 무의식 중에 내가 정확히 몇 살인지 기억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내가 내 나이를 또렷이 기억하는 때가 있다. 바로 태민이가 활동했던 시기에 내 나이를 나는 정확히 기억한다. 샤이니 태민이의 18년 차 팬인 나는 그가 데뷔한 2008년에 스물여섯 살이었다. ‘링딩동’ 활동 시기에는 29살, ‘셜록’ 활동 때는 서른 살이었다는 걸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기억한다. 태민이의 활동은 내 인생의 이정표가 되어 잊고 있었던 나이를 떠오르게 한다.


내 나이를 태민이의 활동에 의탁하며 산 세월이 18년이다.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까지 관통하는 그는 이제 단순한 아이돌이 아니라 내 청춘의 동의어다. 스물여덟 살 때 혼자서는 처음으로 샤이니 콘서트를 보러 갔던 일본여행, 30대 내내 새벽 출근길에 들었던 태민이의 노래들, 마흔두 살 때, KBS 우리말 겨루기 출연해서 태민이에게 보낸 영상 편지까지. 잊지 못할 나의 청춘. 그래서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고 또 내 나이를 기억하는 것 같다.


언젠가 팬사인회에서 태민이와 대화를 나누다 나이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삼십 대 후반이었고, 태민이는 이십 대 후반이었다. 십여 년의 시간을 함께하며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그날 나는 태민이에게, 내가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팬을 할 테니 오래오래 활동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웃으며 그러겠다고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태민이와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을까.


요즘 들어 자꾸 드는 생각이다. 영원한 건 없기에 태민이도 영원히 활동할 수 없겠지. 태민이도 언제까지 청춘일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 태민이를 더 이상 무대에서 볼 수 없다면 나는 무엇에 나를 의지하며 살아야 할까. 나는 늙더라도 그 아이는 언제까지나 20대 청춘에 머물러 있으면 좋을 텐데. 앞으로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게 슬프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그들이 20대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내 욕심보다, 우리가 같은 속도로 나이 들어가는 이 생경한 경험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10대의 태민이와 20대, 30대의 태민이의 무대는 확연히 다르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성장해 온 그의 무대는 이제 여유가 느껴진다. 태민이의 성장을 온전히 다 지켜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그런 그를 보며 나 또한 내 삶의 무대에서 성장해 왔겠지.


올해 내가 몇 살이더라?

이제는 더 이상 정확히 기억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그 나이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 지다. 태민이와 함께 웃고 울며 흘려보낸 시간 속에서, 나는 내 청춘을 충분히 느끼며 살아왔다. 억만금을 준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들. 언젠가 함께하는 시간이 멈춘다 해도, 그 기억들은 내 안에서 오래도록 빛날 것이다.


인생에서 소중한 무언가와 함께 나이를 들어갈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유한한 인생 속에서 무한히 기억할 수 있는 추억들이 가득하다면, 숫자에 불과한 나이를 정확히 기억 못 해도 괜찮은 삶일 것이다. 새해가 되면 나이가 또 헷갈리겠지. 그러면 어때. 태민이와 만들 추억들이 날 기다리고 있는데.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23화느리게 걷는 숲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