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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Dec 09. 2024

수레바퀴의 중압감

요즘 시국이 어수선하다. 대통령의 불안과 중압감, 절박함은 비상시국도 아닌 때에 비상계엄령을 내렸다. 군대를 동원해 국회에 난입한 6시간의 혼돈에 국민은 놀라서 한숨을 쉬고 여기저기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져가고 불안한 시국을 개탄할 뿐이다.


정치가 혼란스러우니 국민들 마음도 불안하다. 지도자가 사리분별력이 없고 주변에 제대로 조언하는 이들도 없는지, 민생 안정에는 관심조차 없어 나라가 위태롭고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세대별로 수레바퀴의 중압감이 존재한다. 청소년기엔 입시와 진로. 청년기엔 취업과 경제적 능력. 장년기엔 가정과 육아 & 자녀 교육. 중년기엔 건강과 노후. 노년기엔 고독과 무기력 등이다. 우리 인생을 누르는 무거운 굴레는 계속 되고 삶의 무게는 점점 가중된다.


자신의 인생에 수레바퀴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균형과 조화를 잘 이루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요즘은 이 수레바퀴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보인다.


최근 폐업한 자영업자들이 급격히 늘면서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소식에 씁쓸했다. 모든 세대를 아우르며 다 힘겹다고 하는 시대이다. 수출은 줄고 경제에는 위기감이 찾아왔다. 나라는 여전히 저출산 시대이고 의료계는 아직도 불안하며 국방과 안보마저도 위압감이 감돌고 있다. 정치는 '눈 가리고 아웅' 하며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느라 그야말로 어수선과 혼란 그 자체이다. 국민들은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인데도 국민들을 대변하는 이들은 국민의 삶에는 관심이 없어 미래에 불안한 그림자만 드리운다.


헤르만 헷세의 자전적 소설인 <수레바퀴 아래서> 에서는 신학 교육을 중요시 하던 시대의 획일적 교육과 사람들의 경직된 사고를 비판한다. 그 시대에선 교회의 지도자나 신학 교수가 가장 성공한 직업이고 엘리트라고 인정받았다. 신학 공부의 열정이 컸던 그 시대에 선생님과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신학교에 간 주인공 한스는 불행의 끝에 선다.


마치 지금 우리나라 교육 같다.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으로 오로지 좋은 대학에 가서 연봉 높은 회사에 입사하는 것을 인생의 성공으로 여긴다. 경쟁을 부추기는 입시 제도는 창의적인 사고와 각자 재능에 맞는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모두가 같은 교육, 좋은 대학만 우선시 되는 교육이 아닌 직업 교육이나 재능에 맞는 기술 교육이 필요하지만 현실에선 인식과 제도가 개선되기엔 아직도 멀었다.

 

신학교에서 의지하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친구가 학교를 떠나자 적응하지 못하고 나와서 고향으로 돌아온 한스는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한 한스는 죽음을 맞는다. 사고인지 자살인지는 알 수 없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열정도, 삶의 열의도 잃은 그의 재능과 자신의 수레바퀴에 눌려서 펴보지도 못한 그의 젊음이 너무 아깝다.


 '수레바퀴' 는 쉬지 않고 돌아가는 인생의 굴레를 뜻한다. "지치지 않도록 해야만 수레바퀴에 깔리게 된다." 는 말처럼 계속 돌아야만 하는 수레바퀴의 인생, 멈춰서도 안 되고 자신이 만든 굴레와 속도에 맞춰가며 사는 인생의 수레바퀴는 모든 이들의 어깨 위에 짊어졌다.


모두가 힘들다고 말하는 목소리에 귀기울여 국민들의 어깨에 놓인 무거운 짐을 나누기 바란다. 특히 국가를 통치하고 통솔하는 정치인들이 더욱 자성하며 나라의 발전을 깊이 고민하며 마음을 합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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