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처음으로 혼자 김장을 했다. 해마다 네 자매가 모여 친정 엄마의 진두지휘하에 이틀을 꼬박 매달려서 김장을 했었다. 이제 건강이 안 좋으신 엄마 힘을 빌리지 않고 올해부턴 각자 해서 엄마를 모시고 있는 막내동생에게 두 통씩 주기로 결정했다.
겨울이 되니 김장 부담이 컸다. 어머님과 결혼한 아들들에게 줄 김장까지 생각하니 20kg 네 박스는 해야 될 것 같아 양도 만만치 않았다. 기본 양념을 미리 준비해두고 쪽파도 까둔 걸로 사고, 마늘도 시장에 가니 직접 갈아주는 데가 있어 훨씬 수월했다.한꺼번에 할 때보다 양이 작으니 상대적으로 간편했다.
어머님이 시골에 사실 땐 재배한 배추를 모두 김장을 하다보니 전날부터 절여서 그 많은 김장을 해야 했다. 그 많은 양의 김장과 식사 준비는 만만치 않은 노동이었다. 3년 전 시골 생활을 접고 올라오실 때까지 계속된 일이었지만 불평하지 않고 감당했다. 11월이면 의례히 친정과 시댁 김장 날짜부터 우선 잡아두었다. 시골 김장하러 갈 때면 온갖 김치통을 다 들고가선 언니들과 친한 지인에게 맛보라고 한 통씩 안겨주면 그렇게 좋아했다. 김치 나눔은 정이다.
시댁과 친정에서 두 번 김장할 때를 생각하면 혼자 하는 김장의 양은 그야말로 새 발의 피였다. 아침에 넘어지는 작은 사고가 있어 걱정했지만 심하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사실 처음엔 엄두가 안 났다. 이왕 마음 먹은 거 빨리 끝내고 싶어 미리 재료를 사다주고 예정보다 빨리 하기로 했다.
전날 혼자 무채를 썰고, 갓과 대파, 쪽파를 씻어 썰어두고, 육수를 우려내어 찹쌀 풀까지 쒀두니 벌써 다 끝난 것 같았다. 남편이 와서 고춧가루와 액젓, 새우젓, 매실을 넣어 모든 재료를 버무렸다. 고춧가루가 좋은지 먹음직스러웠다. 두 언니가 와서 속을 함께 넣어주어 금방 끝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그날은 이래저래 운이 없던 날이 분명했다.
뒷정리까지 끝내고 저녁 먹을 때까지 누워서 쉬고 있을 때 '아뿔싸' 가장 중요한 마늘과 생강을 넣지 않았다는 생각이 번쩍 났다.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맛을 봤을 때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 이유가 그것이었다. 꼼꼼한 남편도 하필 왜 확인을 안 했는지 언니들도 왜 아무도 안 물어봤냐고 남을 탓한들 소용 없는 내 실수가 분명했다.
남편과 언니들은 할 수 없다고 했지만 1년 먹을 김치에 가장 중요한 양념이 빠졌다고 생각하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통마다 넣은 김치를 꺼내서 양념을 다시 다 털어냈다. 최대한 털어낸 양념에 마늘과 생강을 넣어 버무려 속을 다시 넣기 시작하자 남편도 도왔다. 배추에 이미 고춧가루가 배어있어서 어렵진 않았다. 마늘이 들어가니 풍미가 완전히 달랐다. 처음 맛볼 때와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번거롭긴 했지만 다시 끝내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처음 혼자 해본 김장이라 실수와 시행착오도 많고 아침부터 넘어져 머리를 찧고 별일을 다 겪었어도 다 끝내고 나니 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도 괜찮아서 뿌듯하기까지 했다.
김장과 김장나눔은 유네스코 인류무형 유산에 등재된지 꽤 오래 됐다. 겨울 내내 두고 먹는 우리 전통 음식인 김장 자체도 영양소가 많아 가치가 크지만 나눔 정신과 공동체 의식이 담겨있어 그 가치를 인정 받았다. 이젠 김장을 하지 않고 사먹는 사람들도 있지만 겨울내내 먹을 김장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외국에서 헐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직접 김치를 담가먹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김치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영양소가 풍부한 음식이란 인식이 확산 되어 수출 품목으로도 한몫한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 김장은 집집마다 가장 큰 행사였다. 돌아가면서 품앗이로 이웃집 김장을 도와주고 보쌈까지 해서 푸짐하게 한상 차려 이웃들과 함께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문화가 나눔과 공동체 정신을 나타낸 자랑스런 우리 문화임이 분명하다. 그 주에 집에 다녀간 아들들에게 수육을 해서 먹이고 김장 한 통을 보내면서 처음으로 혼자 해냈다고 생각하니 뿌듯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