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는 제주 방언으로 "수고가 많으셨다" 는 뜻이다. 애순이 옆에 항상 있는 관식이의 이야기를 그려낸 네플렉스 드라마인데 방영되기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나의 아저씨" 이후로 배우 아이유가 선사한 또 하나의 인생작이 될 듯싶다. 파란만장한 애순이의 인생 서사가 담겨있었다.
애순이의 엄마는 제주 해녀였다. 가난하고 억척스럽지만 누구보다 딸을 사랑한 엄마가 잠수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열 살 애순이는 어린 두 동생을 떠맡아야 했다. 배를 타러 간 아버지를 대신해 밭일을 하고 양배추를 팔아가며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 옆에는 항상 관식이가 있었다. 책을 좋아하고 시를 잘 쓰고 공부 잘 하는 애순이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하면서 말없이 그녀 옆에 있었다.
애순이가 똑부러지고 야무지다면 관식이는 순박하고 책임감 강한 무쇠 같다. 하지만 강하고 무서운 할머니와 엄마는 애순이와 관식이의 사랑에 걸림돌이었다. 가난하고 엄마가 없는 애순이가 혹여라도 관식이의 앞길을 막을까 우려하며 절대 둘 사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피어나는 둘의 사랑은 유채꽃 밭에서 나눈 사랑 고백으로 확인했다. 그들의 순수하고 우직한 사랑을 누구도 막을 수 없어 보였다.
새로 들인 아버지의 여자 때문에 갈 곳이 없어진 둘은 고등학생 신분으로 야반도주를 한다. 부산으로 갔다가 몰래 갖고 나온 패물을 잃어버린 사건을 시작으로 다시 돌아온 애순이에 대한 부정적 시선, 애가 둘 딸린 선장에게 시집갈 뻔한 사건, 서울로 가려다가 애순이의 목소리를 듣고 배에서 뛰어내려 헤엄쳐온 사건 등은 울고 웃게 했다.
결국 둘의 사랑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할머니와 부모님이었지만 첫딸을 낳고도 눈치보는 애순이와 딸 금명이를 지키기 위해 손을 잡고 당당히 걸어나온다. 단칸방 월세를 시작으로 둘째를 가진 애순이와 금명이를 위해 자신을 무시하던 선장의 배를 타며 묵묵히 한 길만 걷는다. 관식이가 애순이를 위해 그랬듯 애순이 역시 관식이 일이라면 앞장 서서 달려가는 당찬 면모를 발휘한다. 둘의 깊은 사랑은 그렇게 깊고 흔들리지 않았다. 타임슬립으로 시간을 오고가며 나이가 든 애순이와 가난이 지긋지긋하다며 발버둥치는 딸의 또다른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역동적인 드라마였다.
애순이는 관식이를 소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성실한 소가 일을 못하니 자꾸 시들어간다고 했다
"쉬영 갑서. 쉬영 가"
9살부터 생선을 팔았으면 이제 쉬어가도 된다고 말하지만 쉬어보지 못해서 이상하다고 관식이는 말한다. 우리네 민족은 가난을 벗삼아 헤쳐나갔다. 오직 먹고 살기 위해 관식이처럼 부지런히 일했고, 가족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고, 똘똘 뭉쳐 어려움을 헤쳐나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애순이는 빨리 늙어가고 싶다고 했다. 엄마 노릇도 어른 노릇도 다 처음이라 서툴고 벗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삶이 고달파 우는 애순이에게 할머니는 배를 사주시고, 선장이 된 관식이는 부지런히 돈을 벌어 애순이에게 엄마가 살던 집을 사준다. 집이 없어 서러웠던 애순이는 처음 가져본 자기 집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하나씩 늘어나는 살림에 흐뭇해하며 눈부신 여름을 보냈다면 폭풍 치는 여름엔 막내 동명이를 잃고 무쇠 같던 관식이와 애순이는 처음으로 무너지며 오열했다. 파도를 덮은 울음을 뒤로 하고 또다시 살아가야만 하는 부부의 삶이 고달퍼보였다. 육체적으로 힘든 건 비할 수 없을 만큼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애순이는 모진 고난에도 또 살아지더라는 엄마 말을 떠올린다. 부모가 슬프면 애들 얼굴에 그늘진다며 서로를 위로하면서 죄책감을 가진 가족 모두 저마다의 상처를 견뎌낸다.
시간이 흘러 서울대에 합격한 금명이의 고달픈 서울 생활과 사고뭉치 은명이의 뒤치닥거리로 여전히 동동거리는 애순이 모습은 각자 어려움을 갖고 사는 우리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애순이는 자신의 꿈을 딸이 대신 이루어준 것으로 만족하면서 집을 팔아 유학비를 대주며 끝까지 딸의 뒷바라지를 해준다. 그런 부모님을 보며 오열하는 금명이는 분명 사랑받는 아이였다.
가난해도 정직하게 살고 자존심은 버리지 말라는 부모의 말을 새기며 금명이는 씩씩하게 살면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난다. 하나보단 내편인 둘이 있어 외롭지 않다. 함께라는 것은 홀로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얼굴을 맞대고 웃을 수 있고, 등을 맞대고 기댈 수 있는 삶이다. 그걸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건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진리이다.
두 사람의 아름다운 결실이 자식들에게 이어지면서 이젠 자식들의 기둥이 되어주는 부모 이야기는 큰 울림을 준다. 우리 인생도 다르지 않기에 열심히 살아온 우리 인생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폭싹 속았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