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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Aug 02. 2024

크고 작은 트라우마

책 표지

정신에 지속적 영향을 주는 감정적 충격이 트라우마이다. 트라우마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면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 상처가 지속적 폭력이나 정서적 학대의 경우엔 적절한 심리 치료가 필요하다. 단순한 공포나 불안의 경험은 일시적 스트레스로 지나가기도 하는데 물에 빠진 경험. 욕실에 갇힌 경험. 개에 물린 경험. 교통 사고 경험 등 사례도 다양하고 가볍게 극복하기도 오래 불안으로 남기도 한다.


오래 전이긴 해도 두 가지 공포를 겪은 이후로 작은 트라우마가 생겨 비슷한 상황이 되면 다시 불안으로 다가오는 일이 내게도 있다. 평소엔 아무렇지 않다가도 말이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어도 비슷한 상황에선 몸이 반응한다.


첫 번째 트라우마는 신혼 때 집안에 든 도둑 사건이다. 신혼 시절 시부모님과 아파트 1층에서 살았다. 난 임신 중이었고 남편은 출장 중이었다. 시댁 식구는 많았지만 유난히 깊은 잠이 못 들고 있었다. 새벽 3시쯤 되어 왠지 이상한 소리까지 나서 뒤척였다. 그 당시 신도시 건설로 새벽에도 공사 소리가 나곤 해서 단순히 그런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아 신경이 쓰일 때 방 창문 밖으로 비친 검은 그림자에 깜짝 놀랐다.

 "누구세요?" 하며 거실로 나가 불을 다 켜면서 식구들을 깨웠다. 새벽에 도둑이 들어 베란다까지 들어온 것이다. 그 이상한 소리는 방범창을 뜯어내는 소리였다.


집안까지 들어온 도둑이란 사실에 머리가 쭈삣 서면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온 집안에 불이 켜지고 대식구여서 가족들이 웅성대자 도둑이 도망가며 화가 났는지 베란다에 있던 항아리를 던져 내방 창문이 깨지고 창문 앞에 있던 장식장 위의 TV가 넘어졌다. 항아리에 담긴 고추장이 이불과 TV에 범벅이가 되었다.


새벽에 일어난 소동은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시부모님은 내가 괜찮은지 물으셨고 온 식구가 유리조각이며 이불이며 뒷수습을 하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 새벽까지 깊이 잠들지 못한 덕분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만약 깊이 잠들었다면' 하는 끔찍한 상상이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다음 날 배가 꼬이기 시작해서 바로 산부인과에 가서 검진을 받았다. 창문 밖에 서 있던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 같아 한동안 힘들었다.

남편이 오자 흥분하며 이야기를 들려주자 천만다행이라고 다독여주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불안했다. 그 당시엔 어이없게도 "누구세요?" 하며 침착하게 대응했던 내가 그 뒤부턴 밤이면 작은 소리에도 깊이 잠을 못 들고 예민했다.


결혼 전에도 단독주택에 살았지만 처음 겪은 일이라 그 뒤부턴 아파트 1층이나 단독 주택은 절대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두 번째 트라우마는 엘리베이터에 모르는 남자와 둘이 타는 것을 피하는 일이다.

유치원 하원을 한 작은 아들과 엘리베이터에 둘이 탔을 때였다. 문이 막 닫힐 때쯤 한 청년이 헐레벌떡 뛰듯이 엘리베이터에 탔다. 우리집은 아파트 가장 윗층인 15층이라 눌렀는데 그 남자가 다른 층수를 누르지 않는 것이다.


15층은 앞집없이 우리 집밖에 없는 구조였다. 게다가 숨소리까지 거친 그 남자 뒤에 서서 순간 어린 아들과 내 눈이 서로 마주쳤다. 머리속이 하얘졌다. 중간층을 눌러 내려야 하나, 그냥 있어야 하나, 저 사람은 누군데 15층을 눌렀을까, 택배 아저씨도 아닌데 어디 가냐고 물어봐야 하나...


가슴이 쿵쾅거렸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하며 그 사이에 15층에 도착했다. 등줄기에 땀이 났고 어린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순간 우린 내리지 않았다. 그러자 먼저 바쁜 걸음으로 내리더니 가방에서 꺼낸 전단지 광고를 두고 계단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헛웃음이 나오면서 긴장이 한순간에 풀렸다. 집으로 들어와선 아들에게

 "아들, 놀랐지?"

 "응, 무서웠어."

 나도 아들도 그 짧은 순간 너무 긴장했지만 웃으며 얘기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버젓한 대낮에 엘리베이터에 탄 아이를 납치하려고 시도한 일까지 일어난 터라 괜한 의심을 한 게 미안하면서도 세상이 무서우니 어쩔 수 없는 감정이었다.


지금도 낯선 남자와 둘이 엘리베이터에 탈 상황이 생기면 일부러 돌아나온다. 택배 아저씨나 배달 라이더나 이웃 주민들이 아닌 사람과 둘만 있을 때면 엘리베이터 타는 것이 아직도 두렵다. 그럴 경우 돌아나와 편의점에 들르거나 우편물을 확인하는 척 한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층수를 확인하고 다시 탄다. 사람을 의심하는 건 좋은 습관은 아니지만 그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도 아파트 1층이라면 거저 줘도 안 산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고 낯선 사람에겐 여전히 몸이 긴장하니 오랫동안 각인 되는 것이 트라우마이다. 크고 작은 트라우마는 누구나 겪을 수 있다. 오랜 상처로 남아 잠재의식 속에 있다가 불쑥불쑥 나타나 일상을 뒤흔들기도 하고 가볍게 지나가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해소하는 법을 찾아 마음의 안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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