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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Aug 26. 2024

"알아서 먹을게!"


여행을 자주 다니는 내가 남편 밥 걱정을 안 하고 다니는 이유만으로 친구들과 자매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다.


여행을 앞두면 의례히 식구들 며칠 먹을 음식 준비가 제일 관건이다. 한 친구는 주로 고기 반찬과 육계장. 한 친구는 주로 카레. 언니는 미역국을 한솥 끓여놓고 온다.


우스갯소리로 아내가 사골국을 끓이면 남편들은 한숨부터 쉰다고 한다. 사골국 끓이면 집을 비운다는 시그널이고 혼자 사골국에 김치 놓고 며칠 밥을 챙겨먹어야 하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행을 앞두면 다들 분주해진다. 나도 처음엔 미안해서 음식 준비를 하려고 했다. 아이들이 있을 때는 당연히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닭볶음탕이나 제육볶음 등을 준비해두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남편 식사 걱정은 예외이다.

 "뭐라도 해놓을까?"

하면 늘상

 "알아서 먹을게!"

라는 답이 돌아와서 이젠 묻지도 않는다.


남편이 알아서 먹겠다는 말은 사서 먹겠다는 말이 아니고 해서 먹는다는 뜻이다. 여행 다녀와서 뭐해 먹었는지 물으면 주로 냉동고 비우기를 열심히 해낸다. 떡만두국도 혼자 끓여먹고 김치와 어묵만 넣은 잔치국수도 해먹는다. 샌드위치와 김치 볶음밥은 단순 요리에 불과하다.


참 이상한 남자이다. 사 먹는 것보다 해 먹는 걸 좋아하고 남이 해준 것보다 자기가 한 음식이 제일 맛있다는 사람이니.

대학교 때 자취도 하고 어머님이 일하느라 바쁘실 때 혼자 밥을 잘 해먹어서 그런지 음식 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고 즐긴다. 게다가 맛있고 보기에도 예쁘게 만들기까지 한다.


내가 만든 계란말이와 남편의 계란말이만 봐도 확연히 차이가 나서 아들들은 금방 알아차린다. 두껍고 투박스러운 계란말이와 얇고 부드러우며 정갈해 보이는 일식집에서나 나올 것 같은 계란말이는 비주얼 자체가 다르다. 비교 자체가 안되지만 어쩌랴.


아들들은 어릴 때 아빠가 해준 음식을 많이 먹고 자라서 그런지 감동보다는 당연시 여겨

 "너희들도 이 다음에 꼭 해줘라."

하면 자신 없다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보고 배운 게 있으니 할 거라고 나름 믿는다.


여자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내 수고 안 들이고 식사하는 것과 집안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가장 맛있는 음식은 그저 "남이 해준 음식" 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그런 면에서 난 음식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여자이다.


음식 만들기에 부담이 없는 남편. 늘 알아서 먹겠다는 남편. 나보다 음식 솜씨가 더 좋아 뭐든 맛있게 요리하는 남편. 눈과 입까지 즐겁게 하는 솜씨 좋은 남편을 둔 나는 어디를 가도 부담이 없는 행복한 여자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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