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미경 May 07. 2024

내 양말 쥐구멍 찾던 날

내 발이 대발이라고요?

우리 집 가장 양말 구멍 사이로 시커먼 발가락이 삐죽삐죽 

우리 집 첫째 양말 구멍 사이로 뽀얀 발가락이 빼꼼 빼꼼

우리 집 둘째 양말 구멍 사이로 시뻘건 발가락이 으쌰으쌰 

새것으로 바꿔달라 부끄 부끄 피켓 시위하네


줄 지어 툭툭 툭 구멍 난 양말

떼 지어 톡톡 톡 구멍 난 양말

거친 들판 아무리 달려도 쓰러지지 않는 강한 양말 어디 없슈?

험한 고산 아무리 올라도 해어지지 않는 질긴 양말 어디 없슈?



초 4학년이 되어 교내 육상선수로 발탁되었다.

육상부를 맡으신 G선생님이 

400M 릴레이 경기 인원 쪽수를 맞춘다고 입소문을 따라 서편 4학년 교실까지 찾아오셨다. 

44개의 눈과 손 소문의 주인공으로 일제히 나를 지목하여 빼도 박도 못하고 딱 걸리고 말았다.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리되었다.

집으로 내빼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만 

선생님 말씀 거역할 수 없어 장날에 팔려가는 소처럼 눈물을 머금고 마지못해 운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학교에 육상부원만이 신어볼 수 있는 마법 신발, 못 박힌 스파이크 런닝화가 2켤레 있었다.

사이즈가 큰 신발은 6학년 J언니가 신었고,

210이었는지 215이었는지 작은 사이즈 런닝화는 내 차지가 되었다.

이것이 억지로 발을 구겨 넣어니 들어가긴 하였다만 볼 탱탱 터질 듯하였다.  

내 발에 쏠린 잔망스러운 시선, 키득키득 웃음소리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선생님, "신발이 작다 작다, 안 되겠다" 하셨다. 

자글자글한 웃음소리가 확성기를 켠 듯하였다 

나는 갑자기 발이 큰 아이 '대발이'로 등극하였다.

학년이 낮다고 발까지 작을쏘냐, 내 키는 고학년을 넘거늘 

오직 나이로만 발을 재는 세상에 멍울이 졌다.


지켜보던 J언니가 다시 신어 보라 하더니 두꺼운 내 양말을 보고

"양말 때문이네" 

"내일 양말 얇은 것으로 신고 와봐라, 지금 신은 것 이런 것 말고, 알겠째" 하였다.

집에 얇은 새 양말이 있을지 확신이 없었지만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신고 다녔던 내 양말, 솜을 넣어 누빈 버선보다 더 두툼하였다.

한껏 부풀어 풍선이 된 양말 터질까 봐 조심조심, 신발 속에 쏙 들어가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었다. 

스파이크 앞에서 너덜너덜 풍선 양말 부끄러움을 뒤집어쓰고 흠칫 흠칫 소리 없이 울었다.

'내 발이 대발이라니' 같잖은 오명을 뒤집어쓰고 흑흑 흑흑 굵직한 눈물을 삼켰다.

  

그날만큼은 쥐구멍에 들어가서 나오고 싶지 않았던 내 양말,  

이 양말 저 양말 발품 팔고 손품 팔아 잘라 낸 반반한 천 조각들로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얼룩덜룩 덧대어져, 

굳은살이 박이도록 홈질되어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그때 그 시절 

발가락에 못이 달렸나

학교 갔다 돌아오면 양말에 구멍이 쏭쏭쏭


그때 그 시절

엄마는 매일 밤, 우리가 잠든 사이 침침한 촛불을 밝혀 두고

헝겊 쪼가리 불려내고 반짇고리 앞장 세워 구멍 양말을 메웠다.


그때 그 시절

고장 난 양말 고치고 고쳐 신어니 하늘을 나는 풍선 양말 되었다.

아버지 풍선 양말 철갑을 둘렀는가 돌산을 거침없이 올랐다.

엄마 풍선 양말 등불을 메었는가 새벽을 환하게 밝혔다.

아이들 풍선 양말 동태를 달았는가 신작로를 냅다 달렸다.


그때 그 시절

구멍 난 양말 억센 눈물 먹고 자라며 피고 졌다.



지금 우리 집 구멍 난 양말 여러 개

쿵하고 던져버릴까? 

짠하고 변신시켜 볼까? 

생각을 펼쳤다 접었다, 생각을 붙었다 떼었다

할 일 없이 자꾸 생각만 갈아엎는다.


작가의 이전글 모성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