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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May 03. 2024

옆집 어머니

알사탕의 추억

공부상에는 집이 분명 있다고 하는데 도대체 집이 어디에 있다는 건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내 집은 보이지 않는다.

없는 집을 가지고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부부 공동명의로 마련하였던 생애 첫 집,

나의 집 펜트하우스는

입주할 때부터 터 넓은 주위 구역에 억울하게 발이 묶여 재건축 바람을 타다가

15년 가까이 산전수전 공중전을 치르고 난 후

2019년 겨울에 더 이상 사람의 발길을 들이지 않고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계획대로라면 올 4월에 입주예정이었다.

그런데 입주는커녕 천여 채의 집이 소멸된 그 자리에 풀만 무성히 자라고 있다.

이주 이후 강태공도 아닌데 세월만 낚고 있는 중이다.


언제 완공될지 모르는 기약 없는 집이지만 

4월 초에 이주비 대환 대출 연장 관련 서류를 다시금 꾸미게 되었었다.

지정된 날짜에 사무실에 방문하여 업무를 마치고 나오는데

옆집 아저씨를 만났다.

이웃들의 그간 소식 이모저모를 주고받다 조심스레 어머니 안부를 여쭈었다.

지난 10월에 첫제사를 지냈다고 하였다.



옆집 어머니,

사별을 하고 집을 정리하여 아들네로 들어오셨다.

말씀이 어쩜 그리도 따사롭던지 봄햇살 같았다.

문이 서로 마주 보고 있으니 

나의 시끄러운 속사정이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어머니 내색 않고

"욕본다"

스치듯 지나가는 말로

성난 파도가 치는 내 마음을 토닥토닥 토닥이셨다.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궁금해도 캐묻지 않음으로 

소리 높인 지난밤 일로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는 나를 넌지시 배려하시던 어머니,

지친 나를 잔잔히 이끌어주시던 인생 선배셨다.


나 또한 나이가 들어가니 

굳이 묻지 않아도 척하면 삼천리로 알아채지는 일이 많아졌다.

흰머리와 주름살을 짙게 새기고 얻은 삶의 지혜 중 하나일 것이다.


손주 자랑에 침이 다 마르고 자식 걱정에 마음이 다 닳으신 어머니,

아들 손주 며느리 한데 사니, 아무리 잘한다고 한들 편하기만 하겠는가.

점점 노쇠해 가는 육신, 짐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시던 어머니의 하루는 고요한 듯 쓸쓸해 보였다.


옥상에 빨래를 널려가면 종종 옆집 어머니가 나와계셨다.

집에 혼자 가만히 있으려니 갑갑하여 

다리에 힘이 없어 바깥에는 못 나가고 

바람이라도 쐴 겸 한층 위 옥상에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왔다고 하셨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 없을 땐 

햇빛에 빨래 주름 쫙쫙 펴 넌 다음 조용히 어머니 옆에 앉았다.

창창한 하늘 어찌 저래 맑고 푸르나

흘려가는 구름 어찌 저래 빠르게 달리나 

어머니와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었다.


"내가 줄게 이것밖에 없다"

당뇨가 있으시다는 어머니,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사탕을 꺼내주셨다.

뽀시락 뽀시락 비닐에 싸인 사탕 하나 까서 입에 넣고 나누는 입방정,

멀리 있는 엄마와 딸을 대신하여 다정한 모녀지간 코스프레를 하였다.



내 집 지붕이 옥상이라 옥상에 드나드는 사람들 소리가 잘 들렸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는 어머니 발자국 소리 자꾸 내 머리를 긁적이면

내 친구 이BS와의 수다를 잠시 멈춰두고 옥상으로 올라갔었다.

빨래가 잘 마르고 있나 살피러 나온 척, 두꺼운 빨래 찌짐 뒤집듯 한 번 뒤집어주고는

어머니 옆에 앉아 주머니 사탕을 털었다.


먹고사는 뻔한 얘기를 하다 어느 날,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며느리가 해 달라한다는,

깐깐한 며느리도 울며 먹는다는 신박한 계란찜 레시피가 걸려들었다.


"우리 집에 옴팍한 전자레인지용 그릇 요만한 게 있거든, 

거기다가 계란 8개 팍 깨가 잘 풀어놓는다,

식구가 많다 아니가, 정도는 해야 한다,

계란찜에는 맵삭한 게 좀 들어가야 맛있다,

청양고추 1개 매매 다져 넣고

소금 쪼갬 넣고 조선간장으로 나머지 간을 해가, 

전자레인지에 돌려 밥상 차려 놓으면

아들, 손주, 며느리 다 맛있게 먹는다 아니가" 하시며

어머니만의 계란찜 특급 비법을  

눈을 깜박이며 궁금증에 목을 매고 바라보는 나를 위해 술술 풀어주셨다.

알사탕을 입에 넣고 오물닥오물닥거리며 옆집 어머니와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달달하였다.


"아이쿠마! 말도 마라, 내 산 얘기 할라치면 기막혀서 말이 안 나올라칸다"

                "그래도 한 번 해 보셔요, 어머니"

"내만치 복이 지지리 없는 사람도 드물거라"

"내가 처음부터 이레 말이 드세었겠나"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 말씀 다정하거든요!"

"살다 보니 그리 돼 삔 거라"

"나도 젊은 아들 맨키로 고울 때가 있었다 아니가"

"밀가루 맨키로 얼굴이 뽀야가 분을 안 발라도 참 이뻤다 안카나"

               "어머니, 지금도 고우셔요!"


어머니는 장판 밑에 넣어 두어 고린내가 진동하는 지난날 얘기를 꺼내어놓고

억센 감정 일게 한 장본인, 하늘에 계신 분의 귀를 막아놓고 간간이 흉을 보시다가도

"아범 잘 보살펴주시고 편안한 잠 좀 자게 해 주시오"라며

끝맺음은 항상 자식사랑으로 마무리하셨다.

  

나에게 별이야기를 다한다면서도 말이 홀씨가 되어 날아갈까 흔들리는 눈빛을 보이셨다. 

눈치 읽은 나, 오늘 들은 얘기 자물쇠로 꽉 채웠다며 철컥 닫는 시늉을 해 보이면

어머니, 빙그레 웃으셨다.


이사 가던 날,

두유 한 박스를 사다 드리며

"어머니 입주할 때 만나요, 건강하세요" 하였더니

"아이고마 내가 그때까지 살아있겠나?하시며 눈에 이슬이 맺혔었다.



이주를 하고 반년이 지나서였나, 해가 바뀐 어느 날,

운전 중에 신호 대기하다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고 경적을 빵, 빵, 빵~ 요란하게 울린 옆집 아저씨,

주위 사람들 이목을 집중시키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두리번거리는 나를 10여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큰소리로 불러 세워 한참 이웃사촌 친분을 과시하였다.

옆집 어머니, 그때에도 병원 신세 지는 일이 많다 하시더니

결국 땅을 떠나 하늘로 자리를 옮겼다는 기별을 하셨다.


11층 어머니 이사 가시고 애정에 굶주려 있던 나를 채워주신 분이 옆집 어머니이시다.

만나면 헤어지고, 떠나면 들어오고, 끝이 있으면 다시 시작되는 것이 삶이라고 하지만

이별은 여전히 어렵다. 

먹먹함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침 꼴딱 꼴딱 삼키던 혀놀림이 둔해지면 

"다 묵었나?"

"하나 더 주까?" 하시던 옆집 어머니, 

'고맙다'는 사탕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시며 하나씩 하나씩 꺼내 주시던 어머니,

알사탕의 추억을 기억하실는지.


'어머니, 어머니, 옆집 어머니,

앞집 살던 지원이 어마이 사탕 다 먹었어요.

주머니 사탕, 하나 더 주세요.

이참에 다 꺼내보셔요.

입에 맞는 걸로 골라 먹을랍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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