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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소리 Oct 22. 2023

우리가 대학교를 졸업한 이유

[초등 육아휴직이라는 정서적 보상]  #10

 육아 휴직을 하고 내가 사랑하는 봄의 기운을 만끽하기 위해 동네를 산책했다.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그동안 소식을 못 전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한참을 통화하다가 친구가 갑작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나 얼마 전에 깨달은 게 있어. 우리가 왜 그렇게 대학 가려고 열심히 공부했는 줄 알아?"

 대답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친구가 답변을 주었다.

 "아이 키우려고."

 6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의 말에 아찔해졌다. 침착하게 생각해 보니 회사를 쉬고 있는 상황에서 나의 지향점이 사라진 것은 분명했다. 나는 왜 대학교를 가기 위해 노력했을까? 왜 취업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을까? 왜 진급하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했을까? 친구와 통화를 급하게 끝내고 생각에 잠겼다. 고민의 시간이 끝나자 한 가지 사실로 귀결되었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현재 내 안의 에너지는 남아돌고 있고 나는 내 삶에 더 큰 공헌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재테크를 좋아해서 그런 것인지, 경영관리업무를 계속 해와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휴직 기간의 중반에 접어드니 집안일은 input 대비 가시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업무임을 몸소 체험했다. 집안일이 더 이상 스트레스나 우울의 대상은 아니지만 성취감을 느끼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일들을 죄다 도전해 보기로 했다. 특히 가시성이 높은 일들로만 말이다.

 첫 번째 대상은 운동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도 운동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1시간 남짓의 점심시간에 할 수 있는 운동은 몇 개 없었다. 근력 운동을 가장 하고 싶었지만 기본 체력이 없어서 금세 지쳤고, 고민 끝에 1층에서 25층에 있는 사무실까지 계단으로 올라갔었다. 처음에는 5층마다 쉬면서 올라가게 되어 30분이 걸렸다. 계단 오르기를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자 10분 정도 지나면 25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휴직 후 시간적 여유가 많아졌으니 본격적인 근력 운동을 하고자 마음먹었고 필라테스 1:1 레슨을 받아보았다. 레슨을 통해 그동안 호흡법과 자세가 완전히 틀렸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룹 레슨을 주 2회에서 주 3회로 늘렸다. 한 달에 한 번씩 인바디를 측정을 통해서 골격근량이 높아지는 것을 보니 동기부여가 확실히 되었다.

 두 번째는 아이디어 노트를 정리하고 특허에 대해 공부해 보는 것이었다. 집안일을 수시로 하다 보니 이 세상에 개발되면 삶에 편리함을 줄 수 있는 물건들이 마구마구 생각났다. 한 번은 신랑에게 집안일의 수고로움을 없애기 위한 물건을 만들어야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미 어떤 사람이 비슷한 류의 특허를 취득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허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런 아이디어가 모이다 보면 가까운 미래에 나도 특허를 등록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게 되었다. 또 아이를 키울 때 도움이 될 만한 아이템이 떠오르면 어떤 방법으로 프로토타입을 제작할지 구상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자기 전에 아이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는 흥미롭게 들었고 가끔은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점차 아이디어 찾기에 홀리게 되었다.

 마지막으로는 늘 해보고 싶었던 글 쓰는 일에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 나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과 이웃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공감해 주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에세이나 시 공모전들을 살펴보던 중 마침 브런치에서 진행하는 출판 프로젝트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프로젝트에 응모하려고 하니 우선 브런치 작가가 되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한 번에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었고 나는 짬짬이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랬더니 내 삶에 변화가 생겼다. 아이를 돌보면서 내가 갈망하던 일을 하게 되자 축제의 날들이었다. 가끔 감성 터지는 밤에는 시를 쓰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에 읽어보면 손발이 닳아 없어질 듯하여 지워버린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써 내려가는 나의 이야기가 꽤 마음에 들었다. 하루는 아이가 학교 숙제를 하는 동안 나는 그 옆에서 글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엄마. 뭐 하고 있어?"

 "엄마 작가가 되어보려고 해."

 "우와. 엄마 진짜 멋있다. 그럼 나중에 나를 위한 탐정 이야기도 꼭 써줘."

  아이의 응원으로 내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박완서 선생님이나 조앤롤링처럼 대단한 작가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이야기가 종이에 인쇄되는 상상이 실현되는 순간이 오길 염원할 뿐이다. 정해진 시간 동안 회사에 얽매여 있으면서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맞다. 집안일을 하면서 아이의 공부도 가르치고 엄마들 모임에도 참석하는 일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이든 현재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누구나 힘들다. 그리고 모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나처럼 에너지가 남는 누군가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본인만의 작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을 찾아보라고 강력하게 추천한다. 힘겹게 대학교를 졸업한 이유를 되새기다 보면 나만의 새로운 목표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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