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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소리 Oct 22. 2023

담임 선생님에 관한 사색

[초등 육아휴직이라는 정서적 보상]  #9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서 여름 방학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개인적 사정으로 병가를 내셨고, 다른 선생님으로 교체되었다. 교체되기 하루 전에 가방 안에 넣어 보내주신 담임 선생님의 편지를 읽고 걱정이 되면서도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아이는 자기 전에 누워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오늘 교실 나오면서 선생님이 친구들 한 명 한 명 다 포옹해 주셨어. 내가 포옹하는 순간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어."

"많이 슬펐구나."

"그런데 괜찮아. 선생님이 12월에 오실 수도 있다고 하셨어."

"그래. 엄마도 선생님께서 건강해지셔서 다시 돌아오시면 좋겠어."

"엄마. 선생님 보고 싶다."

 아이는 잠을 청하는 내내 첫 번째 담임 선생님을 마음 깊숙이 새기는 듯했다.


 23년 7월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은 대한민국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에게 현재 사태의 심각성을 물어봤고 친구는 그동안 곪았던 부분이 터진 것이라고 했다. 덧붙여 이번 일을 계기로 교권 변화의 바람이 일렁이길 바란다고 그녀의 소망을 담담히 전했다. 친구의 말처럼 뉴스를 접하다 보니 점차 교사들의 움직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해졌다. 23살의 젊은 생명이 사라진 슬픈 현실. 교사들은 힘을 모았고 학부모들도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지만 선생님만 의지가 넘친다고 행복하고 즐거운 교실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생도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알고 행동해야 한다. 회사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업무 인수인계의 상황은 이와 비슷하다. 내가 인계자가 되었을 때는 인수자가 신입 사원이라고 가정하면서 이해하기 쉽도록 성심성의껏 설명한다. 반대로 인수자가 되었을 때는 인계자에게 배우고자 하는 태도를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간혹 인수자임에도 메모 한 줄 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설명을 듣는 사람이 있다. 설명이 끝난 후 인수자는 업무를 다 이해했다고 말하지만 내가 확인차 질문을 해보면 명확한 답을 하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인수자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 진다. 

 '다음 시간에는 메모를 하세요. 그럼 나중에 잊어버렸을 때 찾아볼 수도 있고 기억에도 오래 남습니다.'

 그러나 나는 타인에게 잔소리하는 것을 유쾌하게 여기지 않는 편이라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답답함과 함께 꿀꺽 삼켜버린다. 

 이처럼 아이에게 입학 전부터 선생님 말씀을 귀담아들으면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일러두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담임 선생님 말씀을 어기는 일이 거의 없었다. 가끔 선생님이 국어 시간에 똑같은 글자를 계속 쓰게 해서 팔이 너무 아팠다고 투덜거릴 때가 있었다. 그래도 이내 선생님이 새로운 동요를 알려주셨다며 선생님 자랑을 속살거렸다. 초록잎이 우거지는 여름이 다가올수록 아이 마음에도 담임 선생님의 존재는 점점 커져갔다. 1학기가 끝날 때 아이가 학교에서 진행한 활동 모음집을 받았다. 핑크색 파일을 훑어보니 A4용지에 꾹꾹 눌러쓴 글씨와 알록달록 칠한 그림들이 모여있었다. 감동이 몽글몽글 피어 올라 '하이클래스'이라는 어플을 통해서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선생님. 한 학기 동안 즐겁고 뜻깊은 수업 진행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네. 저도 우리 친구 덕분에 한 학기 동안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아이 입학식 때 먼발치에서 담임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젊은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 되면 다정해서 좋다는 선배 엄마들의 말과는 동떨어진 연륜 있는 분이어서 다소 실망했다. 하지만 등교 첫째 날 통화로 따뜻함 분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께서는 엄마처럼 1학기 동안 반 친구들에게 '아가'라는 호칭을 자주 사용하셨다. 홀로 담임 선생님에 대해 호감을 쌓아가던 중 3월 말 학부모 상담을 가서 선생님과 첫 독대를 하였다. 학부모 상담은 전화로도 가능했지만 굳이 대면상담을 신청했다. 아이 교실을 한번 더 둘러보고 책상 서랍에 격려의 편지를 놓아두고 싶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전화로는 퉁명스러웠던 사람도 안면을 트고 나면 친절하게 바뀌는 인간관계 법칙을 이용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초등학교 상담을 가면 우리 아이에 대해 선생님께 최대한 많은 정보를 드려야 아이 지도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특히 단점을 은폐하려고 하기보다는 정확히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학교와 가정에서 같은 선상에서 지도를 해야 단점의 개선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내가 걱정했던 부분을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저희 아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탐색의 시간이 필요해요.”

"수업 시간에 집중도 잘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의 답변에 안도가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아직 정신없는 1학년 학부모의 심정을 알고 계신다는 듯, 내가 먼저 여쭤보지 않아도 아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속속들이 알려주셨다. 또 지금부터 수학과 역사를 재미있게 접할 수 있는 시간을 갖으라는 조언도 해주셨다. 상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나는 교실을 나왔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신 담임 선생님을 떠올려보았다. 초1 때 나를 각별하게 아껴주시고 발표를 많이 시키셨던 선생님, 초4 때 장구를 배워보라고 권유해 주신 선생님, 중3 때 엄하면서도 무심하게 챙겨주시던 츤데레 선생님, 고3 때 수능 잘 볼 수 있다고 응원해 주신 선생님. 이렇게 총 네 분이 생각났다. 은사님들께서 나에게 주신 가르침 덕분에 꽤 괜찮은 어른으로 성장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비록 아이는 첫 담임 선생님과의 추억이 반년뿐일지라도 아이에게 많은 자양분을 주셨으리라 믿는다. 

 아이가 여름 방학 일기를 담임 선생님께 검사받고 하교하는 길에 기분을 살펴보니 구름 위에서 방방 뛰는 듯했다.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일기장 여백에 선생님이 반듯하게 적어주신 글이 마음에 든다며 헤벌쭉 웃었다. 선생님의 글귀에는 아이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개학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서 기쁘고, 2학기때도 1학기때처럼 열심히 할 거지? 약속! 나중에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큰 일꾼이 될 거야.'

 앞으로도 나는 아이에게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 되도록 부단히 지도해야겠다. 우리 아이가 지금처럼 학교 선생님의 따뜻한 가르침 아래 지혜롭고 마음이 건강한 청소년으로 커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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