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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파꽈리 May 23. 2024

아무튼, 프리지어

지난 일요일 오후, 대출 기한이 임박한 책 몇 권을 가방에 챙겨 집 근처 공공도서관을 찾았다. 한 달 전쯤 알게 된 "아무튼 시리즈"를 요즘 몰아서 읽다 보니, 뭔가 정리를 해야 한다거나 마무리를 할 일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아무튼'을 붙여 중얼거리곤 한다. <아무튼, 반납>.


나는 책을 반납하지만, 누구는 마음을 반납하고, 또 누군가는 아파트 대출 금액을 반납하기도 하겠지. 원해서 하는 반납이 있는 반면, 또 원치 않아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반납도 있을 테고. 직접 대면해서 하는 반납, 아니면 소포로 부치는 반납, 그도 아니면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으로 매조지는 반납도 있을 것인데, 어찌 되었든 반납이란 내 품에 잠시 머물러 내 것이었다가, 아니, 내 것인 것 같았다가 언제고 나를 떠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닌 단어. 쓰다 보니 괜스레 짠한 기분이 들어, 이쯤에서 아무튼 정리를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검색을 해보니 <아무튼, 정리>도 작년 4월에 이미 출간이 됐네! 오오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한 후,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 들고 주말마다 거치는 산책로를 따라 집으로 향하던 도중, 고딩으로 보이는 아이들 셋을 마주치게 되었다. 초스피드 스캔 작업을 거친 결과, 셋 모두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나, 착해요"를 얼굴에 써놓고 있었으며, 한목소리로 무슨 노래를 흥얼거리며 산뜻한 표정으로 웃고들 있었다. 순식간에 나를 지나쳐 갔지만 놓칠 수 없었던 한 소절.


"자동차가 나간다"


귀에 익숙한 멜로디와 가사. 나를 맞닥뜨리기 전, 이미 저 멀리서부터 부르며 왔을 노래. 각각의 계이름을 바로 꿰맞출 수 있을 만큼 절대음감의 소유자는 아니어도 그게 무슨 노래인지는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꼬마 자동차 붕붕>. 요즘 고딩들이 이런 동요를 부른다는 것이, 게다가 햇볕 쨍쨍한 주말 오후에 얼굴 가득 웃음을 담은 채 동요를 부르며 자전거를 탄다는 게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순수, 라는 단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 때문이었는지 그들을 지나쳐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집에 도착하는 순간까지도 나 역시 그들이 불렀던 노래를 계속 흥얼거렸다. 정말로 오랜만에 불러보는데도 이상하게 가사가 다 기억이 나는 바람에 스스로 놀라며 재차 신기해했다.


"붕붕붕 아주 작은 자동차 꼬마 자동차가 나간다 / 붕붕붕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꼬마 자동차"


꽃향기라. 실은 요즘 들어 아무튼, 아무튼, 중얼거리다가 문득 떠오른 단어가 하나 있었다. 향기. 고딩 트리오가 불렀던 꽃향기에 힘이 솟는 꼬마 자동차부터 시작해서, 지난날 누군가를 위한 선물을 고르려 했을 때 향수부터 시작해 온갖 향기 관련 아이템들을 검색했던 것도 그렇고, 더불어 언젠가 그녀가 좋아한다 했던 꽃이 생각났던 것도 그렇고, 그 무렵 오랜만에 꽃향기 진했던 20세기 사랑 노래 한 곡을 들었던 것도 그렇고, 가사에 담겨 있던 꽃 때문에 과거 풋풋했던 영화 한 편이 떠올랐던 것도 그렇고. 이쯤 되면 정말이지 향기를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꽃향기를. 절대음감의 소유자가 아님은 앞서 고백을 했고, 어렸을 적 비염과 축농증으로 수술을 받았던 탓에 "불광동 개코"와 같은 칭호가 어울릴 만큼 절대후각의 소유자는 더더욱 아닌 내가 향기라니, 꽃이랑 담쌓고 지낼 것 같은 인간이 꽃향기라니. 거짓말 솔찬히 보태서 경천동지 할 노릇이 아닌가.


프리지어. 흰색, 노란색, 핑크색, 빨간색, 보라색. 여러 색깔 중에서도 유독 노란색이, 게다가 한 송이가 아닌 여러 송이가 모여 이룬 꽃다발이 왠지 본연의 모습인 것만 같은 꽃, 프리지어. 1994년 여름, 프로젝트 그룹 마로니에는 <칵테일 사랑>이라는 곡을 발표했고, 이 곡이 수록된 앨범은 1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밀리언셀러로 등극했었다.


"나는 아직 순수함을 느끼고 싶어 / 어느 작은 우체국 앞 계단에 앉아 / 프리지아 꽃향기를 내게 안겨 줄 / 그런 연인을 만나 봤으면".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이 노래를 들려주면, 누구나 다 내면의 순수함을 일깨워 프리지어 꽃다발을 준비하고는 남몰래 마음에 품었던 사람을 찾아 나설 것만 같았던 기분. 일생에 단 한 번 쓸 수 있는 히든카드가 있다면, 남아있는 용기란 용기를 다 끌어모아 바로 지금 이 순간 고백 타이밍에 써야 할 것만 같았던 느낌. 그때는 그랬지. 라떼는 그랬지. 오로지 내 기분에만 그친다 한들, 오월의 햇살 한가운데에서 유독 붉어진 얼굴을 하고는 머뭇머뭇 꽃다발을 건네보고 싶었지. 프리지어에 담아 전하는 내 마음도 덩달아 부끄러워서는 마주 보고 아무 말 못 한 채 그저 꽃향기에 취해만 갔었지. 이래야 <칵테일 사랑>이 더욱더 생명력 넘칠 거라고, 부르고 또 부르며 애꿎은 자기 위안만 거듭했었지.


"혹시.. 좋아하는 꽃 있어요?"

"으음... 프리지어요."


언젠가 햇살이 좋았던 그날. 나란히 함께 걸으며 나눴던 대화. 그럼에도 왠지 지금은 나만 기억하고 있을 것 같은 에피소드. 계절이 불분명한 그때 몇몇 직장 동료들과 함께 사무실을 벗어나 점심을 먹으러 가던 도중, 문득 그녀가 좋아하는 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날의 나와 지금의 내가 여러 면에서 똑같을 순 없겠지만, 그때 그런 질문을 던졌던 마음만큼은 현재도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 아닐까 싶은 생각. 꽃보다 그녀. 어느 화장품 광고 콘티의 메인타이틀로 쓰일 법한 문구처럼, 굳이 예쁘고 아름답고 멋지다는 수식어를 달지 않아도, 아니, 오히려 꾸밈없는 이 같은 담백한 비교가 실은 꽃보다는 그녀가 더 궁금했었던 그날의 내 속내를 훨씬 잘 대변해주고 있는 건 아닐지.


"으음, 향기 좋다. 나 이 꽃 좋아하는데. 이거 누구한테 줄 거야?"


진수(이정재)가 들고 있었던 프리지어 꽃다발에 얼굴을 가져가 향기를 맡으며 그에게 말을 걸었던 연희(故 장진영). 언젠가의 내 물음에 그녀가 좋아한다고 답했던 프리지어는 영화 속 연희도 무척이나 좋아하던 꽃이었다. <오버 더 레인보우>. 개봉된 지 20년도 더 지났지만, 비가 올 때나 프리지어를 생각할 때면 아직도 가끔씩 떠오르는 영화다. 그 시절 유행처럼 번졌던 사랑 영화의 클리셰인 기억상실을 소재로 전개되는 시나리오. 기상캐스터 진수는 대학 초년생 시절부터 8년여 동안 한 여자를 짝사랑해 왔는데,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후 부분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그때부터 과거를 거슬러 오르며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누구였는지 수소문하기 시작한다. 마음에 두고 있던 그녀를 생각하며 대학 강의실에서 "The trace of sunshine"이란 제목의 영문 자작시를 낭송하기도 했던 진수. 햇살의 흔적, 무지개로 명명했던 그녀를 찾아가는 과정이 잔잔하면서도 싱그럽게 펼쳐져 있는데, 당시 대중적으로 흥행은 하지 못했지만, 생각날 때마다 가끔씩 챙겨볼 만큼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영화다.


지난 오월의 어느 아침, 산책을 하던 중 눈으로 들어오는 풍경이 예사롭지 않았다. 흐린 날씨의 연속이었다가 마침내 그 어느 날보다 더 화창해진 그날 그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파란 하늘도 초록 나뭇잎들도 눈을 시리게 할 만큼 선명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던 날. 이런 그림을 만들어내는 오월의 햇살을 내 마음에 담아두고 싶었다. 스며들게 하고 싶었다. 영화 속에서 기억을 잃은 진수가 '햇살의 흔적'을 찾아 나섰듯, 비록 기억을 잃진 않았으나 나 또한 그처럼 나만의 '오월의 햇살'을 찾아 나서고 싶었다. 그러다 만난다면, 마침내 마주친다면, <꼬마 자동차 붕붕>을 부르며 자전거를 타는 고딩 트리오 얘기를 들어본 적 있느냐고, 칵테일보다는 프리지어 꽃향기에 취해 휘청였던 누군가의 에피소드를 들어본 적 있느냐고, 비 오는 날 프리지어 꽃다발을 들고 마침내 '햇살의 흔적'을 만나 환하게 웃던 영화 속 한 사람의 얘기를 들어본 적 있느냐고 넌지시 물어보고 싶다.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의 대열에 낀다고 생각하는 아티스트들 중에 이정열이 있다. <그대 고운 내 사랑>. 기타 하나 둘러메고 스탠드 마이크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던 가수의 모습이 생각난다. 청량한 기타 소리가 오월의 햇살을 더욱 선명하게 만드는 것 같았던 노래. 결혼식 축가로도, 또 고백을 위한 노래로도 많이 불렸다고 하지만, 나는 왠지 이 노래는 꼭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만의 독백을 조용히 담아보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세상에 지쳐가던 내게 단비처럼 다가온 사람. 잊었던 희망을 다시 솟게 만든 사람. 하지만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어 외로울 수밖에 없는 나. 그럼에도 가시나무숲 같은 내 마음을 치워 쉴 곳을 마련해 주고 싶을 만큼 내 귀한 사람."


그대는 고운 내 사랑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사랑보다는 귀하다는 단어에 더 꽂혔던 것 같다. 귀한 사람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을, 그러나 결국엔 맘속으로만 간직하게 되는 말을 멜로디에 담아 조근조근 고백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늠할 수 없는 그의 삶의 무게가 내 입에 섣부른 위로를 담지 못하도록 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나마 끝없이 그를 다독이며 응원하고 싶은 마음. 그렇게 나에게 귀하디 귀한 사람.


오월이 가고 있다. 오월의 햇살도 가고 있다. 무념무상의 알쏭달쏭한 걸음걸이로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 그가 가는 곳이 어디일지 아는 이는 오로지 그뿐이어서, 그렇듯 내가 그의 삶의 무게를 가늠할 수는 없을지라도, 나는 외로워하지 않겠다. 그저, 지난날 내 마음에 담아둔 오월의 햇살이 언젠가 어느 거리에 멈춰 서서 숨을 고를 때, 그 발걸음 잠시 잠깐 편히 쉴 수 있도록 노래를 부를 뿐. 혹, 프리지어 꽃다발을 건네면 어떨까. 좋아한다는 꽃. 은은한 향기 퍼져 스미도록 오월의 햇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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