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라레솔도 28화

잠 못 이루는 어느 날에

주절주절

by 에밀리


6월 9일 월요일 새벽 1시까지 혼자서 산책을 했다. 그날따라 바람이 좋았다. 걸을 때 살갗에 스치는 바람의 감촉, 나뭇잎새 소리가 무척이나 시원해서 홀린 듯 두어 시간을 거닐었다.


주일 저녁미사가 10시에 끝나고 귀갓길에 장을 보고서 집에 내려놓았다. 현관에 수북이 쌓여있는 플라스틱, 빈 상자들, 비닐묶음을 들고서 밖으로 나왔다. 작열하는 한낮의 열기가 가시고 가로등 불빛이 아늑한 기분마저 드는 밤이었다. 재활용 분리수거를 마치고 데크길을 천천히 걸었다. 발바닥에 울리는 리듬감으로 머릿속이 맑아졌다.


그러다가 어느새 나는 정원을 크게 돌아 계속해서 걷고 있었다. 라디오 어플을 켜고 잔잔한 음악을 듣다가, 가지고 있는 명상 음원 파일을 열어서 가만히 멈추어 섰다. 깊은 들숨과 날숨으로 차분해지고 편안해졌다.


바람이 살갗에 닿고 흩어지는 그 청량함이 얼굴과 팔뚝에 느껴졌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걸을 때마다 사뿐사뿐 춤추는 듯, 선율을 만들어 허밍이 절로 나왔다. 가끔은 그림자가 따라와 다른 형상으로 같이 걷고 있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길쭉길쭉하게 과장되어 비추는 모습을 관찰하였다.


낮에는 주목하지 못했던 나무들의 존재가 고요 속에 휘파람 부는 듯, 큰 팔을 세차게 흔들고 있었다. 양쪽으로 줄지어 서있는 가로수가 웅장하게 다가왔다. 오롯이 들숨과 날숨, 그리고 잎새의 소리만이 남았다.


일요일 늦은 오후에 잠들어 초저녁에 일어나서 새벽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버릇처럼 누워서 쓰다가 일어나 노트북에 써 내려갔다. 그러다가 3시 즈음부터는 누워서 퇴고를 거듭하다가 잠들었다.


유이정<주절주절> 전문


이렇게 시 <주절주절>이 쓰여졌다. 그날, 오후 5시 즈음에 하루 뒤에 만나기로 한, 선생님 부고를 접했다. 시간이 지나고, 9일 새벽에 쓴 마지막 싯구가 선생님께서 남기는 메시지 "갈포듯 살어야(가볍게 살라)"는 것으로, 해석하고 가슴에 새겼다. 떠나기 이틀 전에 곧 만날 선생님을 생각하며 사진을 찾아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달랬었다.


우리는 지나고서야 깨닫는다. 혼이 이미 알아차린 것들을,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게되고 놀라워 한다. 그와 나를 연결한 친밀한 유대감, 서로를 향한 사랑이 한 방향으로 이어져 있었음을 나중에야 알아차린다.



Photo by 김혜윤 엘리사벳 <엘리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