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유학기
그놈이 갔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 안드레아
긴긴 코로나로 우리의 세상은 질서가 깨졌다. 매일매일 초등 아들들은 신났고, 내신시험과 입시를 앞둔 딸들은 고충을 토로했다. 등교를 안 하고 온라인으로 수업하는 날이 많아서 집안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시시때때로 경비실에서 연락이 오고, 아래층에서는 우리가 자는 한밤중이나 새벽에 보복으로 인터폰을 울리기도 했다. 빨간색 거친 글씨체 경고문이 엘리베이터에 붙은 것을 보며 행여 아이들이 다칠세라 불안했다.
집에만 가둬둘 수는 없어서 안드레아의 시골에 살고픈 갈망, 농부가 꿈인 막둥이의 요청으로, 남태령에 주말농장을 시작하였다. 또 뜻 맞는 엄마들이랑 서울경기권 숲놀이를 정기적으로 진행하면서 코시국 첫 해를 들에서 산에서 맘껏 놀 수 있게 하였다.
우리가 사는 동네는 한 반에 학생수가 30명 넘는 과밀지역이다. 확진자 소식에 따라 갑자기 일상이 멈추는 일이 다반사였다. 교실에서, 방과 후 수업에서 태권도장에서, 학원에서 코로나 확진판정을 받은 친구가 있으면 때마다 비상이다. 불쑥불쑥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길고 긴 줄을 서야 했다.
한 아이가 동선이 겹쳐서 주 3번 검사대상이 되기도 했다. 다자녀라, 주 3~4회 바쁜 일을 놔두고 선별진료소로 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행여 동생들 때문에 누나들이 시험을 못 보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서 시험기간에는 아빠와 한적한 곳으로 여행을 보내기도 했다.
이런 불안한 상황에도 두려움 없이 매일 등교하는 농산어촌 유학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드디어 2021년 12월에 22학년도 농산어촌유학생 모집에 신청서를 제출하고부터 나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시작되었다.
1월 초에 지역탐방을 다녀오면서 안드레아의 결심은 더 굳세졌고 우리 부부도 아늑한 마을, 학교와 머무를 센터, 그리고 이웃마을 성당을 두루두루 보고서 밝고 따스한 분위기에 안심하며 돌아왔다.
안드레아는 1월 하순에 3년 차 활동하는 합창단 캠프를 다녀오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토록 즐기고 인정받는 단체에 계속 머물고픈 마음과 신세계에 대한 동경, 열두 살 어린이가 감당하기에 버거운 번민으로 괴로워했다. 일주일 살아보고 결정하자는 우리의 권유로 마음을 다독이고 다섯 시간 거리의 머나먼 남쪽마을로 향했다.
"아들아 힘들면 언제든 돌아오너라, 아무리 그곳이 좋아도 일 년 안에는 돌아오거라." 그리고 주일미사에 꼭 가기를 당부하였다. 안드레아는 여행지에 온 것 마냥 생글생글 신나 했다. 아들을 혼자 두고 올 생각에 심경이 복잡했는데 그날에서야 찬찬히 더 자세히 안드레아를 볼 수 있었다.
가족처럼 정겹게 환영해 주는 센터에서 유학생들과 수줍게 인사하던 아들은, 어느새 활달하게 무리 속에 섞이여 연을 날렸다. 이제 갓 태어난 하얀색 강아지 순둥이에게 아끼는 담요를 내어주며, 자연의 아들로 너른 들판과 마당을 만끽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웃마을 벌교성당 저녁미사에 지향을 쓰고 안드레아를 위한 생미사에 봉헌하였다. 신부님께 인사드리고 남편은 먼저 상경했다. 센터에서 아들과 잠자리에 드는데 꼭 끌어안으며 “엄마! 우리 이렇게 둘은 처음이야, 너무 좋다 “
새벽 3시에도 철없이 울어대는 암탉의 홰치는 소리와 잔바람에도 깊이 울려 퍼지는 풍경소리에 깨어서, 홀로 새로운 환경에 지내게 될 어린 안드레아에 대한 걱정으로 잠들지 못했다. 이런 엄마와는 달리 아들은 피로감과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긴장이 녹아서인지 다디단 꿀잠을 자고 있었다.
이튿날, 새벽기운이 도는 2월의 이른 7시에 첫 동네산책에 나서는 아들의 얼굴이 기대감에 차있다. 아침식사 마치고 바로 마당에 뛰어나가 어울리며 노는 아들. 엄마가 떠나는 길에도 멀찌감치 서서 손만 흔드는 안드레아. 서운한 마음보다는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는 안심하게 되었다. 서울행 버스에 오르고 나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잠에 빠져들었다.
힘과 용기를 내어라.
무서워하지도 말고 놀라지도 마라.
네가 어디를 가든지 주 너의 하느님이
너와 함께 있어 주겠다.
(여호 1,9)
- 2022년 2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