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이 흩날린다.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주말 먹거리장을 보고 오는 길목에서, 눈은 뜻밖의 선물처럼 마음을 붙든다. 장바구니 안에는 두부와 시금치, 귤과 치즈케이크가 들어 있고, 내 어깨 위에는 세월이 내려앉아 있다.
눈이 내리는 순간만큼은 나이가 의미를 잃는다. 아이처럼 발걸음이 느려지고, 괜히 손바닥을 펼쳐 눈송이를 받아보고 싶어진다. 이웃들이 볼세라 웃음을 삼키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이미 오래전 동심이 깨어난다.
동구 밖 강아지가 뛰놀던 고샅길이 떠오른다. 비포장 흙길에 쌓이던 함박눈, 눈 위에 찍히는 내 발자국과 동생의 발자국, 그 사이를 뛰어다니는 누렁이. 눈은 그 시절 우리에게 놀이였고, 축제였고, 아무런 계산이 필요 없는 기쁨이었다. 추위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젖은 장갑도 대수롭지 않았다. 마법처럼 눈은 세상을 하얗게 덮어 주었고, 우리는 꿈을 그렸다.
대도시 빌딩 숲 사이를 걷는다. 고층 아파트가 늘어선 가로등 위로 눈발이 흩날린다. 콘크리트와 유리, 나무 풍경 위에 내려앉는 눈은 차량 소리와 신호등 불빛 사이에서 반짝인다. 눈송이는 폭포수처럼 세차게 흩날리다가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 짧은 순간에도,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본다. 시공을 초월해, 눈은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간다.
어릴 적 불렀던 동요가 문득 떠오른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하얀 가루를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는 노랫말은 세상을 선의와 환상으로 보여 준다. 눈이란 차가운 기상 현상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길로 뿌려진 축복이라고 여겨진다.
그 노래를 부르는 딸이었던 시절, 세상이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은 사 남매 엄마가 되어, 아이들의 신발이 젖지 않을지, 도로가 얼지는 않았는지 먼저 걱정한다. 그러나 눈이 펄펄 내리는 순간만큼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책임과 계산을 잠시 내려놓고, 이유 없이 기뻐할 수 있었던 시간으로.
기억은 현재의 나를 다시 살피는 것임을 눈을 통해 배운다. 우리는 언제부터 기쁨에 조건을 달기 시작했는가. 언제부터 아름다움을 효율로 재기 시작했는가. 눈은 쌓이지 않아도 아름답고, 오래 머물지 않아도 의미가 있다.
삶은 늘 무게를 더해 간다. 자녀들의 성장, 부모의 노쇠, 가계부의 숫자, 뉴스 속 불안한 세상. 그 모든 현실 앞에서 희망은 쉽게 말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눈이 내리는 장면을 바라보는 이 짧은 시간만큼은, 희망이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희망은 사소한 감각에서 시작된다.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느끼는 청량함, 펄펄 내리는 흰 점들이 만드는 침묵의 풍경, 그리고 가슴에 다시 살아나는 노래 한 소절. 그것이면 이미 충분하다.
아이들에게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창밖을 바라볼 때마다, 여전히 눈을 찬미하는 사람이다. 고샅길의 아이면서, 빌딩 숲의 중년이고, 어린 딸이었으며 사 남매 엄마다. 눈 내리는 풍경 속에서, 나는 잃었던 동심을 되찾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