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아낸 나에게

by 에밀리


오늘 하루를 정리하듯 나에게 말을 건다.

대단한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일이면 기억이 안 날 수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익숙하게 눈을 반쯤 뜨고서 거실을 지나가고, 어제와 같은 순서로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강아지를 살피고 밖으로 나갔다. 매일의 장면들 사이에서 나도 풍경이 되어 살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전철을 타면서, 약속 장소를 찾으며 두리번거릴 때도 내 손에는 직사각형 화면이 켜져 있었다. 쉴 새 없이 오는 알림 메시지와 톡, SNS를 끄고 나니 갑자기 시간이 남았다.


손에서 현란하게 시선을 끄는 비교의 도구를 내려놓자, 허전함이 밀려온다. 타인의 성취와 웃음이 사라진 자리에 소박하지만 편안한 내 하루가 고스란히 보였다.


조금 느리고, 특별할 것 없는 리듬으로 하루를 보낸다. 지금의 나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한때는 조급한 마음이 몰려올 때도 있었다. 지금은 이대로 잔잔한 시간에 고요히 머물 수 있어서 좋다.



해질녘, 양재천을 걷는다. 물은 조용히 흐르고 있었고, 억새는 바람에 몸을 맡긴다. 낮달은 벌써 마중 와서 파란 하늘 끝을 오래 붙들고 있다. 이 풍경 앞에서 나는 욕심도, 과오도 훌훌 내려놓는다. 그저 오늘을 지나왔다는 사실만으로 편안해진다.


삶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대신, 반복되는 똑같은 날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진다. 예전에는 잘 살고 있는지 물었고, 지금은 버티고 있는지를 먼저 본다.


잘 산 어제보다, 무너지지 않은 오늘이 더 중요해졌다. 마음이 여러 번 기울었다. 괜찮은 척을 하면서도, 괜찮지 않은 나를 알아보았다.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는 알고 있었다.


조용히 넘긴 순간들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그래도 우리는 오늘을 통과했다. 눈에 띄는 성취는 없지만, 도망치지 않고 머물렀다. 하고픈 말은 삼켰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않았다. 이제야 배우는 것은, 참는 법보다 지나가게 두는 법이다.


희망이라는 말이 크게 들리지 않는다. 대신 작은 확신이 남는다. 내일도 또 걷게 될 것이라는 것. 오늘처럼 걷다가 멈추어 감탄할 것이고, 또 나무와 하늘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반복이 곧 삶이라는 것을.



오늘을 살아낸 나에게 조용히 말해본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았다고. 빛나지 않아도 충분했다고. 견디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하루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노을이 물 위에서 천천히 지워지듯 오늘도 그렇게 지나간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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