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의 재봉틀 소리

by 에밀리


서울고속터미널 경부선 상가 4층에 달려갔다. 2월의 마지막 날, 그리고 3월 2일에 입학식 하루 앞두고 빠른 걸음으로 찾았다. 지난 2월 28일은 한 시간이나 기다려 이름표 탈부착을 하고 돌아왔다.


영재고 들어가는 아들이 기숙사에서 입을 옷이며 체육복, 교복을 가져온 엄마, 소위로 임관하는 아들을 위해 군복을 들고 온 삼 남매 엄마.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딸 이름표를 새기러 온 학부모들. 옆으로 나란히 앉아서 기다리며 서로에게 축하와 덕담을 건넸다.


나는 셋째가 입었던 교복을 막둥이에게 물려주느라 이름표를 떼어내고, 새로 장만한 큰 체육복에는 셋째 이름을 박음질 부탁했다. 막둥이는 아직 학교에서 못 받아서 3월 중순 즈음에 다시 오갈 듯하다.


니트 조끼에도 형 이름표가 붙은 것을 확인하고, 이름 명찰집 '보성스모크'로 향했다. 토요일, 일요일 쉬고, 월요일도 휴일인데 다행히 문 열어서, 마감 시간대 다녀왔다.


첫아들인 셋째는 교복을 입학식 하루만 입었고, 2년을 주구장창 체육복만 입고 등하교했다. 심지어 새옷인 채로 생활복을 단 한 번도 안 입었다. 막둥이는 자연스레 교복을 물려받았고, 체육복만 두 벌 구입했다.


얇고 긴 원단을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꺼내는 한 손님이 눈에 띄었다. 문화센터 살풀이춤 소품이라 했다. 잠자리 날개처럼 가벼운 천이 공기 속에서 흔들렸다. 비치는 천의 가장자리를 둥글게 마감질하는 마리아 아주머니 손길은, 춤의 끝동작처럼 부드러웠다.

이 기계가 동대문에 있고, 우리 동네는 여기뿐이라고 해서 왔어요.”라고 말하며 "세탁소 아저씨 소개로 왔어요" 라는 말에, 마리아 아주머니는 “이것은 오바로크와는 달라요. 인타로크예요.” 하고 덧붙였다. 생소한 전문용어를 재차 되묻고, 바로 뒤에 서서 바라보았다.


마리아 아주머니는 아저씨 옆자리에서 전화를 받고, 손님의 요청을 확인하고, 실밥을 빼주며 옷감을 정돈하는 보조자 역할만 있는 줄 알았다. 이곳을 드나드는 십여 년 세월 동안 아주머니가 재봉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아주머니 또한 기술자였던 것이다.


칠십을 훌쩍 넘긴 노부부가 보성스모크 주인이다. 아저씨는 이름을 새기고, 아주머니는 인타로크로 가장자리를 돌린다. 두 대의 재봉틀이 번갈아 울리며 공간을 채웠다. 그 소리는, 오십 년을 맞물려 어긋나지 않는 이중주처럼 울렸다. 장인정신은 기술 숙련 이상의 것, 삶의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얼마나 잘하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같은 방향으로' 왔는지 와닿았다.


이름표는 작다. 그 작은 조각이 옷의 주인을 바꾸고, 형의 시간을 동생에게 건네며, 노부부의 손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세대는 그렇게 이어진다. 재봉틀 소리는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도 남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다. 아이들의 학교생활도 둥글게 이어지기를 바라며 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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