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그것, 글쓰기를 음미하다

오늘의 촉매제. 인생나눔교실 (ft. 글쓰기 수업)

by 아홍

맛집이라고 해서 찾아간 곳이 나의 입맛에 맞지 않은 경우도 많았고, 낯선 곳을 여행하다 아무 정보도 없이 우연히 들어갔는데 괜찮은 곳도 있었다.

20주간의 글쓰기 수업은 후자에 해당된다. 낯선 거리에서 언젠가 가보고 싶은 나라의 코스요리를 하는 식당을 발견한다. 가볼까? 말까? 들어갈까? 다른 곳에 갈까? 처음이라는 낯선 환경에 뇌는 바쁘다. 결국 문을 열고 들어간다. 막연한 호기심에의 이끌림으로 별점도 찾아보지 않고, 후기 검색도 하지 않고 아무 정보도 없이.

모든 요리가 내 입맛에 맞았던 것은 아니다. 전채요리는 내가 좋아하지 않은 재료로 만들어서 내 입에 쓰다. 이미 들어왔고 주문을 했고 요리가 나왔고 나갈 수도 없다. 끝까지 먹어보기로 한다. 이어서 나오는 메인 요리들이 내 입맛을 자극한다. 처음 먹어보는 요리들이 잠들어있던 미각을 깨우는 듯하다. 음~ 괜찮은데?! 가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재료가 들어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메인 요리들은 아주 훌륭하다. 마지막을 장식한 디저트는 달콤하기까지 하다. 꽤 만족스러운 코스요리를 즐겼다.

□ 전채요리.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글쓰기 수업 들으실래요?"
중학생이 되면서 글쓰기 수행을 너무 힘들어하는 딸의 스트레스 게이지가 계속해서 높아져만 갔다.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자니 나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침 들려온 구세주 같은 한 마디. "저요~ 저 들을래요." 내가 글이 쓰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딸에게 조언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참여를 했다.

첫 수업 때 나는 울었다.
글을 잘 쓰고 싶으면 나를 알아가고 나를 드러내는 것부터 시작이라며, 나를 찾아가는 질문과 답을 하며 인생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딸로서만 살다 보니, 없어진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었다.
나를 한 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다가 갑작스레 나를 들여다보는 방식의 수업을 하니 안 그래도 눈물 많은 나는 힘들었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이 수업 이대로 괜찮을까, 매 수업시간마다 우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나의 이 모습을 반대쪽에 앉아 계셨던 선생님이 느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행히 두 번째 수업에서는 수위가 많이 낮아짐을 느꼈다. 그러나 언제 훅~하고 들어올지 모르는 질문에, 나를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울지 않기 위해 과거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한 번은 제대로 대면하면서 마음껏 울고 나면 담담해지겠지란 생각에 2주간은 나와 나의 인생 톺아보기를 했다. 하나하나 곱씹어보며 '울지 말자 울지 말자'의 시간이었다.

□ 메인 요리. 글을 쓰는 시간
그제서야 활동 계획서를 제대로 읽어보았다. '읽고 쓰기로 나누는 인생 이야기'라고 적혀 있었다. '글쓰기'가 메인이 아니고, '인생이야기'가 메인인 인생 나눔 수업이었다. 사람은 본인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본인에게 필요한 것만 보는 존재임을 또다시 알게 됐다.

이왕 수업을 듣기로 했으니 나의 인생이야기를 하자고, 쓰자고 다짐했다. 선생님은 매주 주제에 맞는 책과 그에 어울리는 질문으로 준비한 요리를 음미하게 했다. 마음의 문을 여니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현재의 나와 현재의 내가 있기까지의 과거를 둘러보는, 나를 대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서 좋았다.
수업 중에 나눈 다양한 이야기들이 촉매제가 되어 내 마음속 저기 깊숙이에, 내 머릿속 저기 어딘가에 던져놓았거나 숨겨놨던 것들이 글감이 되어 돌아왔다.

글감은 하나, 둘 떠오르는데 글쓰기는 어려웠다. 객관식, 단답형 시대에서 공부를 해 온 나는 글을 쓸 필요도 없었고, 써 본 적도 없다. 게다가 연례행사도 되지 않을 정도로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처음으로 글이란 것을 쓰려니 도대체 어떻게 써야 하는지, 어떻게 사유를 담아 써 내려가야 하는지 몰라서 일주일 내내 고민하고 긁적였다.

쓴 글을 내놓기는 더 어려웠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내는 것도 불편했고, 유초딩 수준의 글을 쓰는 나를 들키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숙제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범생이인 나는 매주 글감을 찾고 고민하고 긁적이고 매만지지만, 공개에의 부끄러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제출은 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1도 없었는데 숙제가 아닌데도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자발적으로 글을 쓰게 되니 나의 글이 어떤지 들어보고 싶어졌다. 나를 드러내기로 했다. 처음 한번 용기 내는 것이 어렵다. "이만하면 됐어" "일단 부딪혀보는 거야"라며 다독이며 부끄러움을 이겨냈다. '용기 내자 용기 내자'의 시간이었다.

□ 디저트. 나의 책을 상상하는 시간
글을 써서 밥통이라도 타고 싶다는 분이 계셨다. 선생님은 다양한 공모전이 있다고 길을 알려 주시지만 나에게는 와닿지 않았다. "내가 무슨. 난 아직 멀었어. 나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야."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무시했다,

인생이야기는 누구나 쓰는 소재여서 내가 쓰는 글이 최초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연례행사로도 읽지 않던 책을 월례행사로 읽어보니 글을 못 쓴다는 것을 느낀다. 사유가 없다는 것도 안다. 최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냥 글이 쓰고 싶어지면 나만의 방식으로 글을 즐기는 사람이 되자.


최초가 되는 길, 최고가 되는 길이 아닌 즐기는 길을 선택하니 브런치 작가만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사를 통과해야만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쓸 수 있는 브런치 작가가 된다니, 일종의 기초학력 평가 같은 테스트가 있는 것도 꽤 괜찮게 다가왔다. 도전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용기만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이젠 나만의 책을 상상하고 있다. '만에 하나 내가 책을 낸다면...' 이런 달콤한 상상을 하며 '도전하자 도전하자'의 시간이었다.

□ 식사를 마치고 나오며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인 전채요리에서 시작해서, 메인 요리인 글을 쓰는 시간을 지나, 나의 책을 상상해 보는 달콤한 디저트까지 맛보았다. 사람마다 입맛은 다 다르다. 아무리 소문난 맛집에 가도 나에게 맞는 음식, 맞지 않는 음식이 있다. 나에게는 20번의 수업은 후기가 쓰고 싶을 정도로 괜찮은 코스요리였다.

그뿐만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그 각각의 수업도 역시 코스요리였다. 본 수업에 들어가기 전 관심과 집중을 일으키는 전채요리 책, 수업 주제인 메인요리 책, 주제와 관련해서 읽어보면 좋다며 소개해준 곁들임 책, 수업이 끝나고도 애정 어린 마음으로 알려주는 디저트 책까지. 책의 이야기를 나누고, 수많은 질문과 대답들이 오고 가는 나날 속에서 나를 만나는 놀라움을 경험을 했다. 선생님이 차려준 수업이 끝났다. 이젠 내가 직접 차려야 한다. 재료 선택부터 손질, 그리고 나만의 레시피로 나만의 밥상을. 숙제형 인간인 내가 혼자서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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