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텔게우스에서 다름을 배우다
오늘의 촉매제. 유우리의 <베텔기우스>
최근 딸이 J-POP이 너무 좋다며 무한 반복해서 듣고 있는 노래가 있다. 노래 가사에도 계속 등장하는 '베텔기우스'라는 제목의 곡이다. 딸에게는 베텔기우스가 노래로 다가갔고, 나에게는 추억의 별자리인 오리온자리에 있는 하나의 별로 다가왔다. 동상이몽. 딸과 나는 같은 것을 들으며 다르게 바라보고 다르게 생각했다.
"하늘에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더니 그건 별이라고 네가 알려 주었어" 노래가사처럼 나에게 오리온자리를 알려 준 것도 친구였다. '아빠 어디가'가 유행이던 시절, 우리는'엄마 어디가'를 했다. 엄마와 아이들만 떠난 강원도 여행에서 숙소 테라스에 있던 스파에 들어가 밤하늘을 함께 보았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무수히 많은 별들 사이에서 친구는 오리온자리 찾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 뒤로 밤하늘을 볼 때마다 오리온자리를 찾으려 하고, 발견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그날을 추억하고, 친구에게 받은 것을 다른 이들에게도 나눠준다.
내가 밤하늘에서 찾을 수 있는 몇 개 되지 않는 별자리 중 하나, 발견할 때마다 기분 좋은 추억을 되살리게 하는 별자리 오리온자리, 그 오리온자리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 붉은 별 베텔게우스다.
"남반구의 별자리는 보셨습니까?" 호주 여행 당시 일일투어 가이드의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랬다. 우리는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른 반구에 와 있었다. 한국은 겨울이 한창일 때 여름을 지나고 있는 호주에 와 있었는데 미쳐 밤하늘을, 그리고 별들을 볼 생각은 못 했다. 북반구에서는 볼 수 없는 별자리도 있을 텐데 무지로 인해 또 언제 올 수 있을지 모를 남반구의 밤하늘은 수박 겉핥기로 그냥 한 번 올려다보는 것이 다였다. 그렇게 올려다본 호주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한여름밤의 하늘에서 오리온자리가 내 눈에 들어왔다. 기쁨과 놀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북반구에 있는 한국에서는 겨울철 남쪽 하늘에서 보던 별자리를, 남반구에 있는 호주에서는 여름철 북쪽 하늘에서 만난 것이다. 남반구에서 본 오리온자리의 모양이 어딘가 다름도 느꼈다. 위아래가 반대였다. 같은 하늘을 바라봐도 별자리가 다르게 보이듯 모든 만물이 그러하다. 보는 사람의 위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사실은 그대로 하나로 있는데, 보는 사람의 위치, 입장, 이해관계, 보고 싶은 마음에 따라 여러 개로 달라진다.
내가 상대방과 똑같은 위치에 가거나, 내 위치에서 본 것을 2번의 데칼코마니를 하든, 180도로 돌리든, 무언가를 해야 비로소 같아진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을 이해하려는 과정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 노력을 생략하고 틀렸다고 하지 말자.
내가 딸에게 잔소리할 때마다 딸이 하는 말이 있다. "그럴 수 있지". 그래 모든 것이 나와 같을 수 없다. 모든 것이 나의 마음과 같을 수 없다. 나도 그럴 수 있고, 타인도 그럴 수 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이해받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