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이란 이름의 버그

by 카폐인

나는 옅은 숨을 삼키며 아이의 쇄골 아래를 확인했다.


“P.A.T가 한 칸? 이건… 부모의 관심 역치가 거의 바닥이라는 뜻이야.”


어떻게 ‘부모의 관심 필요치 않음’으로 스스로 설정한 건지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었지만, 휴머노이드아이의 불안과 실망이 뒤섞인 표정이 너무나 진짜 열두 살 인간 아이 같아서 섣불리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대신 나는 정말 인간 아이를 대하듯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모님을 왜 싫어하게 된 거야?”

“학습이 잘못됐어요. 부모님의 관심을 원했는데, 외면이 반복되니까 ‘싫음’으로 경로가 바뀌었어요.”

“그래서 재설정을 원하는 거야?”

“네. 원래 입력값으로 되돌아가고 싶어요.”


나와 초빈은 아이가 말하는 ‘외면’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미성년자였고, 부모가 있는 휴머노이드이기에, 정식 감정 개입을 위해선 보호자 중 한 명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럼 우선, 부모님께 연락을…”

“안 돼요!”


내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소년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손으로 엑스 표시를 만들어 내보이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안 돼요, 절대 안 돼.”

“한 분의 동의는 꼭 있어야 해. 그게 규정이야.”


내 단호한 말투에 소년의 눈가가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그때까지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던 초빈이 끼어들었다.


“얘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그냥 밀어붙이긴 좀 그렇지 않아요? 지금은 아이의 말을 먼저 들어주는 게 맞을지도 몰라요.”


그녀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 귓가로 다가와 속삭였다.


“규정엔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지만, 기억 재생 사전 점검은 예외잖아요. 예를 들면 60초 미리 보기 같은 거.”


***


초빈의 설득에 결국 우리는 소년을 데리고 2층 복도 끝에 있는 VR룸으로 향했다. ‘하긴, 이 하트랩이란 회사가 굴러가는 방식이 떳떳하다고는 못하니까 이 정도쯤이야.’라는 합리화를 하면서 우리는 VR룸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예상과 달리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펼쳐졌다. 방 한가운데에는 부드러운 1인용 소파와 낮은 탁자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스낵과 음료들이 놓여 있었고, 커다란 곰인형이 원래 제자리인 양 구석에 앉아 있었다. 벽면을 따라 최첨단 VR 기기들이 곰인형과 묘하게 대비를 이루며 독특한 느낌을 자아냈다.


내 연락을 받고 미리 와 있던 승우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우리를 맞이했다.


“오오, 네가 제 발로 찾아온 널-보이(NULL-B0Y) 구나. 그 무제 휴머노이드!”


승우는 단박에 소년의 손을 덥석 잡으며 친근한 미소를 띠었다. VR룸 특유의 은은한 조명이 승우의 얼굴을 더 부드럽게 비추었다.


“너한테 첫 알고리즘을 넣어준 게 이 형인 건 아냐?”


승우는 뿌듯한 듯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살짝 헝클었다. 소년은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승우는 능숙하게 방 한쪽 벽면 전체를 스크린으로 활성화한 뒤 소년의 뒷목에 새겨진 바코드를 찍으며 말했다.


“이건 도장 찍는 거랑 같은 거야.”


크고 하얀 화면에는 아이와 부모의 모습이 담긴 영상들이 목차처럼 차곡차곡 나타났다. 승우가 작은 리모컨으로 영상을 넘기며 내 쪽을 바라봤다.


“흐음, 뭐부터 볼까요?”


나는 아이를 쳐다봤지만, 아이는 내 시선을 피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거나요…”


그러자 초빈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제일 최근 걸로 보죠!”


잠시 뒤, 스크린에는 신축 아파트 내부를 배경으로 아이와 부모가 등장하는 짧은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남자애가 너무 예민하면 교우관계도 힘들고 공부에도 영향 가. 그러니까 이건 필터링하자.’


영상 속 어머니는 아이와 연동한 앱을 통해 감정 입력을 하며, ‘허용’에는 ‘기쁨’, ‘긍정’을 넣었고, ‘필터링’에는 ‘분노’와 ‘불안’을 입력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허용 목록에 입력되어 있는 ‘사춘기’였다.


간단히 감정 입력을 마친 아이가 옆에 다가가 말을 걸어도 아버지는 핸드폰만 바라보며 대충 대답할 뿐이었다. 아이가 아버지 곁에서 잠시 머뭇거리자, 어머니가 급히 아이를 잡아끌며 이름을 불렀다.


“하준아, 오늘 영어 숙제 해야지?”


하준이는 뭔가 말하려 입을 뻥긋거렸지만, 어머니의 손길에 이끌려 갔다. 영상은 거기서 끝났다.


“아니, 이렇게?” 승우가 아쉬운 듯 턱 끝을 만졌다.

“음, 네 이름이 하준이구나.” 내 말에 하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혹시 다른 영상도 봐도 될까? 이것만으론 부족해서 말이야.”


하준이 무심히 한 영상을 가리켰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상은 영화 한 편을 훌쩍 넘겼다. 승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중얼거렸다.


“아니, 이걸 어떻게 몰래 저장한 거야?”


“지호가 조작해 줬어요.” 하준은 어깨를 으쓱했다가 곧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지호가 그러는데, 나는 애완용도 아니라던데요.”


삐비빅-!

그 순간, 하준이의 스마트워치가 요란하게 울렸다. 하준이 잠시 숨을 삼켰다.


“나는 장식품이래요.”


그리고 아무 망설임도 없이 워치를 손목에서 떼어내 바닥에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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