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학교에서 매일 살아남는 미션을 수행 중이에요.”
하준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매일 학교에서 전교생을 상대로 홀로 서바이벌게임을 하고 있었다. 하준이를 제외한 단톡방은 언제나 북적였다.
-하준이는 광대니까 시키는 대로밖에 못해.
-저 피규어, 하루 종일 웃는데 얼굴에 쥐 안 나냐? 진짜 웃음인지 확인해 보자.
-야,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걔 눈이 카메라잖아. 다 녹화된다며?
채팅창을 가득 메우는 대화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이어졌다. 물리적인 폭력은 없었지만, 더 교묘하고 은밀한 방법으로 잔인하게 괴롭혔다. 교내에서는 ‘하준 반응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찍힌 영상들이 암암리에 퍼졌다. 하준이가 교실을 미소 지으며 지나갈 때마다, 아이들은 폰화면에 웃는 이모티콘을 띄워 조용히 들어 올렸다.
하준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시선을 바닥에 둔 채, 미소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입꼬리를 애써 붙잡고 있었다. 하준이는 이미 이 ‘반응 실험’이 어떤 결과를 원하는지 알았다. 만약 여기서 조금이라도 다른 감정을 보이면, 영상은 곧바로 학교 전체로 퍼져 나갈 것이고, 그로 인한 후폭풍은 자신에게 되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사람 코스프레 제대로네~.”
조롱 섞인 목소리가 소년의 등 뒤로 날아와 꽂혔다. 동급생 중 한 명이 하준의 등을 손끝으로 쿡쿡 찔렀지만, 하준은 멈추지 않고 걸었다.
뒤에서 들리는 가벼운 웃음들이 하준의 귀가 그대로 녹음하고 있었다. 하준의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지만, 가슴 어디 한 곳에서는 단 하나의 숫자도 읽히지 않는 오류 코드가 깜빡이고 있었다.
가슴에 내장된 감정 프로세서가 미세한 진동과 함께 빠르게 점멸했다. 심박수가 분당 100회 이상 뛰었고, 손끝의 온도 센서는 정상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낯선 감정의 리듬이 하준의 시스템을 서서히 장악해 갔다. 그때 손목에서 스마트워치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이상함을 감지한 엄마의 연락이었다. 하준은 진동을 느끼자마자 눈동자가 아주 잠시 흔들렸지만, 심호흡을 하니 다시 밝은 얼굴을 되찾았다.
하준이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했지만, 정확히 일치하는 감정 명칭을 찾지 못했다. 분명 존재하지만 정의되지 않은, 버그처럼 침입한 미확인 감정이었다.
***
“이게 하준 군이 직접 학교 생활을 녹화한 영상입니다.”
“그래서요?”
나는 일시 정지된 화면 위에 손가락을 얹은 채, 재생 버튼을 누르지 않고 하준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께서 한 번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됐어요.”
그녀는 짜증을 억누르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어차피 전 실시간으로 아이가 뭘 하는지 다 지켜보고 있는데, 뭐가 더 필요하죠?”
방 안 공기는 향수 냄새보다 더 짙은 자부심과 허영으로 가득했다. 하준의 엄마, 우리의 고객은 아이가 워치를 바닥에 던진 지 1분 만에 하트랩에 나타났다.
그녀는 하준의 동선을 초 단위로 파악하고 있었고, 아이가 평소와 다른 길을 택한 순간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등장에도 하준이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대신 입력값대로 그녀를 보자마자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했다. 하준의 엄마는 인자한 미소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부모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던 아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순종적인 모습으로 변한 것을 보니, 나는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나저나 업데이트하면 더 좋아진다는데, 오늘부터 당장 하죠?”
하준의 엄마는 너무나 쉽게 동의했다. 마치 신형 가전제품의 업그레이드에 동의하는 고객처럼, 아들의 상태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무슨 뜻이죠?”
나와 초빈은 씁쓸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그녀는 휴머노이드 아들의 ‘마음’이 왜 고장 났는지 물어볼 생각조차 없었다. 그저 더 완벽한 상품이 되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준은 일찌감치 승우가 '청소'라는 핑계로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나에겐 엄마의 냉담한 얼굴을 아이가 직접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게 조금이나마 위안이었다.
“휴머노이드가 스스로 재설정을 요청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데이터에 심각한 혼란이 생긴 거죠. 정확한 원인을 찾으려면 최근 부모님과의 교감 데이터를 분석해야 합니다. 동의해 주시겠습니까?”
그녀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의 완벽한 아이가 스스로 '재설정'을 원했다는 사실이 그녀의 자존심에 깊은 균열을 낸 듯 보였다. 잠시 후 그녀는 진동하는 휴대폰을 집어 들며 입을 열었다.
“아휴, 언니. 애가 6학년 올라가면 포르셰 정도는 타야죠. 요즘은 야구도 시켜야 하고요.”
그녀는 하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한 번도 감정이나 아이의 성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오직 그녀가 얼마나 아이에게 투자하고 있는지 자랑할 뿐이었다. 그녀의 통화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기에 나는 초빈에게 잠깐 자리를 부탁한다고 말한 뒤 복도로 나왔다.
마침, 저 멀리서 승우가 심각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백사자씨, 이것 좀 보세요.”
그가 내민 태블릿 화면 위에는 '헤이트 파편'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있었다. 그 아래로는 '불안', '혼란', '고립', 그리고 '소멸 충동'이라는 단어들이 나타나다 흐려지길 반복했다.
또 헤이트다. 한이결이 말한 그 감정 쓰레기통. 나는 일순간 차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고객이 요청하지도 않은 감정의 찌꺼기들이 바이러스처럼 침투되는 건 정말 헤이트 때문인 걸까?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더 이상 소년의 미소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본 입력값처럼 주어진 감정이 아니라, 도움을 애타게 바라는 간절한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