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임시방화벽 그리고

by 카폐인


복도에서 소승우와 헤이트에 대한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VR룸에서 우당탕 무언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급히 문을 열었다.


“이건 제겁니다.”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실내의 공기를 갈랐다. 하준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초빈과 정면으로 마주 선 채, 한 손으론 초빈의 손목을, 다른 한 손엔 하준이가 부순 워치를 들고 있었다. 워치를 쥔 그녀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허락 없이 제 물건에 손대지 마세요.”

“이건 하준이의 것이지 어머니 것이 아닙니다.”


초빈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초빈의 시선은 감정 없는 엄마의 눈동자에 단단히 박혀 있었다.


“지금 아드님께 필요한 건 보호자의 자존심이 아닙니다.”

“참나, 기막혀서.”


하준의 엄마가 말을 자르며 초빈의 손을 거칠게 밀쳤다.


“감정 따위, 계속 업데이트하는 아이에게 잘만 설정하면 되는 겁니다.”


그녀의 말에 초빈의 눈빛이 돌처럼 굳었다. 반사적으로 워치를 잡아채자, 하준의 엄마가 재빨리 그것을 도로 낚아챘다.


“어머니, 이거 놓으세요!”

“이건 보호자의 정당한 권한이자, 소비자의 권리예요!”


두 사람의 손이 격하게 얽혔다.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작은 실랑이는 순식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초빈의 기계손 힘에 밀려 하준의 엄마가 휘청이며 균형을 잃는가 싶더니, 그녀는 이를 악물고 다시 워치를 쥔 초빈의 손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하트랩 워치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탁!


날카로운 파열음이 정적을 만들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둘 사이로 뛰어들었다.


“두 분, 모두 진정하세요!”


초빈은 거친 숨을 고르며 말없이 뒤로 물러섰다. 손등에 선명하게 찍힌 붉은 손톱자국이 따끔거리는지 눈썹을 찡그렸다. 하준의 엄마는 흐트러진 머리칼을 아무렇지 않게 정돈하며 천천히 바닥의 워치를 주워 들었다. 깨진 액정은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 고소하겠습니다.” 그녀는 날 선 눈빛으로 초빈을 쏘아붙였다.


“그리고 내 아들, 어디 있죠? 당장 데려가겠습니다.”


때마침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하준이 문 뒤에서 걸어 나왔다.

“엄마, 사랑해요.”


소년의 입꼬리는 정교하게 계산된 각도로 올라가 있었고, 작은 목소리는 인공적인 온기를 담고 있었다. 소승우는 문가에 서성이며 개미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임시방화벽을 설치해서, 당분간 짜증내거나 화를 내지 않을 거예요….”


하준의 엄마는 만족스럽다는 듯 아이를 끌어안고는 우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 정도면 충분한 거죠?”


나는 붙잡을 명분이 없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초빈 역시 아무 말 없이 그저 손등에 남은 붉은 흔적을 멍하니 응시하며 짧은 한숨만 내쉬었다.


“하준아, 가자.”


하준의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막 돌아서려는 순간, 소승우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아, 그리고….”


하지만 하준의 엄마는 더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단호하게 손을 들어 소승우의 말을 제지했다. 그녀는 아이의 손을 단단히 잡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사람처럼 복도를 빠져나갔다.


***


“말 그대로 임시예요. 평생 갈 수는 없어요. 해가 거듭될수록 나이에 맞게 감정도, 표현도 입력하고 학습시켜야 하는데 어떻게 감당할지 모르겠어요.”


소승우의 목소리에는 가벼운 탄식이 섞여 있었다. 어색한 공기가 방을 채웠다. 나와 초빈은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초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역추적 가능하죠? 하준이란 아이, 너무 안쓰러워요.”


그녀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모두에게 외면당하고, 혼자만 멀어진 느낌이 어떤 건지 알고 있었으니까. 하프휴먼으로 가득한 이 작은 회사에서도 나는 이따금 설명할 수 없는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존재의 본질이 다른 이들과 나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틈 같은 것이었다.


“백업은 해뒀어요. 그런데…”


소승우가 키보드 위에서 빠르게 손을 움직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머리를 흔들 때마다 팝콘처럼 부풀어 오른 그의 곱슬머리가 덩달아 춤을 췄다. 화면에는 복잡한 코드들이 춤추듯이 스쳐 지나갔다. 초빈이 손등의 붉은 흔적을 계속 매만지며 조급한 눈빛으로 소승우를 바라봤다. 나 역시 침을 삼키며 숨을 죽였다.


“감정 패치를 할 때 ‘헤이트’라는 단어가 함께 붙어 있었어요. 마치 사은품처럼요.”


초빈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가슴 한구석에서 기이한 불안감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럼 누군가 일부러 유입시켰단 건가요?”


소승우가 잠시 망설이듯 말을 고르다 입을 열었다.


“이런 건… 보통 숨길 장소가 필요하긴 하죠.”


초빈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럼, 찾을 수 있다는 뜻이죠?”


나와 초빈은 동시에 소승우가 바라보고 있는 모니터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우리의 시선이 모니터 화면을 뚫어버릴 듯 집중했다. 결함이 발견된 휴머노이드들에게서 계속 나타나는, 알 수 없는 감정의 찌꺼기. ‘헤이트’라는 이름의 파편. 그것이 실재하는 형태로 드러난다면, 반드시 묻고 싶었다.


너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침묵이 방 안을 채우던 그때, 소승우가 평소 커질 일 없던 눈을 최대한 동그랗게 떴다. 그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며 화면을 확대했다. 흐릿하던 화면이 점점 뚜렷한 형태를 갖추더니, 곧이어 낯익은 지형이 화면 위에 선명히 드러났다. 소승우가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키며 다급하게 외쳤다.


“어…이 좌표, 우리 회사 바로 뒤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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