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트

by 카폐인

이제는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나 볼 법한 구형 TV가 회색 노이즈가 잔뜩 낀 채 끊임없이 웅얼대고 있다. 백소희는 멀찍이 떨어져 홀로 덩그러니 놓인 고철덩어리를 바라본다. 손이 닿으면 깨질 듯한 유리 화면 속에서 사람 얼굴의 형상이 왜곡되어 교차하며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만 좀 소리 지르면 좋겠어.’, ‘엄마가 자식 챙기는 건 당연한 거야.’, ‘집에 있기 싫어요.’, ‘너는 뭐 잘난 줄 알아?’,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왜 걔는 날 바라봐 주지 않을까?’, ‘다시 태어나면 잘할 수 있을 텐데.’

억지로 참은 분노, 상대를 향한 미움, 불안, 외면, 혼란, 공허함, 말하지 못한 죄책감, 거절된 사랑, 흘러가는 미련.


끊임없이 분출되는 감정들을 헤이트는 완전히 재현하지 못한 채 왜곡된 출력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일종의 단막극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린다. 분명 오늘 날씨에 비 소식은 없었는데. 백소희가 하늘을 쳐다본다. 부슬비가 노이즈처럼 수많은 점을 형성하며 얼굴 위로 떨어진다. 그녀는 눈에 들어간 빗물을 닦아낸다. 올라오는 흙내와 함께 뒤에서 나뭇잎 밟히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새 소유하가 멍하니 구형 TV를 바라보는 그녀 곁에 나란히 섰다. 백소희는 힐긋 옆의 여자를 보며 이 애는 왜 굳이 별 볼 일 없는 일을 숨겼는지 추측해 본다. 하지만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단순히 자신과의 세대차 때문이리라 결론지었다. TV는 이제 기쁨과 환희에 찬 소리를 아까 보다 좀 더 세차게 비를 배경으로 출력했다. 소유하는 비에 젖은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헤이트. 평균 수명이 10년인 구식 모니터죠. 벌써 십 년도 전에 죽었어야 하는 건데, 그걸 훌쩍 넘어서 장수하고 있죠. 높은 전력을 빨아먹는 것보다, 세상의 모든 감정을 저장하며 생명을 연장하고 있어요. 당신이 버린, 우리가 버린 감정을.”


백소희는 소유하의 무심한 말투가 거슬렸다. 그러나소유하는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이게 진짜 감정 데이터들이에요. 모두 온라인에서, 익명 아래 감정 쓰레기처럼 흘러나온 것들을 차곡차곡 모은 거예요. 내가 이걸 만들었죠. 고1 때 말이에요. 제가 ‘헤이트’라고 이름 지어줬어요. 완성된 걸 보자마자 그 단어 밖에 안 떠오르더라고요. 어쨌든 여기서 추출해 낸 감정들을 아주 얇은 칩에 넣거나 기존 장치에 백업하면 끝이죠.”


백소희는 자신의 신경이 조금씩 날카로워짐을 느꼈다. 조금씩 올라오는 화를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한 말투로 물었다.


“오염되면요? 감정이 손상돼서 더 엉망이 되면 어쩌려고요?”


소유하는 마스크를 벗고, 싱긋 웃었다.


“리스크 없이 어떻게 사업을 하겠어요?”


소유하가 헤이트 옆으로 가 모니터 위를 통통 소리 나게 두드렸다. 그 소리에 맞춰 빗방울이 리듬을 타며 뛰었다.


“이것 좀 봐요. 역시 오리지널이 쓸모가 있다니까요. 호환되는 기계가 없어 정보 유출도 적고, 외진 곳에 있고…. 역시 구식이 좋다니까.”


소유하가 백소희를 뚜렷이 응시했다.


“우리 할머니가 한 말이 있어요. 세상에서 제일 귀한 자원은 금도, 석유도 아니고… 감정 풍부한 인간이래요. 그건 그냥 데이터로 복제할 수가 없거든요.”


소유하는 모니터의 표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마치 그 안에서 무언가 살아 움직이는 듯, 천천히 원을 그렸다. 화면 위로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빗방울이 둥글게 번졌다.


“진짜 감정은 시뮬레이션이 안 되거든요. 그래선가, 해킹하는 맛도 있죠.”


그녀는 백소희를 향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백소희 씨 같은 사람이… 참, 쓸모 있단 말이죠.”


소유하의 웃음을 보자 백소희는 멀리 일부러 미뤄두고 있었던 기억이 자동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그래, 저 입매. 기억난다. 마치 메모장으로 대충 그린 듯한 허술한 홍보용지 한 귀퉁이에 박혀 있던 바로 그 웃음.



몇 년 전, 살랑이는 봄바람과 함께 생을 마감하고 싶던 그녀는 무작정 길을 걷다 정말 우연히 그 전단지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날 처음 소유하를 보았다. 싸구려 종이 속의 그녀는 변형한 양반탈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 비죽 올라간 입꼬리를 한채로.


그때의 백소희는 외롭고 무기력했다. 목표도 목적도 없는 삶을 살아내는 하루하루가 벅차기만 했다. 현실을 피하고 싶었던 그녀는 점점 인터넷의 세계로 깊숙이 빠져들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의 사연을 찾아 헤맸고, 그들과 함께 공감하고 울고 분노했다. 자신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타인의 문제들을 보면서 무력감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그리고 세상이 미워졌다.


‘단절이 깊을수록, 감정의 공허와 무감각이 먼저 찾아온대요. 보통은 슬픔 뒤에 분노가, 분노 뒤에 후회가 이어지죠. 감정은 흐르는 강 같은 건데… 아이디 사자_07. 당신이 스스로 세운 벽은 강바닥을 시멘트로 메워버린 것과 마찬가지예요.’


익명으로 그녀와 대화를 나누던 사람은 마지막 말과 함께 AI 심리 실험 지원자를 모집한다며 '하트랩'이라는 신생 기업을 소개해줬다. 일주일 동안의 실험에 참여하면 대기업 월급에 버금가는 보상을 준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실험은 예상보다 단순했고 위협적이지 않았다.

지원자가 해야 할 건 단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그녀가 그동안 사용한 SNS 계정, 게임 아이디, 어딘가 방치해 둔 게시글, 심지어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이트까지의 이용 기록 열람에 동의하면 되는 일이었다. 처음엔 모든 걸 공개해야 한다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부끄럽거나 문제 될 일은 없었기에 결국 동의서를 작성했다.


두 번째는 일주일 동안 정해진 시간마다 자줏빛과 회색이 어우러진 작은 동그라미 모양의 AI와 휴대전화를 통해 대화를 나눠야 했다. 정신적으로 다소 피곤하긴 했지만, 그녀는 오랜만에 일상을 공유하는 즐거움에 빠진 나머지 급기야 대화가 종료되던 날에는 섭섭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실험이 끝난 다음날 오전 9시 정각에 그녀의 통장으로 거액이 입금되었다. 몇 달을 열심히 일해도 모으지 못할 돈이었다.


성취감, 자신도 무언가에 보탬이 되었다는 기쁨, 은근한 자존감의 회복.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일상은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상이 노출되는 문제도 없었고, 가끔 오는 스팸 문자가 전부였다. 실험에 대해 좋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언니의 표정이 밝아진 것을 보고 무슨 좋은 일 있냐고 묻던 동생에게 선뜻 말했다.


“참, 네 친구 휴머노이드 체험해보고 싶다고 했지? 내가 신청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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