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참, 네 친구 휴머노이드 체험해보고 싶다고 했지? 내가 신청해 줄까?]
"내가 이렇게 말할 리 없는데."
나는 게임 소리를 요란하게 틀어놓고 거의 누운 자세로 의자에 기대앉은 소유하를 돌아봤다.
"대표님, 제가 동생한테 이렇게 작위적으로 말했을 리 없잖아요."
소유하는 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대꾸했다.
"아. 헤이트의 기록은 되게 친절하네. 백소희 씨가 그렇게 친절한 사람이었는지, 나도 몰랐는데."
소유하는 헤이트에 대한 설명을 그렇게 했다. 사람들의 수많은 감정이 모이고, 썩어서 만들어진 감정의 잔여물이라고. 도저히 셀 수 없는, 수억만 가지의 감정 사례들. 모두가 무심코 동의한 불법 광고 형태로 흘러들어왔다. 자신의 감정이 헤이트에게 도착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말이다.
대표는 여전히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헤이트가 기록한 한이정에 대해서, 그리고 작년의 나에 대해서.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영상을, 그저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그때의 나는 그랬다. 통장 잔고와 인정에 눈이 멀어 휴머노이드 실험자로서의 특혜를 이용해 동생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을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휴머노이드 체험 정도는 실험을 진행하는 회사가 책임질 거라고 쉽게 믿었다.
한이정. 내 동생의 절친이자, 한이결의 여동생. 그리고 이젠, 세상에 없는 사람. 감수성이 말도 안 되게 풍부하고, 텅 빈 집이 싫어 한 달에 한 번씩 우리 집에서 자고, 인스타 사진 속엔 항상 ‘하늘’을 올렸던 애. 그리고 대학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꿈꾸며 설레어하며 늘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공주병에 걸린 친구라고 동생은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휴머노이드 연인 버전을 원했다. 보호자인 친언니이자, H보관소 소장 한이결이 휴머노이드를 극도로 꺼린다는 걸 알면서도 몰래 체험하려 했다. 그런 한이정을 내 동생은 단박에 거절하지 못했다. 비록 그녀가 생일이 지나지 않아 여전히 미성년자라도 말이다.
"언니, 하트랩 실험자는 휴머노이드 우선 체험 가능한 거 맞지?"
"갑자기 왜?"
"내 친구가 꼭 체험해보고 싶대. 근데 나이 때문에 못 하고 있어."
"부모님 동의받으면 되잖아."
"부모님 돌아가셔서 없고, 친언니는 완강히 반대하나 봐. 언니, 나 처음 부탁하는 거야. 제발."
어려운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쉬운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뒤, 내 이름으로 된 서류를 동생 앞에 던져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신청했으니까, 밥이나 사라."
그날의 대가로 나는 치킨을 받았고, 다음날 한이정은 휴머노이드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간단 사용 설명서.]
-원하는 대로, 나만의 남자친구를 만들어보세요!
-감정과 기분을 세세히 넣기 귀찮으시다면, 원하는 스타일 1에서 5가지의 패키지를 적용해 보세요.
안타깝게도, 한이정은 자신이 일일이 맞춤설계하는 걸 귀찮아했다. 1에서 5까지의 숫자에 딸린 단어를 믿고 선택했다.
3번, 무한 다정타입.
패키지를 적용하자마자, 고갤 떨구고 있던 남자가 얼굴을 들었다. 서서히 눈을 뜨자 동공은 연갈색 빛을 냈다. 다정한 미소와 함께 고막이 녹을 것 같은 목소리로 한이정을 불렀다.
“반가워요, 한이정 양. 오늘의 하루는 어땠나요?”
한이정은 황홀했다.
완벽한 피지컬, 또래 남자.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자신의 안부를 묻는 목소리.
사랑은 처음이었다. 물론,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건 자신이 설정한 값이고, 학습의 결과물이며,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걸. 그럼에도 그녀는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더 빠르게, 더 깊게 가라앉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는 '사랑받는 것처럼 보이는 나'에 중독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