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산등성이를 오르고 있었지
골목길처럼 좁다랗게 이어진 길이었어
길가엔 신발가게가 양쪽으로 쭉 이어졌고
가게마다 형형색색 고운 꽃신이 가득했지
빨간색, 보라색, 남색 등 비단을 씌운 뒤
그 위에 금실 은실로 곱게 수를 놓은 꽃신이었는데
그 고운 걸 차마 신어볼 엄두가 나질 않더라고
다만 맘에 드는 꽃신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씩 들여다봤어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내려놓길 반복하면서
일행이 가자고 재촉하면 마지못해 따라가면서도
눈길은 여전히 신발가게를 향했지
그렇게 산을 향해 오르고 또 올랐어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더라고
어느덧 정상에 올라섰지
그곳은 꽃 천지였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가 얼마나 많던지
사람들이 꽃길 사이를 천천히 걷고 있더라고
흩날리는 꽃잎에 기분이 좋아 마냥 마냥 걸었지
그때였어
어디선가 회색빛 작은 새 한 마리가 내 어깨 위로 내려와 앉은 건
내게 날아온 새가 궁금했어
새가 앉은 어깨 쪽으로 손을 내밀었지
내 손으로 옮겨 앉은 새를 가만히 들여다봤어
그리곤 말했지, 너 참 예쁘구나
그런데 말이지
그 새가 내 손가락을 냅다 쪼는 거야
어찌나 세게 쪼던지
너무 아파 냅다 손을 털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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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라치며 잠에서 깼어
쪼인 손끝은 생시인 듯 여전히 얼얼하더라고
한날 지인에게 꿈 얘기를 했어
무수한 꽃신 가게가 보였다니까
세기에 한 번 나올 만한 카사노바인가 되려나 보다
그 말이 살짝 귀에 거슬렸지
다른 지인도 말하데
꿈에서 통증을 느끼는 건 안 좋은 거라고
그런데
아이가 장애 진단을 받고 나니
새삼 그 꿈이 생각나는 거야
꽃신의 의미는 무얼까
산 정상까지 오른 건 또 뭘까
벚꽃길엔 또 어떤 의미가 숨어 있나
별 뜻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자꾸 의미를 찾게 되더라고
그래야만 희망을 안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야만 이 아이와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