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과학연습] 확장된 마음과 실용주의적 사고의 만남
(Pragmatic Resources for Enactive and Extended Minds)
Gallagher, Shaun, 'Pragmatic Resources for Enactive and Extended Minds', Enactivist Interventions: Rethinking the Mind (Oxford, 2017; online edn, Oxford Academic, 24 Aug. 2017).
행화적 지각(enactive perception)과 행화적 인지(enactive cognition)는 일반적으로 프란시스코 바렐라(Francisco Varela)와 동료들(Varela, Thompson, & Rosch, 1991)의 연구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간주된다. 이 개념은 후설(Husserl), 하이데거(Heidegger), 메를로-퐁티(Merleau-Ponty) 등의 현상학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후설(Husserl, 1989): ‘나는 ~할 수 있다(I can)’ 개념을 통해, 지각이 단순한 감각 경험이 아니라 신체적 행위 가능성과 연결된 것임을 설명했다.
하이데거(Heidegger, 1962): 사물과의 관계를 실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준비된 손(Zuhanden)’ 개념을 제시하며, 일상적 경험에서 사물을 기능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강조했다.
메를로-퐁티(Merleau-Ponty, 2012): 후설과 하이데거의 개념을 발전시켜, 신체의 운동 시스템이 지각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현상학적 접근은 행화주의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J. J. 깁슨(J. J. Gibson, 1977): ‘행위가능성(affordance)’ 개념을 통해, 사물의 의미가 그것과의 상호작용 가능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후버트 드레이퍼스(Hubert Dreyfus, 1992): 전통적인 인지주의를 비판하며, 신체적 실천이 인지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 장네로드(Marc Jeannerod, 1994, 1997): 지각을 의미적(semantic) 지각과 실용적(pragmatic) 지각으로 구분하며, 신체적 행위와 연관된 지각이 별도로 존재함을 강조했다.
실용주의와 행화주의의 연결
행화주의가 현상학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은 명확하지만, 실용주의(pragmatism)와의 관련성은 기존 연구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행화주의 연구에서는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정도만 언급될 뿐,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 존 듀이(John Dewey), 조지 허버트 미드(George Herbert Mead) 등의 실용주의 철학자들은 거의 인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퍼스, 듀이, 미드는 행화주의적 사고의 핵심 개념을 이미 논의한 바 있다.
. 퍼스(Peirce): 사고가 개인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외재적 사고(externalist thinking)를 주장했다.
. 듀이(Dewey, 1896): 감각적 자극에서 출발하는 기존의 인식론적 접근을 비판하며, 감각-운동 조정(sensorimotor coordination)이 지각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이는 후속 행화주의 연구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 미드(Mead, 1938): 지각의 본질을 단순한 정신적 재현이 아니라, ‘잡을 준비(readiness to grasp)’라는 신체적 태도에 있다고 설명했다.
행화주의는 기존의 인지주의적 접근과 달리, 인지를 신체적 행위와 환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해하려 한다. 실용주의 철학자들은 이미 이와 유사한 관점을 제시했으며, 특히 듀이의 감각-운동 조정 개념과 미드의 ‘조작 가능한 영역(manipulatory area)’ 개념은 행화적 인지 모델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기존 행화주의 연구에서는 실용주의적 전통이 거의 언급되지 않았으나, 실용주의 철학이 제공하는 개념적 자원을 활용하면 행화적 인지 이론을 더욱 정교화하고 기존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 이론은 인간의 인지가 뇌 내부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 개념은 클라크(Andy Clark)와 차머스(David Chalmers, 1998)의 논문을 통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으며, 이후 클라크(2008)가 『Supersizing the Mind』에서 더욱 발전시켰다. 그러나, 이 이론의 뿌리는 실용주의 철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실용주의 철학에서의 확장된 인지 개념
확장된 마음 이론이 제시되기 전, 실용주의 철학자들은 이미 인간의 사고와 환경의 관계를 강조했다.
존 듀이(John Dewey, 1916):
사고(thinking)는 단순히 두뇌에서 일어나는 과정이 아니라, 신체적 행위와 도구 사용을 포함하는 전체적 과정이다. “손과 발, 도구와 장비는 두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만큼이나 사고의 일부다.”라는 그의 주장은 확장된 마음 이론의 핵심 개념과 일치한다. 사고는 특정한 ‘정신적 실체’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되는 물리적 도구와 행위의 목적에 의해 규정된다.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
인간의 사고 과정이 외부의 물리적 도구를 포함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화학자의 플라스크와 실험 장비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논리적 사고를 실행하는 기계(logical machines)다.”라는 그의 주장은, 사고가 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퍼스는 인지적 과정이 개인의 뇌에 국한되지 않고, 외부 도구와 실천적 활동 속에서 수행된다고 보았다.
조지 허버트 미드(George Herbert Mead, 1938):
인간의 인지는 사회적 맥락에서 형성되며, 언어 및 상징적 상호작용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각이 단순한 신경학적 과정이 아니라, 특정한 문화적·사회적 맥락에서 구성된다고 보았다. 그의 ‘조작 가능한 영역(manipulatory area)’ 개념은, 확장된 마음 이론에서 논의되는 외부 도구 및 기술적 환경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개념이다.
확장된 마음 이론과 실용주의의 연결
확장된 마음 이론의 대표적 논문인 클라크와 차머스(1998)의 연구에서는, 알츠하이머 환자인 오토(Otto)의 사례를 통해 확장된 인지 개념을 설명한다. 오토는 기억을 보조하기 위해 노트에 정보를 기록하고 이를 참조하는데, 이는 그의 기억 과정의 일부로 작동한다. 따라서, 노트는 그의 인지적 과정에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이러한 관점은 실용주의 철학자들의 주장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퍼스(Peirce):
사고의 물리적 확장을 강조하며, “내 생각이 내 뇌에 있는 것보다 내 책 속에 더 많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오토의 노트 사례와 유사한 사고방식이다.
듀이(Dewey):
사고 과정이 특정한 도구 및 신체적 활동과 분리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는 확장된 마음 이론이 제시하는 ‘외부 도구와 환경이 인지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주장과 일치한다.
결과적으로, 확장된 마음 이론은 실용주의 철학에서 이미 논의된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의 인지는 항상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지며, 물리적 도구와 사회적 관계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다.
존 듀이(John Dewey)는 인지를 이해하는 기본 단위로서 개별적인 유기체나 뇌가 아니라, 유기체-환경(organism–environment) 관계를 중심으로 한 ‘상황(situation)’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유기체와 환경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를 규정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사고와 인지는 특정한 물리적·사회적 환경 속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과정이며, 이를 개별적으로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다.
유기체-환경 관계와 상황 개념
듀이는 유기체와 환경이 단순한 인과적(causal) 관계가 아니라, ‘상호 조성(mutual constitution)’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이는 단순히 환경이 유기체에 영향을 주거나, 유기체가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와 환경이 함께 변화하며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을 이룬다는 의미다.
유기체는 환경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환경 역시 유기체와의 관계 속에서 정의된다.
환경 속에서 유기체가 처한 특정한 맥락(context)과 조건이 바로 ‘상황(situation)’이며, 사고와 인지는 이 상황 속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인지는 단순히 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와 환경 간의 역동적인 조정 과정(dynamical coordination process)이라고 볼 수 있다.
듀이(1938)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실제 경험에서 개별적인 사물이나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물과 사건은 환경 속에서 특정한 상황의 일부로 나타난다.”
즉, 우리가 인지하는 모든 것은 특정한 상황에 의해 규정되며, 상황을 벗어나서는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문제적 상황(Problematic Situation)과 인지 과정
듀이는 사고와 인지가 단순한 정보 처리 과정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적 활동(practical activity)이라고 보았다. 특히, 유기체와 환경 간의 조정이 깨지는 순간을 ‘문제적 상황(problematic situation)’이라고 정의했다.
유기체가 환경과 원활하게 상호작용하고 있을 때, 우리는 인지적 활동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환경과의 관계가 혼란스럽거나 단절될 경우, 우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따라서, 인지란 문제적 상황을 해결하고, 환경과의 조화를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도구를 이용한 문제 해결 과정은 이러한 상황 개념을 잘 보여준다.
만약 망치를 사용하려는데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 우리는 망치의 위치를 바꾸거나 다른 방법을 찾으려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사고는 단순히 뇌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즉, 행동을 통한 조정과 피드백 과정 자체가 사고 과정의 본질이다.
사회적 차원에서의 상황 개념
듀이의 상황 개념은 단순히 물리적 환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social environment)도 포함한다.
인간의 사고는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며, 개별적인 사고 과정도 사회적 맥락을 반영한다.
심지어 혼자 사고하는 경우에도, 우리는 ‘일반화된 타자(generalized other)’의 관점을 통해 사회적 규범과 기대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혼잣말이나 자기 대화(self-talk)는 사회적 대화의 연장선에서 이해될 수 있다.
조지 허버트 미드(George Herbert Mead)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뿐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때도 사회적 태도를 취한다.”
이처럼 듀이의 상황 개념은 사고가 단순한 내부 과정이 아니라, 유기체-환경 간의 조정 및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행화주의 및 확장된 마음 이론과의 연결
듀이의 상황 개념은 행화주의(enactivism)와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 이론을 통합할 수 있는 개념적 틀을 제공한다.
행화주의는 유기체와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며, 인지가 단순한 정보 처리 과정이 아니라 환경과의 역동적 조정 과정임을 주장한다.
확장된 마음 이론은 인지가 외부 도구 및 기술과 연결될 수 있음을 설명한다.
듀이의 상황 개념은 이 두 가지 이론을 조화롭게 연결하며, 인지가 개별적인 두뇌 활동이 아니라, 유기체-환경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듀이의 상황 개념은 인지를 개별적, 내부적 과정이 아니라, 환경 및 사회적 요소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적 도구가 된다.
행화주의(enactivism)와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 이론은 전통적인 인지주의(cognitivism)에 대한 대안으로 종종 함께 논의되지만, 두 이론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특히, 신체(embodiment)의 역할과 표상(representation)의 필요성에 대한 견해 차이가 두드러진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두 이론은 때때로 대립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이들을 조화롭게 통합할 가능성이 있다.
행화주의와 확장된 마음 이론의 주요 차이점
신체의 중요성
행화주의는 인지를 신체적 과정의 일부로 간주하며, 인지가 신체-환경 간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확장된 마음 이론은 신체뿐만 아니라 외부 도구와 기술도 인지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인지 과정이 신체적 제한을 넘어 확장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행화주의는 신체의 필수성을 강조하지만, 확장된 마음 이론은 신체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고 볼 여지를 남긴다.
표상의 필요성
행화주의는 인지가 환경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전통적인 의미의 정신적 표상(mental representation)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반면, 확장된 마음 이론의 일부 학자들은 표상이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조정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클라크(Clark, 2008)는 높은 수준의 표상이 신체적 과정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행화주의적 입장과 차이를 보인다.
인지 과정의 본질
행화주의는 유기체-환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인지가 발생하며, 개별적인 두뇌 활동만으로는 인지를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확장된 마음 이론은 인지의 확장 가능성을 인정하지만,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신체적 요소를 대체할 수 있음을 허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차이점은 두 접근 방식이 상호 배타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지만,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두 이론을 조화롭게 통합할 가능성이 있다.
실용주의를 통한 조정 가능성
실용주의 철학, 특히 존 듀이(John Dewey)의 ‘유기체-환경(transactional organism–environment) 모델’은 행화주의와 확장된 마음 이론을 연결하는 개념적 틀을 제공할 수 있다.
유기체-환경의 상호작용으로서의 인지
듀이는 유기체와 환경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조정하는 과정 속에서 함께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는 행화주의에서 강조하는 신체-환경의 상호작용과 부합하며, 동시에 확장된 마음 이론이 주장하는 도구와 기술의 역할도 포함할 수 있다. 즉, 인지는 신체적이면서도 외부 환경(도구, 기술, 사회적 요소 등)에 의해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두 이론을 연결할 수 있다.
표상보다 ‘상황(situation)’을 강조
듀이는 인지를 문제 해결(problem-solving) 과정으로 보았으며, 이 과정은 특정한 ‘상황’ 속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행화주의가 표상을 배제하고, 상황적 감각-운동 조정(sensorimotor coordination)을 강조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확장된 마음 이론의 외부 도구 및 기술 사용도 문제 해결을 위한 확장된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문화적·사회적 요소의 중요성
듀이는 인지가 사회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다고 보았으며, 이는 확장된 마음 이론에서 강조하는 사회적 확장(socially extended cognition)과 연결될 수 있다. 즉, 인지는 단순히 신체적 과정이 아니라, 문화적·사회적 맥락에서 확장될 수 있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두 접근 방식을 조화시킬 수 있다.
결론: 통합된 관점으로 나아가기
행화주의와 확장된 마음 이론은 전통적인 인지주의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지만, 신체와 표상의 역할에 대한 차이로 인해 서로 대립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실용주의 철학, 특히 듀이의 상황 개념과 유기체-환경 모델을 적용하면 두 이론을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행화주의적 관점에서 확장된 마음 이론을 수용한다면, 인지는 신체적 과정뿐만 아니라 환경과의 조정을 포함하는 확장된 과정이 될 수 있다.
확장된 마음 이론이 행화주의의 신체적 관점을 수용한다면, 인지의 확장은 단순한 기능적 대체가 아니라, 신체와 환경이 함께 조정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실용주의적 접근을 통해 신체, 도구, 환경, 사회적 요소를 아우르는 통합적 인지 이론을 정립할 수 있으며, 이는 행화주의와 확장된 마음 이론의 상호 보완적인 가능성을 보여준다.
행화주의(enactivism)와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 이론은 전통적인 인지주의(cognitivism)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었지만, 여러 철학자들과 인지과학자들로부터 다양한 비판을 받아왔다. 본 절에서는 이러한 비판에 대한 실용주의적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
1) 결합-구성 혼동 반론 (Coupling-Constitution Objection)
아담스(Adams)와 아이자와(Aizawa, 2008)는 결합-구성 혼동(coupling-constitution fallacy) 문제를 제기했다.
확장된 마음 이론은 유기체가 외부 환경과 밀접하게 결합(coupling)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이는 단순한 인과적(causal) 관계일 뿐이며, 외부 요소가 실제로 인지 과정의 일부를 구성한다는 주장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스마트폰을 사용해 정보를 검색한다고 해서 스마트폰이 그의 인지 과정의 일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논리를 제시한다.
실용주의적 대응
듀이(Dewey)의 유기체-환경(transactional organism–environment) 모델에 따르면, 인지는 단순히 내부적 과정이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 조정(mutual coordination) 속에서 발생한다.
즉, 인간의 사고 과정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며, 이를 분리하는 것은 인지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 한계를 초래한다.
따라서, 환경과의 결합이 인지 과정의 구성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으며, 결합-구성 혼동 문제는 인지 과정의 실제 작동 방식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라는 반박이 가능하다.
2) 원초적 표상 문제 (Non-derived Intentionality Objection)
아담스와 아이자와는 또한 비유도적 의도성(non-derived intentionality) 개념을 기반으로 확장된 마음 이론을 비판했다.
비유도적 의도성이란, 신체 내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사고 과정이 원천적(본래적)이며, 외부 도구나 환경과의 상호작용은 이차적(derived)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같은 외부 장치는 본래적인 사고 과정이 아니므로, 확장된 마음 이론이 제시하는 것처럼 인지 과정의 일부로 볼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실용주의적 대응
퍼스(Peirce)와 듀이(Dewey)는 사고를 행위(action)와 연관된 과정으로 보았으며, 사고가 환경과 분리된 내부적 과정이라는 견해를 비판했다.
듀이는 문제 해결(problem-solving)이 사고의 본질이라고 보았으며, 사고는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비유도적 의도성 개념은 사고가 환경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실용주의적 접근과 상충된다.
사고 과정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하며, 도구와 기술이 사고를 지원하고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장된 마음 이론의 주장은 실용주의적 사고와 일치한다.
3) 신체의 필수성 논쟁 (The Necessity of Embodiment)
확장된 마음 이론과 행화주의 사이에서도 신체의 역할에 대한 논쟁이 존재한다.
행화주의는 신체적 경험이 인지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며, 인지는 감각-운동 조정(sensorimotor coordination)과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본다.
반면, 확장된 마음 이론은 인지가 신체의 한계를 넘어 외부 도구와 기술로 확장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따라서, 신체 없이도 동일한 인지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면, 신체는 필수 요소가 아니라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
실용주의적 대응
듀이는 인지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환경과의 조정 속에서 변화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따라서, 인지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신체적 과정뿐만 아니라, 사회적·도구적 확장까지 포함해야 한다.
즉, 신체는 인지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이지만,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없다면 인지는 완전한 형태로 작동할 수 없다.
실용주의적 접근에서는 신체적 경험과 외부 확장을 모두 고려하는 균형 잡힌 관점이 필요하며, 이는 행화주의와 확장된 마음 이론을 조화롭게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결론: 실용주의를 통한 통합적 대응
행화주의와 확장된 마음 이론은 기존 인지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제안된 대안적 접근법이지만, 여러 비판에 직면해 있다. 실용주의 철학, 특히 퍼스와 듀이의 사상은 이러한 논쟁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개념적 도구를 제공할 수 있다.
결합-구성 혼동 반론에 대해서는, 듀이의 유기체-환경 모델을 통해 인지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됨을 강조함으로써 반박할 수 있다.
원초적 표상 문제에 대해서는, 퍼스와 듀이의 ‘행위 기반 사고(action-based thinking)’ 개념을 통해, 사고가 본래적으로 환경과 연계된 과정임을 설명할 수 있다.
신체의 필수성 논쟁에서는, 신체와 환경 모두가 인지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실용주의적 접근을 적용하여, 행화주의와 확장된 마음 이론을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실용주의는 기존의 비판들에 대해 효과적인 대응 논리를 제공하며, 행화주의와 확장된 마음 이론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우리는 기억과 사고를 개인의 정신적 활동으로만 생각하지만, 확장된 마음 이론과 행화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진다. 메모를 남기고 노트에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과정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사고 과정 자체의 일부가 된다. 클라크와 차머스(1998)의 '오토와 노트북' 사례처럼, 노트는 단순한 저장 장치가 아니라 우리의 사고를 구조화하고 확장하는 도구로 작동한다. 하지만, 모든 외부 도구가 인지의 일부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노트에 적힌 내용은 나의 사고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며, 이것은 듀이가 말한 '유기체-환경 관계'의 일부로 볼 수 있다. 나는 노트와 상호작용하며 사고를 확장하고, 노트는 나의 인지 과정에 통합된다. 반면, 스마트폰을 통한 정보 검색은 이와는 다른 성격을 갖는다. 검색된 정보는 나의 인지적 노력으로 생성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이미 완성된 형태로 제공된 것이다. 아담스와 아이자와(2008)가 제기한 결합-구성 혼동 반론을 고려하면, 스마트폰과의 인과적 결합이 곧 인지적 구성의 확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인지의 확장은 어디까지인가?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인지의 확장은 물리적 도구의 사용 여부보다는 그 도구가 문제 해결 과정에서 어떻게 통합되는지에 달려있다. 퍼스가 말했듯이, "내 생각이 내 뇌에 있는 것보다 책 속에 더 많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책에 정보가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책과의 상호작용이 사고 과정의 본질적 부분이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늘날 AI 기술의 발전은 인지 확장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새로운 도전을 제기한다. AI가 제공하는 방대한 정보와 답변들은 우리의 인지를 확장하는가, 아니면 단순히 외부 도구로 남는가? 중요한 것은 정보의 양이나 접근성이 아니라,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자신의 사고 체계에 의미 있게 통합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같은 AI를 사용하더라도, 그것이 개인의 인지에 통합되는 방식은 크게 다를 수 있다.
듀이의 '상황' 개념을 적용하면, 인지는 특정한 문제적 상황 속에서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한다. AI 시대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와 도구에 노출되지만, 모든 정보가 우리의 인지 과정에 의미 있게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인지 과정에 포함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어떤 정보를 수용하고, 어떻게 처리하며, 어떻게 자신의 사고로 발전시킬 것인지를 주체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 결국, 기억하는 것과 기록하는 것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지만, 인지의 확장은 단순한 정보 접근이나 기록이 아니라, 정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이해와 의미를 창출하는 과정에 있다. AI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를 찾는 기술이 아니라, 정보와 의미 있게 상호작용하며 자신의 인지를 주체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지혜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