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전 속에서 잊히기 쉬운 인간에 대한 본질적 질문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철학적 담론 중심의 인지과학연습 수업은 예정된 흐름을 따라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모두에게 낯선 개념을 다루기에 과연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은 이 내용을 따라가고 있는지가 궁금하던 순간, 한 수강생이 말을 꺼냈다.
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다들 인지과학을 왜 공부하게 되셨어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수업에서 다루는 여러 내용들에 비하면 질문 내용은 가벼운 톤이었지만 답을 생각해 보면 생각만큼 간단한 질문은 아닌 것 같았다. 교수님께서는 조금의 침묵을 두고, 차분히 말을 이으셨다. “사실 요즘은 인지과학 자체에 흥미가 있어서 오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말은 단정했지만, 그 안에 작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교수님은 수업을 듣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지과학 내 특정 전공이나 특정 주제를 기준으로 진학하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많은 학생들도 어쩌면 그렇게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처음부터 인지과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이끌려 온 경우는 드물고, 각자의 전공과 연결 가능한 범주로서 인지과학을 만난다는 것이다. 말의 어조는 비판적이라기보다는 조금 씁쓸한 느낌도 느껴졌다. 협동과정이라는 구조 안에서, 인지과학은 어떤 중심이 아니라 부속적인 경유지로 남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랩을 중심으로 진로를 정하고, 그 경로 안에서 인지과학이라는 간판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현실. 연구를 위한 인지과학은 있지만, 인지과학을 위한 연구는 많지 않다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교실은 더 이상 설명만을 듣는 공간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서로를 보기 시작했고, 각자의 이유를 입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어려운 철학적인 개념보단 다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가장 모르고 있기에 가장 용감해서일까, 먼저 입을 뗀 사람은 오늘도 나였다.
교수님의 자조적인 발언과 달리 나는 인지과학 전공이라서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일적으로 마주하는 많은 전문가들이 각자의 용어에 힘을 싣기 위해 접두어나 접미어로 붙이는 “인지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라는 말을 들으며, 인지란 무엇인지에 대해 막연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고 내가 대하는 HR 데이터 너머 조직 내 구성원 각자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물론 HR 데이터 분석을 해봤다는 이유로, 어쩌면 인공지능의 방식을 활용해 HR에 접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인공지능랩에 소속되어 있지만, 그 기술이 다루는 대상인 '인간'에 대한 질문이 내게는 더 본질적으로 다가왔다. 결국 내가 관심 있는 건 뇌파나 패턴, 정확도 같은 결과보다, 그 이전에 있는 사고의 과정과 감각의 질감이었다. 인간이 어떻게 배워나가고, 그 안에서 어떤 식으로 의미를 구성하는지 그 물음에 제대로 다가가 보지 않고 만든 모델은 결국 복잡 다난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속한 랩의 분위기 역시 그런 방향과 무관하지 않다. 나의 지도교수님 또한 인지과학 박사 출신으로, 계산 모델을 설계할 때조차 인간의 사고방식을 가능한 한 가까이에서 바라보려는 태도를 지닌 분이다. 랩세미나용으로 인공지능 논문보다는 인지과학 논문을 던져주고, 인간의 다양한 사고 과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상상하라는 미션을 학생들에게 주곤 하신다. 내가 이 과정을 선택하고 이 랩에 속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였던 것 같다. 기술이 닿지 못하는 사람의 가까이에서 시작해, 기술이 닿을 수 있는 곳까지 고민해보고자 하는 마음, 인지과학은 내게 멀고도 가까운 둘 간의 연결고리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내 이야기가 마중물이 되어 듣게 된 다른 수강생들의 이야기도 그랬다. 겉으로 보기엔 비슷해 보였지만,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지과학에 도착해 있었다.
한 수강생은 감각 보조기술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인공지능을 통해 신체적 제약을 보완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을 ‘돕는 존재’로서의 기술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감각 구현 자체보다, 그 기술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고 싶어서 인지과학을 선택했다고 했다.
또 한 수강생은 현재 Naver 소속의 UX 디자이너로 본인의 경험과 그 안에서 이어진 고민을 이야기했다. 인공지능이 점점 더 설계의 중심이 되어가는 현실 속에서, 인간 중심 설계가 무력해지는 것을 체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디자인보다 앞에 있는 인간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어 졌고, 그 막연한 불안이 인지과학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인공지능이 수단이든 목적이든 본인의 업에는 앞으로 점점 더 큰 영향을 줄 것이 명확한 가운데 기저에 깔린 인간의 인지과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수단이든 목적이든 인공지능과 함께 하고 싶어서 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HCI랩 소속의 수강생은 인지과학 연구 자체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사람들과의 언어 교환을 기대했다고 했다. 자신의 연구를 잘 설명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의 언어를 듣고 자극받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그리고 그런 느슨한 상호작용이 가능한 공간으로서 인지과학 수업이 자신에게 의미가 있다고 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유는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았다. 단지 이론을 배우고 응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살피려는 시도처럼 느껴졌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 질문을 품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각자의 조용한 동기 조각들이 이 수업 안에서 서로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학생들의 말을 듣고 난 뒤, 교수님은 한 박자 쉬고 말을 꺼내셨다.
“사실 저는 인지과학이라는 이름에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잘 안 보일지 몰라도, 이 과도기에는 꼭 필요한 질문들이거든요. 우리는 인간이 스스로의 지능을 만들기 시작한 시대에 살고 있어요. 그런데 그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완전하지 않잖아요. 불안하고, 예측할 수 없고, 심지어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죠. 그런 인간이 만든 지능이 과연 어떤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말은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긴장이 담겨 있었다. 기술의 정확도나 효율성의 문제를 넘어서, 인간이 자신을 대체하거나 확장하려는 이 시대에 인지과학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은 훨씬 더 근본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교수님은 인공지능 윤리의 논의가 종종 피상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책임 소재, 설명 가능성, 편향 문제 같은 것들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인간이란 무엇이고, 인간답다는 건 어떤 상태를 말하는지, 그리고 그걸 기술적으로 구현하려는 시도가 왜 불편하게 느껴지는지를 묻는 일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과학 전공 안에서 철학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윤리가 아니라, 철학. 규범의 조건이 아니라, 존재의 조건에 대한 물음. 신경윤리, 해석학, 의미론 같은 학문들이 기술의 논리 안으로 다시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은 내가 처음 이 과정을 선택할 때 느꼈던 혼란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나는 인간을 공부하고 싶었고, 동시에 인간을 다루는 기술을 설계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두 세계는 자주 어긋났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언어는 쉽게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내가 인지과학이라는 말을 붙들었던 것처럼, 교수님도 여전히 그 이름 안에 의미를 남겨두고 있었다. 그건 무언가를 대체하는 기술보다, 무언가를 잃지 않기 위한 질문처럼 들렸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교실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하지만 그 고요는 지금까지의 그것과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누군가의 질문이 공간의 흐름을 바꾸었고, 각자의 이야기가 거기에 실렸고, 그걸 받아들이는 교수님의 관점이 다시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나 역시 그 흐름을 따라가며, 다시 생각이 내 안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왜 이 공부를 하고 있는 걸까. 기술에 대해 알고 싶었던 것도 맞고, 우리 조직에 더 적합한 모델을 어떻게 더 정교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던 것도 맞지만, 그보다 먼저, 인간을 이해하고 싶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술이 주도하는 이 시대에 인간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태도 자체에 끌렸던 것 같다.
인간이란 쉽게 정의되지 않는 존재이고, 그래서 기술은 언제나 뭔가를 놓치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그 놓치는 부분에 관심이 있었다. 그 애매하고 복잡하고, 감정과 맥락으로 이뤄진 부분. 인지과학은 어쩌면 그걸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학문일지도 모른다. 수업에서 들은 이야기들, 다른 사람들이 건넨 말들, 교수님의 응답은 그 생각에 작지 않은 힘을 더해주었다. 우리는 모두 다른 곳에서 왔지만, 어떤 방향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만은 닮아 있었다. 기술이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 나는 그럴수록 인간을 더 공부하고 싶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추종이 아니라 본질적인 이해에서 출발하는 학문, 설계 이전에 질문이 있는 학문. 그게 나에게 인지과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