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십 년 천권 : 책 속으로 풍덩
독서를 시작한 지 3년 정도 흘렀을 때였다. 단 한 줄도 좋으니 책을 읽고 나면 그 기록을 블로그에 올려보는 건 어떨까? 그럴 거라면 첫 번째 책부터 시작했어야 했는데... 괜한 아쉬움이 들었다. 그때라도 시작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기록이 되고 그 기록이 일기가 되고, 그 일기가 나중에 추억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사라진 마음은 3~4년이 지난 어느 날 불현듯 떠올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3년 전부터라도 시작을 할 걸 그랬나... 사야 할 때 안 사고팔아야 할 때 안 판 주식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분명한 건 그때라도 시작했으면 정말 좋았을 거다. 10년째인 아직도 하지 못하고 있는 최대의 후회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2021년 한 해 동안 책을 읽고 난 감상을 유튜브로 만들어봤다는 것. 구독자도 적고 조회 수도 한 자릿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몹시 뿌듯한 경험이었다.
블로그만큼 아쉬운 것이 바로 오탈자 퍼레이드였다. 정독하는 만큼 책마다 발견하는 오탈자가 제법 꾸준했다. 스페이스가 한 칸 더 만들어진 오타가 가장 흔했다. 맞춤법 혹은 ‘은 눈을 를’ 같은 조사 오탈자가 그 뒤를 이었다. 미음 받침에 비읍이 온다거나, 사람 이름이 두 번 반복되는 오탈자도 자주 보였다. 도저히 책의 무게감에 어울리지 않는 오탈자를 발견하면 괜히 기분이 짜릿했다.
누군가의 실수를 치부를 들춰본 쾌감은 아니었다. 인쇄되는 순간 절대 수정할 수 없는 활자가 주는 맛. 그 안에 담긴 인간미를 발견한 것 같은 나만의 놀이였다. 그래서 오탈자 역시 발견하는 대로 사진을 찍어 블로그나 SNS에 올려볼까 싶었다. 하지만 오탈자를 발견해도 읽던 책 이어가기 바빴고, 그때마다 사진으로 찍는 것도 몹시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 되었다.
파쇄본을 찾는 재미도 있었다. 바로 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출간한 지는 조금 된 책인데 한눈에 봐도 방금 새로 찍어낸 새 책이었다. 대출하고 이튿날 출근길에 두 장의 책장이 오른쪽 끝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접착제 등으로 붙어 있는 것이 아닌 손톱만 한 곁다리 종이라 역삼각형으로 만들어져서 안쪽으로 접혀 있었다. 읽기를 잠시 멈추고 사무실에 와서 커터 칼로 조심스럽게 이어진 경계를 잘라냈다.
갓 잡은 생선을 날이 잘 선 칼로 회를 뜨는 마음이 비슷하다면 비슷했다. 단 한 번도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마주하고 있는 책장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반나절을 기다리며 퇴근길에 읽어 나갔다. 누군가 나보다 먼저 대출을 하고 파쇄본을 보고 못 본 척했을 수도 혹은 봤는데도 그냥 뒀을 수도 있지만, 우선은 그 책만큼은 내가 제일 먼저 대출한 사람이라고 믿고는 흐뭇해했다.
오탈자와 파쇄본은 반가운 발견이라면 반갑지 못한 발견도 적잖게 마주할 수 있었다. 공공의 도서, 많은 사람들이 돌려가며 읽는 책인데도 불구하고 내지를 찢는다거나 밑줄이 바로 그것이다. 분명 124쪽 다음이 125쪽이어야 하는데 127쪽이 등장했다. 처음엔 발견하지 못하고 읽어 나갔는데 어딘가 어색했다.
무슨 일이지 하면서 다시 앞뒤를 살펴보니 누군가 예리하게 125쪽을 칼로 잘라낸 것이다. 어떤 내용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칼도 아닌 손으로 찢어낸 흔적도 가끔 볼 수 있었다. 밑줄에는 여러 형태가 있었다. 일반 HB 연필로 밑줄 그은 책. 그림을 그리다 책을 읽었는지 4B 연필로 밑줄 책. 급기야 형형색색의 볼펜과 형광펜으로 밑줄을 남발한 책도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에 그랬을까?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에 가까운 못된 짓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중 상대적으로 대출하는 사람이 적어 보이는 책에는 괘씸죄가 발동했다. 사서에게 다가가 몇몇 페이지를 보여주고는 도울 테니 밑줄 그은 사람을 찾아보자고 제안도 해봤다. 사서는 난색을 표했다. 찾는다 해도 마땅히 제재를 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연필로 밑줄 그은 건 자기들이 수시로 보일 때마다 지우개로 지운다고 했다. 밑줄 그은 책만이라도 찾아주면 너무 고맙다고 오히려 내게 인사를 전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다면 그래도 책을 어느 정도는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 일 텐데, 들판의 꽃이 아름답다고 굳이 꺾어 집에 갖고 와 보관하는 사람도 같은 맥락의 사람일까 싶었다.
책갈피도 여러 형태가 있었다. 백화점 영수증부터 패스트푸드 매장 영수증은 웃음을 전해 주었다. 나처럼 포스트잇 책갈피도 만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열 번에 한 번 꼴로 도서관에 방문할 때면 마지막 읽은 책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곤 했다. 헌책을 매입한 것은 분명 아닐 텐데 누군가의 사인 혹은 메시지가 표지 바로 안쪽에 적힌 책도 가끔 볼 수 있었다.
어렴풋이 우연과 인연에 대해 달콤한 핫 초코 향 풍기는 영화 <세렌디피티>가 떠오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