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색 바둑알 한 개는 100원짜리 동전, 검은색 바둑알 한 개는 10원짜리 동전이 되었다. 할머니와 난 틈틈이 바둑알을 돈으로 삼아 민화투를 쳤다. 고스톱은 규칙이 너무 어렵다며 민화투를 고집하셨던 할머니는 나중에 이웃 할머니까지 집으로 데려와 합류시켰다.
어디 잔치라도 생기면 늘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보고 커다란 양은그릇에 담긴 갈비탕 한 그릇을 눈앞에 두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었다. 덤으로 비닐봉지 몇 개에 떡을 몰래 담아오셨던 분주한 손놀림도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할머니와 함께한 추억은 엄마보다 더 많았다. 어려운 살림을 위해 일찍이 맞벌이를 하셨기에 내 유년기와 사춘기에는 할머니가 전부였다. 형편이 어려워 유치원은 고사하고, 신문과 낡은 백과사전을 갖고 글자를 읽고 쓰기 시작한 어느 날 할머니께서 내게 낡은 공책 한 권을 내밀었다.
오직 재생 기능만 있는 몸집만 커다란 카세트 플레이어. 그때까지만 해도 집에는 태권브이 영화음악 테이프나 유명한 팝 베스트앨범은 몇 개의 카세트테이프가 뒹굴어 다녔다. 그리고 이번에 할머니가 내게 내민 테이프는 현철이란 가수의 앨범이었다. 앨범의 맨 앞 곡은 바로 <봉선화 연정>이었다.
멋들어지게 부르고 싶은데 도무지 가사가 외워지지 않는다고, 내게 노래를 여러 번 듣고 공책에 가사를 적어 달라 하셨다. 어떤 말씀인지는 알았으나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생각보다 은근 어려운 일이었다. 요란한 반주 소리에 묻혀 목소리가 잘 안 들렸다. 그나마 목소리도 트로트 가수의 구성진 톤이라 또렷하게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방법은 없었다. 짧게는 4~5초 길게는 10여 초를 듣고 정지 버튼을 누른 뒤 기억을 더듬어가며 공책에 가사를 옮겨 적었다.
몇 번 이어지자 반복되는 구간도 있고, 어려운 단어는 할머니께 여쭤봐서 추측도 하면서 채워나갔다. 꼬박 이틀이 걸려 <봉선화 연정>의 가사집을 완성했다. 생각보다 무척 좋아하시는 모습에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 안 사실로 기타 악보가 있는 노래책들이 많았었는데, 할머니는 그런 책을 살 엄두도 내지 못하셨던 것 같았다.
<봉선화 연정>을 시작으로 문희옥의 <마포종점>이 두 번째 곡이 되었다. 그때부터 할머니의 트로트 취향이 어떤지 짐작이 들었다. 남진은 너무 가벼워서 싫다고 하셨다. 모름지기 나훈아가 진짜 노래라고 늘 추켜세웠다. 두 곡의 가사집이 완성되고 서둘러 쓴 필체가 맘에 안 들어 다시 새 페이지에 또박또박 글자를 옮겼다.
하루에도 네댓 번 할머니랑 같이 음악을 들으며 노래를 불렀다. 왜 손대면 톡 터지는지 몰랐다. 밤 깊은 마포종점엔 왜 가는지도 몰랐다. 그야말로 주야장천 들었다. 민화투 칠 때처럼 나중엔 다른 할머니도 우리 집에 오셔서 같이 들었다. 자기 좋아하는 노래도 가사를 좀 적어달라며 신청곡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난감한 순간이었을 텐데, 국민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그때 나는 그 일들이 너무 즐겁고 재미있어 했다.
이제는 어느 한 분도 살아계시지 않지만, 그때의 기억은 마치 <인사이드 아웃>의 기억의 섬처럼 내게 강렬하게 남아 있다. 어쩌면 평생 들을 트로트를 이미 다 들어버린 그 시절이 가끔은 그립다. 노래를 부른 가수 현철을 떠나보내는 시점, 오늘도 내 기억의 섬에서는 <봉선화 연정>이 들릴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