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쿠키는 초대장이었다. 다락방에는 낡은 동화책이 가득 있었다. 컬러는 기대할 수도 없었던, 흑백의 낡은 삽화만이 아주 가끔 등장하던 책들은 어릴 적 유일한 친구였다. 흐릿한 글자를 읽고 또 읽다 보면 잔뜩 습기를 머금은 눅눅한 냄새가 나는 책장 너머로 달콤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 있었던 제과점은 숨이 막힐 정도로 매혹적인 냄새가 진동했다. 내가 살 수 있었던 건 200원짜리 소보로 빵 하나가 전부였다. 출입문 옆으로 진열된 황홀할 정도로 예쁜 모양의 쿠키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를 흥분시켰다. 누가 주었는지 기억나지도 않았다. 유년 시절을 통틀어 단 한 번이었다. 품에 안아 본 원통모양 양철 케이스에 담긴 온갖 종류의 버터 쿠키는 아직도 꿈에 단골로 등장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오븐을 꼭 마련하고 싶은 다짐을 전했다. 배운 적도 없고 경험도 없었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그리고 두 배로 늘어난 가족을 위해 즐겁고 달달한 꿈같은 낭만을 일상으로 불러오고 싶었다.
쉬운 레시피부터 도전했다. 서툴러서 자주 실패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색다른 경험이었다. 여러 지인들의 기념일에 낭만의 시간을 녹였다. 버터의 진한 향기는 다음 날 아침까지도 이어졌다. 신혼집에 어린 시절 동경한 동화 속 세상이 펼쳐졌다.
새 식구가 생겼다. 임신 소식에 나보다 더 들뜬 건 싱크대 속 조리도구였다.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 봐 그 흔한 피로 영양제나 커피 한 모금까지도 마다한 아내였다. 인스턴트를 대신할 간식을 준비했다. 가벼운 쿠키부터 든든한 머핀까지 뱃속 태아만큼 내 손놀림도 성장했다.
아내가 잠든 사이 쿠키를 만들어 머리맡에 두고 출근을 할 때면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진한 설렘이 밀려왔다. 평생을 함께하자고 청혼한 두근거림은 몇 번의 봄이 지났는데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3년 뒤, 둘째도 합류했다. 첫 임신에 비해 종류는 줄었으나 만듦새는 한결 더 좋아졌다.
즈음하여 조수를 두게 되었다. 그 작은 입을 오물조물 거리며 맛있다고 엄지손가락도 아닌 집게손가락을 치켜세우던 큰 아이에게 도움을 자청한 것이었다. 새하얀 밀가루와 새카만 코코아파우더에 두 눈이 커졌다. 무거운 핸드믹서를 어떻게 해서든 혼자 해보겠다고 야무지게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이의 얼굴에 하얗고 까만 지도가 그려졌고, 오븐은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결코 짧지 않은 그 지루한 시간 동안 녀석은 몇 번씩 오븐 앞으로 다가와 흐릿한 유리 너머 은은하게 퍼지는 초콜릿 냄새를 마음껏 만끽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을 때면 옛날 제과점에서의 풍경이 떠오르곤 했다.
소원해졌다. 제법 조수로서 역할을 해줬던 큰아이는 동생과 노는 걸 더 좋아했다. 둘째에게도 조수를 맡겨봤지만 너무 어렸다. 아무리 맛있는 쿠키라 하더라도 질릴 수밖에 없는 일. 자연스럽게 쿠키를 만드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위기도 찾아왔다.
오븐 기능이 없는 전자레인지로 바꾸자는 아내의 강력한 의견이 이어졌다.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대응했다. 저 오븐은 단순히 전자레인지 기능이 미흡한 기계 덩어리가 아니라고 설득했다. 무엇보다 내 손으로 직접 쿠키를 만드는 일상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모닥불처럼, 구름 같았다. 쿠키 속에 박혀있는 슬라이스 아몬드의 불규칙함이 매 순간 모양을 달리하는 모닥불과 구름의 그것과 같아 보였다. 먹을 때마다 달라지는 혀 끝 감촉이 즐거웠다. 더욱이 한 번에 많은 양을 반죽해서 냉동실에 보관하고 필요할 때마다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편리성도 매력적이었다.
‘아망디오 쇼콜라’는 가장 자주 만드는 쿠키가 되었다. 반죽을 모두 틀에 넣어 모양을 만들어 냉동실에 모두 넣고 난 뒤의 뿌듯함은 쿠키를 맛볼 때 못잖은 뿌듯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밥 먹고 난 뒤의 설거지는 지루해도, 쿠키 만들고 난 뒤의 설거지는 무척 신났다.
모두가 좋아했다.
여운으로 길게 퍼지는 단맛이 자극적이지 않다며 양가 부모님 모두가 좋아해 주셨다. 직장동료, 단골 술집, 소아과, 아내의 동네 언니 동생들, 옆집 할머니까지... 먼 곳으로 시집가서 자주 못 보는 대학 동기, 코로나로 참석이 어려웠던 친구의 결혼선물, 마흔이 넘어 아빠가 된 초등학교 동창에게도 보내주었다.
쿠키가 너무 맛있다는 메시지를 받으면 또다시 오븐을 예열했다. 어린이집 행사엔 늘 쿠키를 준비했다. 한 번은 장터가 열렸다. 갖고 놀지 않는 장난감을 비롯해 직접 만든 음식도 가능해서 모처럼 두 녀석의 도움을 받아 가며 공장을 가동했다. 포장 비닐 위에는 귀여운 동물들을 배경으로 두 아이의 이름을 스티커로 만들어 붙였다.
1층부터 4층까지 아이들은 분주히 오가며 시식을 이어나갔다. 직접 만든 쿠키로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뽐내는 시간이 얼마나 재밌었을까. 얼굴에 잔뜩 물든 환한 웃음이 아직도 생생하다.
쿠키는 그렇게 일상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얼마 전, 막내의 졸업식이 열렸다. 함께 보낸 6년을 마감 짓는 시원섭섭한 감정이 들었다. 어린이집 선생님 수만큼, 아이를 맡긴 부모로서 느낀 그간의 고마움을 쿠키에 담았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쿠키. 어둡던 다락방에서 화려한 상상의 램프에 불 지펴준 씨앗이었다.
아내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출발선의 총소리와도 같았다. 나를 있게 해 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전하는 진심 어린 편지였다. 지난가을 첫째가 들려준 말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마음에 품을수록... 예닐곱 살 시절 막연하게 바라던 초대장을 드디어 손에 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돌봄 간식으로 아빠가 만들어주는 그 쿠키가 나왔는데, 진짜로 아빠가 만들어준 쿠키가 훨씬 더 맛있었어!”
뜨거워진 오븐만큼 마음엔 온기가 퍼진다.
오늘도 나는, 행복한 쿠키를 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