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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잭 슈렉 Apr 23. 2024

영혼의 고향 : 락 더 후 Rock The Who

누구에게나 자주 가는 단골가게는 하나쯤 있다. 인테리어가 예쁜 카페, 동네 마트, 네일숍, 밥집, 술집... 스스로 단골임을 자부하기란 최소한의 미덕과 잦은 방문이 반드시 밑바탕에 있어야겠다. 앞으로 단골이 되겠다는 다짐은 솔직히 쓸모없다. 지극히 단순한 법칙. 그야말로 자주 찾아가면 어느새 그 집에 단골이 되어 버린다. 


윤종신은 <모처럼>이란 곡에서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하고 오래전 그날 자주 갔던 카페를 찾았다. 이상은은 <둥글게>에서 '둥글게 모여 앉아 행복했던 작은 가게가 문 닫자 처음 눈물을 보인 너'라는 가사를 통해 앨범 속 연인을 우리에게 소개했다. 내가 단골인 건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면 될 일이겠으나, 가게가 사라져버리는 건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노릇이 돼버린다. 


술을 좋아해 두 번의 술장사를 경험했다. 두 번째 술집의 폐업을 당시 단골에게 전하자 그녀는 마지막 방문이 된 그날 카운터 앞에서 펑펑 눈물을 보였다. 너무 미안했으나 이미 결정된 폐업을 무를 수는 없었다. 그저 고개 숙여 인사하고 또 인사하고 또 인사만 전했다. 


좋아하는 영화를 반복해서 보고 좋아하는 CD 닳도록 듣는 내게도 단골집이 있었다. 하지만 내게도 그 시간이 역사가 되고 세월이 되었는지 그 모든 가게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유일무이 단 한 곳. 종각에 락더후만이 여전히 나를 단골로 만들어주는 내 영혼의 고향으로 남아 있다. 


21세기가 시작한 2000년에 문을 연 그곳을 처음 방문한 것은 이듬해였다. 인테리어는 격정적으로 내 스타일이었다. 허름하고 정리 안된 이것저것 흐지부지 덕지덕지 그리고 정확하게 가게가 지향하는 음악적 목적이 뚜렷한 공간이었다. 하물며 가게 이름도 락더후 - THE WHO - 가 아니던가!


너무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무관심하지도 않은 수줍던 사장님은 알고 보니 나와 띠동갑이었다. 옛말대로 문지방 닳도록 다녔다. 1차에 갔다가 2차 3차를 다른 집에서 술 마시고 다시 4차로 복귀하기도 했다. 드림시어터 팬클럽과 전영혁의 음악세계 애청자 모임의 음악 감상회도 수십여 차례 펼쳤다. 지금의 아내와 데이트 장소가 되어주었고, 개인적인 친목을 도모할 때면 언제나 그곳을 찾았다. 술 마시다 우연히 그곳을 찾은 지인들도 적잖았다. 그럴 때면 그 순간이 너무 거짓말 같았고, 우리는 어김없이 건배를 이어갔다. 


지금도 유명하고, 당시에도 매우 유명했던 남성잡지에 입사하고서는 꾀가 생겼다. 밑도 끝도 없이 락더후를 소개해야겠다는 일종의 전략을 수립한 것이다. 네댓 번의 시도 끝에 편집장에게 허락을 맡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잡지 지면에 락더후를 실었다. 


하지만 그렇게 자주 방문하던 시절도 중간에 자주 공백이 만들어졌다. 소주 장사할 때, 그리고 맥주 장사할 때. 하물며 맥주 장사는 락더후 사장 형님 허락을 구하고 인근에 비슷한 콘셉트로 문을 열었다. 삼겹살 냄새만 풀풀 풍기던 종로를 나름의 락 성지로 만들어보자는 계략과도 같았다. 또한 결혼하고 나서는 그 공백이 제법 길어졌다. 다행히도 두 아이가 각자 목욕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서부터는 밤에 나 홀로 락더후를 찾는 시간을 자주 갖고 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지하철로 3정거장. 좋아하는 음악 몇 곡 메모지에 신청하고 홀짝홀짝 맥주를 마신다. 영혼의 고향에 왔으니 오감을 모두 그곳에 맡기고 홀연하게 내 영혼을 쉬게 한다. 신청곡을 굳이 하지 않아도 내 플레이 리스트를 나만큼 잘 아는 사장 형님은 으레 몇 곡 이어서 들려준다. 모름지기 단골 할 맛이 난다. 


락더후라고 해서 록 음악만 주야장천 흘러나오지는 않는다. 헤비메탈, 재즈, 제3세계 음악, 블루스, 가요까지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디스플레이까지 갖춰 공연 실황과 뮤직비디오도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오직 음악. 사운드만 이어지면 좋겠지만 변화하는 손님들의 취향에 맞추려면 내가 양보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세상에 모든 음악이 흐른다. 

현존하는 인생 유일의 단골집이고, 그 누구에게도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제안하고 싶은 영혼의 고향이다. 


종각역 12번 출구 > 젊음의 거리 > 우측 두 번째 골목 > 전방 70미터 좌측 3층 건물 

7시에 오픈. 연중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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