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귄 지 100일. 태어난 지 만 번째 되는 날. 고백한 날. 연애 시작한 날. 생일. 결혼기념일... 살다 보면 챙겨야 할 기념일들이 있다. 얼마나 의미를 두느냐에 따라 그날은 생각보다 많아질 수도 있고, 1년 내내 단 하루 없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의미를 많이 부여하는 편이고 아내는 일절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도 생일은 빼놓을 수 없는 날, 매년 산뜻한 선물 고르기는 아내 생일을 앞두고 한 달 동안 나를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햇수로 4년 차. 결혼 후 맞는 아내의 세 번째 생일. 뭔가 지금까지 받아보지 못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고르고 골라보았으나 만족스러운 아이템이 없었다. 그러던 중 뜬금없게도 '면 생리대'까지 접근하게 되었다. 삼 형제 막내였고 학창 시절 성교육 따위는 엉망진창으로 받아왔기에 그때까지만 해도 생리대의 정확한 용도에 대한 이해가 현저하게 떨어졌던 나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광고에서 주구장창 나오는 화학약품 처리된 생리대와 면 생리대의 차이점까지 이르렀다.
과연 면 생리대가 생일 선물이 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달랑 면 생리대만 사준다면 그건 선물이 아닐 것이다. 받는 사람이 그 선물을 편하게 사용해야만 정말 좋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생리대는 물론 오버나이트까지 포함된 넉넉한 구성으로 준비했다. 아내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도대체 생리대를 선물로 주다니. 나답다고 했다. 그리고 면 생리대라는 점에서 조금은 감동도 받은 눈치였다. 덕지덕지 화학약품이 묻은 생리대보다 몸에 훨씬 더 좋은 생리대라는 사실은 분명 틀림없었다.
이후 한 달에 한 번 아내가 마법에 걸릴 때마다 생리대를 빨아주었다. 도대체 그걸 왜 오빠가 빨아주냐며 아내는 몹시 놀랐으나, 아내가 직접 빨아 쓰면 그건 선물이 아니라고 했다. 출근 전 차가운 물에 담가놓고 퇴근 후 손빨래하면 새것처럼 깨끗해졌다. 불편할 것도 없었고 불결할 이유도 없었다. 몸에서 피 안 나오는 사람이 있던가. 하물며 남자랑은 다른 구조라 매달 치르는 일상인데 어찌 그걸 모른체할 수 있을까 싶었다.
몇 차례 옥신각신하며 그 다음번 아내 생일 때까지 딱 1년 동안만 빨아주기로 했다. 횟수가 반복되자 손빨래 요령도 늘었다. 아주 오래전 남자의 면도와 여자의 생리를 견줬던 여자 사람 친구의 고민도 떠올라 몇 번을 웃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영역이라 단순 비교는 불가능할 테지만 생리보단 면도가 한결 편한 것을 나는 굳건히 믿는다.
아내 몸도 면 생리대를 쓴 이후 조금씩 좋아졌다. 세세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가끔 아내의 반응을 살피면 1회용 생리대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이후 지금까지도 아내는 긴급 상황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면 생리대를 사용한다. 몸에 닿는 만큼 그 재질에 있어 안전한 것은 따져야 할 조건 중 가장 첫 번째로 고민하는 게 분명 맞다.
휴대폰 배경화면에는 중요한 기념일 네 개가 적혀 있다. 오늘은 5896일째 되는 날이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될 수 있었던, 나란 사람을 사랑해서 평생을 약속해 준 여자가 내 아내가 된, 결혼한 날로부터 어언 6000일이 가까워지고 있다. 100여 일 더 지나 그날이 오면 눈깔사탕이라도 하나씩 먹으면서 기념해 볼까. 퉁명스러운 아내의 반응이 벌써부터 그려지지만 그런들 어떤가. 그렇게 또 흘러가는 것이 부부의 세월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