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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잭 슈렉 Mar 14. 2024

그때는 몰랐던 일들

지은지 30년이 훌쩍 넘은 오래된 개량 한옥. 아버지 형제의 자식까지 더해져 여덟식구의 대가족. 좁은 집. 좁은 방. 허름한 공간들. 때문에 반복적으로 발생되는 고루한 일상의 피로감들은 겨우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당시의 나는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마냥 해맑았고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그 중 유일하게 불편한게 하나 있다면 재래식 변소. 차마 화장실이라고 부르기도 힘들 정도의 말 그대로 '변소'였다. 하지만 그것을 아니 정확히는 '그것만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다. 길들여졌고 따라야만 했다. 결국 내가 택한 방식은 식구들 중 가장 먼저 일어나 볼일을 끝내고 머리를 감고 학교갈 준비를 하는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늦거나 순서를 빼앗기면 응가 직전의 배를 움켜쥐고 발을 동동 굴러야했고, 미적지근한 물을 써야만 했기 때문이다. 


재래식 변소만큼 집에서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은 아궁이였다. 연탄 두 장을 세로로 구멍 맞춰 달구면 방도 뜨끈해지고, 그 위에 물을 가득 채운 커다란 들통을 올리면 밤사이 뜨거운 물이 준비되었다. 물론 연탄을 갈때 일산화탄소를 두어모금 마셔주는건 익숙한 일이었다. 그 매쾌하고 약간 텁텁한 그러면서 동시에 약간 취하는 듯한 묘한 맛은 제법 중독적이었다. 하지만 오래 마시다보면 머리도 아프고 무엇보다 연탄불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불길에 얼굴이 일그러지기 일쑤였다. 


커다란 들통에서 밤사이 뜨거워진 물은 변소를 가장 먼저 쓴 내 몫이었다. 물론 내 뒤로도 들통 물을 쓸 사람들이 즐비하게 이어졌기에 물을 함부로 남용하는 것은 일찍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마당에 쭈그려 앉아 수돗물로 머리를 적신 뒤 비누칠을 한 다음 헹굴때만 뜨거운 물을 썼다. 딱 두 바가지. 그걸 찬 물에 섞어 미지근하게 만들어서 너댓바가지의 물로 만들면 말끔해졌다. 그리고 다시 찬물 두 바가지를 얼른 넣었다. 다음 누군가가 쓰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더 뜨거워질테니 말이다. 


그로부터 20년하고도 몇년이 더 흘렀다. 엄마는 유방암에 걸렸고, 머리카락도 많이 빠졌다. 그날은 세번째 항암치료를 받는 날이었다. 신혼초였는데 이직을 준비하는 시간이랑 맞물려 다행히도 내가 엄마의 모든 치료 일정을 동행할 수 있었다. 하룻밤 병원에서 보내는 항암치료도 거뜬했다. 엄마랑 오붓이 가까운 곳으로 놀러다녀오는 기분이 들었다. 의료기술이 좋아져서 다행히 고통은 크지 않았다. 훗날 완치도 되었다. 무릎 수술 할때의 깁스가 불편해 머리감는 것도 힘들었는데 암치료 과정에선 그런것도 없어 좋다고 농담도 하셨다. 하루 앞일도 모르는 사람이기에 그저 건강하시길 바라는 마음을 쓰는 그 시간이 힘들다면 가장 힘들었을 것이다. 


7인실 병원. 세번째라 엄마도 나도 항암치료 베테랑이 되었다. 부산스러울 것 없이 밤을 맞았고, 엄마는 내게 그리 자주 하지 않으셨던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당신 살아온 60여 년의 인생을 타임머신을 타고 순식간에 가로질렀다. 때와 장소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내내 엄마 혼자 짊어진 고통과 슬픈 감정들로 채워졌다. 마냥 듣기 힘들어 내가 알고 있는 엣날 이야기로 살을 붙였다. 그러자 엄마는 머뭇거리시더니 피식하고 웃으셨다. 


불편함을 덜기 위해 가장 먼저 일어나 응가를 싸러 가는 막내아들을 다 알고 계셨다. 다른 사람들은 펑펑 바가지에 뜨거운 물을 채워 맘껏 썼는데도 위로 형이 둘, 아래로 사촌여동생이 둘이라 그 물마저 아낀 나를 어디선가 보고 계셨다. 엄마를 도와 부엌에서 안방까지 밥과 반찬을 나르고 수저를 놓았던 분주한 아침을 고스란히 떠올리셨다. 넉넉하지 않아 번갈아가며 옷을 입기를 반복했었다. 비싼 옷은 아녀도 지저분하게는 입히지 않겠다며 퇴근하고 오셔서 내가 입은 옷을 손빨래 하셔서 다음날 아침에 입고가게 만들어주셨다. 


아침을 차려 식구들을 먹이는 중에도 엄마는 함께 밥상에 앉지도 못하셨다. 그럴 공간도 없었고 그럴 여유는 더더욱 없었다. 급한 빨래라도 해서 옥상에 널어야했고, 설거지까지 끝내고는 당신도 출근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가 머리를 감기 위해 들통 뚜껑을 들어 올리면 뜨거운 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고 하셨다. 물은 써도 채우는걸 대부분 아니했다고 하셨다. 찬물로 머리 감는 일이 일쑤셨다고 하셨다. 그 누구도 엄마를 위해 들통에 물을 남겨두지 않았었다. 


나 또한 공범이란 죄책감에 말을 잇지 못하고 굳어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넌 아니라고, 다 안다고, 엄마는 날 토닥여 주셨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 시간이 흘러 오늘날에 이르렀음을 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 말씀해주셨다. 짧지 않은 수다의 끝은 들통 이야기로 매듭을 지었다. 피곤하셨는지 금새 잠드셨다. 

보호자 침대에 누웠다. 잠이 들리 만무했다. 


그때는 몰랐던 일들... 아무도 몰랐던 일들...


미안한 마음은 기껏 눈물로 흘려보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팔을 뻗어 엄마 손을 잡았다.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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