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가 품은 문장 3
토지를 읽다 보면 마을 주민 한 명 한 명 조차도 주인공인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서사의 메인 주인공은 아마도 "서희"라는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토지 1부 1권에 처음 등장하는 '서희'는 몇 살쯤 되었을까요?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을 당차게 말하면서도 가끔씩은 돌보는 유모나 하인들에 의해 업혀 다니곤 하는 걸로 보아 대략 5-6살? 7살 정도나 된 꼬마 아가씨가 아닐까 생각 봅니다.
이런 어린 나이에 서희의 어머니, '별당 아씨'는 깊은 사연을 가지고 하인의 신분으로 들어온 구천이와 야반도주를 해 버립니다.
그야말로 야반도주입니다.
어린 서희에게는 하루아침에 엄마가 사라져 버린 것이죠.
결혼하고 아이를 길러본 부모라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 맘 때까지 아이에게 '엄마'란, '우주'라는 것을요, 그저 '세상의 전부'라는 것을요.
토지가 만난 문장 3
p.85)
"애기씨!, 아기씨!"
봉순네는 서희를 흔들어대었다. 서희는 눈을 떴다. 울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집념의 덩어리 같은 아이는 "엄마 데려와!"
쩅!하게 울리는 소리를 한 번 질렀다.
p.226)
"어머니가 그랬는데 그것 다 나 준댔어. 구슬이랑, 가락지랑, 비녀랑 그것 다 나 준댔어."
길상은 말이 없다. 서희는 실망한다. 요즘 서희는 엄마 데려 오라 하면서 패악을 부리지는 않았다.
차츰 엄마의 일은 뭔지 모르나 불가한 것이며 입 밖으로 내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아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보고 싶은 마음이 솟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꼬투리 잡아 울부짖었고 누구든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해 주었으면 싶을 때 그는 겉돌려 가며 방금 길상에게 한 것처럼 더듬어 보지만 아무도 그에게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서희의 마음이 자란 것이다. 슬픔은, 다른 아이들에게 보다 그에게 더 많은 지혜를 주었던 것이다.
"길상아."
"예."
서희는 공연히 불러보고 나서 등에 볼을 대고 구름을 본다.
구름은 강 건너 산봉우리에서 자꾸자꾸 피어올랐다.
이 문장 직전엔 다음과 같은 심청가의 한 자락이 울려 퍼집니다.
'해당화야 범나비야
꽃이 진다 설워마라
명년삼월 돌아오면
그꽃다시 피느니라'
아이들의 말과 마음은 즉각적입니다.
그래서 겉과 속을 재어 볼 것도 없이 투명하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러할까요?
어린 서희에게 아무도 갑자기 사라진 엄마의 존재를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무작성 엄마를 찾으며 엄마 데려오라고 패악을 부리는 모습과는 달리 서희는 속으로 무서웠을 것입니다. '진짜 엄마가 없어졌으면 나는 이제 어떡하지?' 서희 어린 마음은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엄마 데려와!"
쨍! 하게 울리는 소리를 한 번 질렀다.
저는 이 문장에서 엄마의 부재를 알아차린 아이, 그의 세상 전부가 송두리째 "쨍"하고 깨어지는 소리,
"엄마 데려와!"라는 외침에 맺혀있는 작은 아이의 압도적인 두려움을 느낍니다.
7살 혹은 10살 아이라 해서 그 마음도 작을 까요?
그 마음으로 견뎌내는 아픔도, 슬픔도 작은 것일까요?
어른인 우리의 것에 비하면 정말 콩알만 한 것이라 마음 놓아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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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제 아이를 키우며 알았습니다.
5살, 7살의 마음에도 아픔이 가득 차 버리면, 우리가 느끼는 것만큼이나 같은 무게의 아픔을 그 아이도 겪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7살이라 하여 그 마음 또한 '7살짜리의 마음'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박경리 작가는 이런 문장으로 서희의 아픔을 위로합니다.
서희의 마음이 자린 것이다.
슬픔은, 다른 아이들에게 보다 그에게 더 많은 지혜를 주었던 것이다.
왠지 '엄마'라는 말을 꺼내선 안 된다는 것을 혼자서 눈치껏 알아차린 지혜.
어린 서희가 얻은 지혜란 이렇게도 잔인하고 서글픈 것이네요.
몸은 더디게 자라 어린 모습이 애처롭기만 한데, 마음만큼은 훌쩍 자라 버린,
외롭고 슬픈 서희를 위로하는 이 문장이 마음을 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