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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Sep 09. 2024

<토지> 꼬막조개 초가지붕

낯선데 닮은 꼴


<토지>에서는 자연에 대한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가 참 많습니다.

도시에서 자란 저는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의 모습이 이렇게도 다채로운지 토지의 문장들로부터 알게 되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또한 배경에 대한 묘사도 읽을수록 감탄을 더하게 됩니다.

오늘 소개할 문장도 이 중 하나입니다.






토지가 품은 문장 3


<토지> 1부 1권, 마로니에북스, p.86

아침나절의 마을은 조용했다. 솜옷 입은 아이들같이 오목하고 따스하게 이엉을 갈아 씌운 황금빛 초가지붕이 꼬막조개 모양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은 이제 평화스럽고 한가한 겨울을 맞이한 것이다. 



초가지붕을 본 기억이 있으신가요?

저는 아이가 어렸을 때 민속촌을 갈 때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초가지붕들이 모여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멋진 양반가 한옥집들도 많지만, 옹기종기 모여있는 초가지붕들을 볼 때면, 왠지 정감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출처 : 경주 양동마을 네이버 이미지)




"한번 살아봐 봐~ 정감이 가겠는지!"

남편의 이런 핀잔에 몽글몽글해진 감성은 이내 날아가 버리곤 했지만, 다음 방문 때도 어김없이 같은 감정을 품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이들을 보며 '꼬막조'를 떠올려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초가지붕'과 '꼬막조개'라니!

어렸을 적 무심코 그렸던 반달 모양 초가지붕에 비하면 얼마나 섬세하고 탁월한지요?

전혀 다른 이 두 가지 사물 간의 닮은 꼴을 발견한 박경리 작가님의 표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낯선 사물을 연결하는 이 과감한 하이퍼링크가 어찌나 놀랍던지 필사노트에 그림을 그려 표현해 보기까지 했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이런 문장의 감각을 가질 수가 있을까요?

가끔씩 천재의 머릿속, 정확하게는 천재들의 영감이 반짝하고 빛나는 그 순간, 도대체 어떤 프로세스가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또 하나의 아름다운 문장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토지> 1부 1권, 마로니에북스, p.163

솜뭉치 같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는 하늘은 더없이 평화스럽다.
들판을 오가는 농부들의 모습에서도, 강을 따라 흘러 내려가는 똇목, 개천가에는 어미소를 따라다니는 송아지, 모든 것은 다 평화스럽다.

아무것도 더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더 잃지 않으려는 농부들은 또한 아무것도 더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더 잃지 않으려는 자연과 더불어 이 한때는 평화스러운 것이다.


이 아름다운 문장에서 저는 평화스러움이 어떤 것인지를 느낍니다.


아무것도 더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더 잃지 않으려는 농부와 자연처럼,


부족하지도, 넘치지 지도 않는 마음, 

좌로도 우로도 치우 지지 않는 마음,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마음, 

집착도 욕심도 기승을 부리지 않는 마음, 

고요하고 침착한 마음, 

흔들리지 않는 깊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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