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라는 것은,
소설 <토지>에는 일반 백성, 서민들의 삶과 현실이 살아있듯 생생하게 담겨있습니다.
마을 아낙네들의 대화, 장터 모습, 농사꾼들의 거친 말투, 일반 백성들의 가족 관계, 일상 등이 거칠고 무뚝뚝하지만, 필터링 없이 진솔하게 보입니다.
문장에도 생명이 있다면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생선 같은 펄떡거림이 그대로 느껴질 것입니다.
등장인물 중에 '윤보'라는 목수가 있습니다.
아내도 자식도 없이 그저 홀로 이곳저곳 떠돌며 목수일을 하다가 잠시 쉬어갈 타이밍이 되면 마을로 돌아오곤 하는 인물입니다. 가족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살고 있는 그가 자기 생일을 맞아 장터에서 미역을 사 오는 것을 보고 보고 심성이 악한 '칠성'이라는 마을 주민이 타박을 줍니다.
"객리고 자시고 혼자 살믄서 무슨 정에 미역국이오."
윤보는 그를 향해 대답하는데, 그냥 역정을 내는 정도가 아니라, 귀청이 떨어지게 고함을 지르며 말합니다.
"누가 미역국 묵고 싶다 카더나!"
토지가 품은 문장
마로니에북스, p.92-93
"이놈아! 잘 들어라! 생일이라는 것은 열 달 배 실어서 낳아주신다고 고생한 어매한테 정성 바치는 날이라 말이다! 니 같은 불효막심한 놈은 지 배애지 부른 것만 알았지, 이놈아!
사램이 사램의 근본을 알고 아가리에 밥 처넣으란 말이다!"
생일이란 온통 설레기만 하는 때는 전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오직 '나'만이 주인공인 날, 오늘만큼은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움직이는 날이었으니 '나를 낳기 위해 엄마의 살이 찢기고 고통의 극한을 겪는'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생일이 설렘보다는 하릴없이 나이를 먹고 있구나라는 자괴감을 더 느끼게 해 주기 시작할 때, 아니 그 또한 한참을 지나서야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저 또한 제 몸을 찢으며 아이를 낳고, 고통과 환희의 극한을 겪고 난 후, 그리고 그 덕분에 '엄마'라는 새로운 자아를 획득하고 난 후에야 비.로. 소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아닌 '엄마'의 모습을 말입니다.
이 세상 살아갈 생명을 얻게 된 날이니, 공식적인 주인공은 여전히 '나'일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저도 미역국을 끓입니다.
그전까지는 저를 위한 미역국을 스스로 끓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 생일에 가장 좋은 미역과 고기를 사고, 비싼 국산 참기름도 아낌없이 넣어서 기꺼이 저를 위한 수고로움을 자처합니다.
'열 달 배 실어서 낳아 주신다고 고생한 어매한테 정성을 바치는 날"이니까요.
윤보의 혼 내는 고함소리가 귓 가에 들리는 것 같지만, 내심 기쁘게 그 소리를, 문장을 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