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지아비를 가진 여인
영화나 소설에서 스토리에 힘을 주는 것은,
주인공뿐만 아니라 '악'의 축을 담당하는 인물인것 같습니다.
'악함'이 정점으로 향할수록 극의 긴장과 몰입감도 높아집니다. 한껏 절정에 달한 '악함'이 통렬하게 무너질때 감동과 카타르시스도 속 시원히 터집니다. 오히려 '악한 인물'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스토리가 힘을 잃고 지루해져 버리는 이 이상한 감정의 흐름을 저는 참 신기해하곤 합니다.
<토지>에도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다보니 처음 책을 읽을 때,
'착한 편' '나쁜 편' ' '악한 인물' vs '선한 인물' 등으로 인물 관계를 염두해 두곤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이런 이분법적 구분이 자꾸 맞아 떨어지질 않습니다.
악인인줄 알았는데, 선한 면이 보이고, 마냥 선한 인물인줄 알았는데 악한 내면이 있고...
소설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우리 인간은 경계가 모호한, 참 입체적 존재인것 같습니다.
<토지>에 "강청댁"이라는 마을 주민이 나옵니다.
동네 사람들도 다 인정하는, 잘나고 멋진 남자, '용'이라는 인물을 남편으로 둔 여인입니다.
남편이 그리 잘 난 사람이면 (혹은 그 반대로 부인이) 상대 배우자의 마음은 어떤가요??^^
의기양양하고 뿌듯할 것만 같은데, 그렇지만은 않나 봅니다.
토지가 품은 문장
마로니에북스, p.105
한 평생을 사람 기리는 것이 무엇인지, 일 속에 파묻혀 사는 농촌 아낙들, 그 중에서 과부라든가 내외간의 정분이 없는 여자들에게 야릇한 심화를 알게 하는 만큼 용이는 잘난 남자였고, 그 잘난 남자를 지아비로 삼은 강청댁은 불행할 수 밖에 없는 여자였다.
질투는 이 여자에게 영원한 업화였으며 사아이의 발목을 묶어둘 만한 핏줄 하나가 없었다는 것도 나상 불붙은 질투에 기름이었던 성싶다.
온 마을이 인정하는 잘난 남자를 남편으로 둔 강청댁을 두고 박경리 작가는 단지 '불행했다' 말하지 않고 '불행할 수밖에 없는 여자였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나라면 그저 불행했다라고 썼을 텐데 왜 굳이 이렇게 표현했을까?' 궁금했습니다.
'질투'가 그녀에게는 영환한 업화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너무나 잘난 남편이었기에 행여나 그가 다른 여인에게 마음을 품게 된다면, 그를 거절할 여인은 없을 것이며, 결국은 자기 것을 빼았길 것이란 분노와 증오감에 잡혀 살게 되겠지요. 게다가 강청책과 남편 사이에는 "서로의 발목을 묶어둘 만한 핏줄" 하나가 없었으니까요.
'질투'는 '후회'만큼이나 감정의 감옥인것 같습니다.
후회가 내 자신, 스스로에게 귀책사유를 부여하는 괴로움이라면, 질투는 상대방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다운그레이드 시켜버리는 더 못난 감정이 아닐까요?
실제로 강청댁은 남편 용이가 마음속으로 품고 있는 '월선'이라는 무녀의 딸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관련없는 일에까지 '강짜'를 부립니다. 그저 장날에 다녀오거나 논밭일 와중에 긴 한숨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남편을 보면서도 끝임없이 의심하고, '월선'이라는 여인을 만나러 갈 것이라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토지를 함께 읽은 멤버님들은 이런 강청댁을 의부증, 강박증에 가깝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강청댁을 '불행한 여자'가 아니라, '불행할 수밖에 없는 여자'라 표현한 이유를 알 것만 같습니다.
외부 상황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행하게 된 여자가 아니라, 스스로가 이런 질투의 감옥에 자신을 가두어 버린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비교'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더 나은 해결책이 아니라, 비교 자체에서 멈추어 버릴 때 우리 감정은 처참해 집니다. 남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면 자괴감에, 우월하다 생각되도 언젠가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니까요. 그래서 또다시 끊임없는 비교의 굴레가 시작되니니까요.
강청댁이 "나는 이렇게 잘난 남자를 남편으로 둔 능력있는 여자다"라고 당당하게 자신을 높게 평가하고 자존감을 지켰다면 어땠을까요? 귀한 것을 손에 쥐고도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며 불안하고 의심하며 살지 말고, 귀한 것을 가진 자신을 사랑하고 감사하며 넉넉한 마음으로 세상을 대했다면, 자신이 만든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만 같습니다.
그렇지 못했기에 그녀는 '불행할 수밖에 없는 여자'였던 것입니다.
한 줄의 문장을 쓰면서도 박경리 작가가 얼마나 깊은 성찰과 사유의 과정을 거쳤을까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천재적인 재능이 있으니까 그저 펜가는 대로 쓰면 주옥같은 문장이 뚝딱!하고 나올 것만 같건만,
그녀에게도 글쓰기란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이었던것 같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귀한 문장들을 만날 수 있는 책, 읽는 시간이 설레입니다.
"불현듯 글로써 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두려워질 때가 있다. 내 감정을 억누ㄹ고 가슴 속에 들어찬 말을 줄여 정제된 표현을 하려는 이 인내심에는 억압적 속성이 있는데,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감정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이성간의 모순 사이에서 늘 도망자가 되어 글을 쓸 용기를 잃을 때가 많다"
"글을 쓰지 않는 내 삶의 터전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 목숨이 있는 이상 나는 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고, 보름만에 퇴원한 그날부터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토지>원고를 썼던 것이다.
백장을 쓰고 나서 악착스런 내 자신에 나는 무서움을 느꼈다. 어찌하여 빙벽에 걸린 자일처럼 내 삶은 이토록 팽팽해야만 하는가. 가중되는 망상의 무게 때문에 내 등은 이토록 휘어들어야 하는가. 나는 주술에 걸린 죄인인가. 내게서 삶과 문학은 밀착되어 떨어질 줄 모르는, 징그러운 쌍두아였더란 말인가. 달리 할 일도 있었으련만,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었으련만... "
-박경리, <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