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리 Nov 26. 2024

아빠로서 모든 책임 다 할 것

당신에게 질문을


최근 정배우의 행보에 우리 사회가 들썩인다.

안 그래도 온 국민의 뜻과 마음을 모아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가 산더미건만...

예리해야 할 우리의 중추신경이 무뎌진다.



"양육에 책임은 다 하겠다. 하지만, 결혼은 아니다."

"ㅁㄱㅂ는 당당했고, 정ㅇㅅ은 책임졌다.., 출산한 아들 양육 끝까지 최선 다할 것"

(출처 : 각종 일간지)





배우이기 전에 한 개인이니, 그의 사생활에는 관심 없다.  그러니 훈수 놓을 생각도 없다.


나의 관심은 그가 말한 "출산한 아들에 대한 책임"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당당하게 말했으니, 그 '책임'이라는 것을 실천할 생각도 있겠지 싶다.

그는 과연 어떤 행동으로 '아빠의 책임'을 지려는 걸까?


부모로서 내가,  특히 남편이 보였던 아빠로서의 책임을 되짚어 본다.


전형적인 야행성이던 남편은 아들이 태어나고, 새벽잠을 못 잤다.

늦게까지 우는 아이를 돌보다 지쳐 잠들어 버린 나를 대신해서 유일하게 꿀잠 잘 수 있는 새벽시간에 일어나 보채는 아이에게 우유를 먹였다.


이틀 동안 응가를 못했던 아들이 삼 일째 황금똥을 누었을 때 로또 당첨이라도 된 듯, 마냥 기뻐하던 남편의 얼굴이 생각난다.


"와, 드디어  ㄸ 이 나왔어~~~~ 이제 우리 걱정 안 해도 돼"


우리 부부는 진짜 손뼉을 치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열이 너무 높아 그 작은 몸이 추운 듯 떨리기 시작할 때,

남편은 두려워서 밤을 새웠다.


초등학교 1학년 첫 운동회날,  아침 먹고 체해서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된 아들을 업은 채,

300m나 떨어진 학교 근처 병원으로 전속력을 다해 달리던 남편.

온통 땀범벅이 된 그의 얼굴과 젖은 옷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그는 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들이 잠들기 전까지는 잠을 잘 수 없는 아빠.

그저 커튼을 닫아주고, 불을 꺼 주고, 방 안의 온도와 습도를 확인하는 그 작은 루틴을 위해서이다.

그 일을 아이가 태어나서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하루도 빼먹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아는 아빠의 책임은 이런 것이다.


양육비를 주는 것,  같은 집에 살지는 않지만 언제든 만나주겠다는 약속,  원하는 것들을 다 해줄 수 있는 경제적 능력치, 설마 정배우는 이 정도를 아빠의 책임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같은 집에 사는 것이 뭐 대수냐?

같은 집에 산다고 아이 잘 키우는 거냐?

차라리 떨어져 사는 것이 애한테 더 좋은 경우도 많다.


라는 말에 나 또한 '아니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에 대한 책임은 "곁"을 내주는데서 시작한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마음의 곁이니 이런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곁".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 속에 존재하는 "곁"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 아빠의 책임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든 물질적인 환경이 다 갖추어져 있다 해도 눈을 떴을 때, 눈을 감을 때, 내 하루의 일상에서 아빠의 존재가 늘 있었다는 기억이 없었다면....   아빠의 강한 책임감으로 남는 것은 무엇까?

이따금씩 찾아오는 손님 같은, 언제나 멋진 차림, 최고의 음식을 사주던 아빠는 아니었지만,   

때로는 러닝셔츠에 맨발 차림으로,  때로는 라면에 햇반을, 배달음식을 나눠먹던,  그저 생각 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에 화내고 혼내기도 했던 우리 아빠.


아빠는 이런 모습으로 나를 책임지며 살아오셨다.     

나에게 뭔가를 해 줄 수 있는 능력 덕분이 아니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힘들고 지친 일상에서도 언제나 함께 있어주던 모습,  

짜파게티에 달걀프라이처럼 작고 소소한 일상을 함께 나누며 웃음을 나누는 모습,

내 아픔과 실패 앞에 당신 가슴을 쓸어내리며 애써 눈물을 삼키던 모습으로.


남편이, 우리 아빠가 보여주었던 일상의 그런 작은 책임들이 지금 나믿음이고 선한 의지가 되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마주 볼 기회가 있다면

나는 정중히, 하지만 분명히 물어보고 싶다.


책임감은 능력이 있기 때문에 보장할 수 있는 당연하고 안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전함보다는 불안과 고통이 따르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함께 곁을 나눌 때 그것이 책임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정배우,

당신이 말하는 아빠의 책임은 어떤 것인가요?

서로의 "곁"을 내주는 가정을 이루지 않아도,  무엇으로 아들을 책임질 있겠는지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저 또한 덕분에 다시한번 제 스스로에게 묻고, 반성하고, 성찰해 봅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진정한 책임이란 무엇일까?....  라구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