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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Jun 17. 2024

휴식은 어디서 배우나요?

열심히 사는법만 배웠을 뿐,

아직 6월인데 30도 라니.

무더워지고 여름이 시작될 때면 떠오르는 것들...


팥빙수, 수박, 콩국수, 냉면.. 그리고 그 책.

계절 음식처럼 한여름을 열어주는 이 책도 그 중의 하나이다.


<풍덩!> 우지현 그림에세이

부제 : 완벽한 휴식 속으로



'아, 휴식도 열심히 사는 것 만큼 배워야 하는거구나'

'잘 쉬는 것도 정말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 준 책이었다


이 책은 휴식, 특히 물과 함께하는 휴식을 떠올리는 많은 명화 작품과 함께 한다.

우리 삶과 휴식에 관한 작가의 주옥같은 사유가 이들 명화와 함께 에세이 형식으로 담겨 있다. 


멋진 명화를 보는 재미,  삶과 휴식에 관한 통찰이 주는 기쁨을 고스란히 느껴볼 있는 책이다. 








p.24

휴식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살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구구단도 배우고 관계대명사도 배웠다. 교통규칙도 배우고 공중도덕도 배웠다. 그러나 휴식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는 배웠지만, 살아가는데 있어 쉬는 것이 필요하다는 건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은 배웠지만, 왜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배우지 않았으니, 잘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휴식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저 쇼파나 침대에 몸을 던지고 한동안 꼼짝도 않고 누워있기

그러다 폰을 찾아 웹서핑이나 SNS를 유영.

스르르 잠들었다 화들짝 놀라 깨어나기.

'아, 내가 왜 이랬을까' 후회나 자책하기.


그동안 내게 휴식시간은 이런 패턴이었던 것 같다.

열심히 일한 후에야 조금은 내게 허락할 수 있는 시간.

인색하고 주고, 주어졌다는 자체가 무조건 후하게 평가되는 시간.


내 삶에서 지나치게 평가절하 되었던 쉼의 시간에 좀 더 '가치'를 부여하고

가치있게 잘 쉴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p.171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은 '열정'이 아니라, '자해'다.


나를 따끔하게 혼내주는 듯한 문구였다. 

죽도록 열심히 일한 나는, 충분히 쉬어버린 나보다 언제나 더 월등했고 뿌듯했다.

'그렇게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구나....'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해하고 있었던건 아닐까? 

나는 내 열정을 의심해 보기도 했다.






p.66

휴식의 해답은 "현재"에 있다.

몸과 마음과 정신을 현재에 두는 것이다. 이를 테면 침대에 누워 지난날의 실수를 곱씹지 않는 것,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밀린 설거짓거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내일의 고난을 상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직 오늘에 충실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몰입하고 즐기는 것이다.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으면

오롯이 쉴 수 없다. 언제나 휴식은 현재 시제에서만 가능하다.


내가 살고 있는 시간은 정작으로 "지금, 현재"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현재는 과거나 미래에 의해 언제나 방해받는다. 그것이 쉼의 시간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었다.

휴식 시간만큼은 순도 100% 현재에 충실해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p.80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처럼 우울은 물에 녹는다. 

기분이 찌무룩할 때 따뜻한 물로 샤워하면, 거의 즉각적으로 기분이 달라진다.


책이 휴식을 특별히 수영이나, 바다, 물과 연계되어 말하는 이유가 때문일지 모른다.

우리의 생명이 엄마의 자궁안, 물 속에서 탄생하였기 때문일까?  

우울과 같은 내면의 슬픔이 물에 의해 위로받는다는 사실이 그저 상징적인 표현_blue와 관련된?!-이 아니라, 

나에게는 유용한 일상의 팁이 되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거나 사우나를 하고 나면 정말 거짓말처럼 충분히 쉬고 난 후의 '전환'을 만나게 된다.







p.80

세상의 꽤 많은 문제들은 그냥 흘려보내는 것으로 해결된다.


'흐르는 강물처럼...'  말이다. 이 문장을 읽자마자 나는 책 벗과 마주앉아 대화하듯 이렇게 대답하고 책에 메모를 해 두었다.  '그렇게 언젠가는 흘러갈 것이구나' 나는 우울과 슬픔의 감정을 담고 있을 때 이런 생각으로 내 쉼이 방해받지 않도록 애썼던 것 같다. 





나는 왜 그토록 '나의 쉼'에 당당하지 못하고 인색했을까?

나는 과연 내 휴식의 주인이었나? 


이 책이 내게 준 반성의 과제였다.




쉼과 휴식에 인색했던 건 그것을 "낭비해도 괞찮은" 시간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있으면 좋지만, 없으면 할 수 없는 것.

없어도 되는 것이지만, 그래도 여유가 있으니 잠시동안은 허락할 수 있는 것으로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자, 휴식이야 말로 내 삶을 이끄는 동력이란 생각을 했다.

잘 쉬어야 몸과 마음은 충전되고, 에너지를 채울 수 있다. 

그 에너지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


나는 내 휴식의 주인이었나?

대답은 No.

내 일상에서 휴식의 주인은 아마도 인스타와 유튭이 아니었을까?

SNS의 알고리즘이 "갑"이 되니, 나는 "을"의 입장에서 그것이 이끄는 대로 이러저리 시간을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쉴까?"

거창한 휴가 시즌, 장거리 여행이 아닐지라도,

일상의 작은 시간, 틈새 시간이라 해도 나는 이런 고민에 충분한 가치를 두기로 한다.

휴식시간을 아까와 하지 않고 충분히 크고, 깊게 누릴 것이다.

SNS의 알고리즘 따위에 내 휴식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휴식의 주인으로 쉬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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