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밤에
유난히 무더위가 지독하게 길었던 여름이 진짜 가려나보다. 낮부터 반가운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분다(현재 기온 22도!). 비가 내리면 시원하다든가, 기온이 내려가 기운이 나는 게 아니라 더 습해지고 더 끈적이는 날씨로 힘들었다. 비를 좋아하지만 비를 달가워할 수만은 없었다.
작년부터 병명을 확정할 수 없는 얼굴의 붉어짐으로 너무 괴로운 여름이었다. 더울수록, 해가 뜨거울수록 얼굴에서 열이 나고 빨갛게 변한다. 시원한 곳으로 가지 않으면 붉어지다가 빨개지다가 발진이 생긴다. 양산은 필수이고 손풍기, 목풍기도 늘 가지고 다녔다. 이번 여름엔 손에 동상까지 겹쳐서 장갑까지 끼고 다녀야만 했다.
작년엔 속수무책으로 갑자기 당한 일이라 더 힘들었다. 7월에 예약한 베트남 푸꾸옥 여행을 앞두고 얼굴에 탈이 나서 난감했다. 병원에서 치료를 잘못받아서 호빵맨처럼 붓고 진물이 나고 살갗이 다 벗겨졌다.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몸의 상태를 경험하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원래 다니던 단골 피부과에서 진료의뢰서를 받아 종합병원으로 가서 상태가 좀 호전되었다. 여행은 무리라는 의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약을 처방받았다. 취소 불가능한 푸꾸옥 여행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여행 내내 별 탈없이 잘 지내다 한국에 돌아왔다.
답답함에 병명을 묻는 내게 의사는 병명을 특정 지으려고 하지 말라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하고 약을 먹으라고 했다. 홍조라고 했다가 주사라고 했다가 알레르기라고 했다가 호르몬 문제도 상관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작년 2월부터 다니기 시작한 피부과 건물에 드나드는 일에 익숙해졌다.
항생제도 최대치를 먹었고, 이식수술을 앞둔 사람이 먹는다는 면역력 억제제도 몇 달 복용을 했다. 연고도 몇 가지씩 발랐고, 두세 달간 먹으며 1~2주 간격으로 처방을 받기를 반복했다. 작년에 진료의뢰서를 가지고 종합병원 피부과에서 접수를 하고 기다렸던 3시간은 내 인생에 괴로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얼굴은 퉁퉁 붓고, 피부가 벗겨진 채로 화끈거리고 따갑고 아픈데 코로나로 마스크를 써야 했다. 내 콧김이 어찌나 뜨거운지 쓰라림에 눈물이 났다. 얼굴이 아프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거울을 볼 때마다 우울이 자라났다. 의사는 거울을 보지 말라고 했다. 약을 발라야 하는데... 아픈데 어떻게 안 볼 수가 있나...
작년 여름은 에어컨과 선풍기를 켜고 집안에 칩거하며 지냈다. 사람을 만나는 게 꺼려졌다. 더워서 나다닐 수가 없었다. 몸은 멀쩡한데 얼굴이 탈이 나니 의기소침해지고 말았다. 찬바람이 불기만을 기다렸다. 처방전을 받아 스위스 한달 여행에 가져갔다. 스위스의 맑은 공기와 아름다움에 정화되고 트래킹으로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경험에 의한 대처능력이 생겨서 적절히 대응할 수 있었다. 질병이란 것이 얼마나 인간을 무기력함으로 침잠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 더 많이 놓이게 될 것이다. 그 상태를 인정하며, 달래 가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건강하게 살다 죽고 싶다.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몸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적게 먹고 많이 걷고 운동을 해야 한다. 1일 2식을 한 지 2년이 되어간다. 헬스에 다닌 건 3년 전부터지만 요즘은 여름이라는 이유로, 바쁜 취미생활을 핑계로 가지 않고 있다. 다시 새 마음으로 시작해야겠다.
어제까지만 해도 32도가 넘는 여름날이었는데...
무슨 9월이, 추석이 이렇게 덥냐고 욕지기가 났는데 지금은 바람이 차갑게 느껴진다. 그 시원함이, 차가움이 너무나 반갑고 좋아서 주절주절 끄적이고 있다. 긴 여름더위로 힘들었지만 하고 싶은 일은 하면서 보낼 수 있었기에 감사한 시간이다.
>>덧붙이는 말 ; 제가 최애하는 가수 김동률의 “여름의 끝자락”을 들려드립니다.
https://youtu.be/YVB8vL7rBjY?si=cReprbMnAqWMyfM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