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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러나 Dec 08. 2023

명품백이 필요 없어진 건에 대하여

나의 명품 일대기

명품에 눈을 뜬 건 2018년 겨울, 전 세계의 부를 움켜쥔 명품회사에 다니면서부터였다. 일론머스크를 제친 세계 최고부자의 그룹사, 여자들이 예물로 그렇게 받고 싶어 한다는 그 백이 있는 곳이었다.


그 업계는 보이는 게 중요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출근하면 위아래로 상대의 룩을 스캔한다. 회사에서 하는 행사, 제공하는 물건, 먹는 것, 선물하는 것도 고급스러운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 덕분에 '있어 보이는 것' '귀티 나 보이는 것'을 자주 접했다.


그렇게 명품의 세계에 눈을 떴다. 로고가 적혀있지 않아도 뉘앙스와 분위기만 봐도 특정 브랜드를 떠올릴 수 있었고, 상대가 어떤 명품을 하고 왔는지 기가 막히게 캐치했다. 좋게 말하면 고급스러운 안목이 생겼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나도 모르는 새에 허영심이 자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돈을 많이 버는 직종이 아니었으므로 명품을 열심히 사들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갖고 싶다는 목마름은 늘 꺼지지 않았다. 그래서 명품 가방, 목걸이, 옷, 신발을 가진 지나가던 행인 1, 행인 2가 늘 부러웠다. 보고 싶지 않아도 명품이 반짝이듯 보였고, 지나치고 싶어도 머릿속에 끊임없이 맴돌았다.


그러다 드디어, 나도 누군가로부터 어엿한 명품가방을 선물 받게 되었다. 그 회사의 것이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나는 계속해서 명품을 선호했다. 여러 개를 모으지는 않았지만, 명품 선물 받는 걸 좋아했고 또 선물해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귀중하게 여겼다.


그런데 그 명품은 퇴사보다 결코 비싸지 않았다. 여러 계기와 인내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퇴사를 마음먹었을 때, 내집마련과 결혼을 미룰 각오, 명품을 사지 못할 각오, 어쩌면 명품을 팔아버릴 수도 있겠다는 각오로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마지막 출근 이틀 뒤, 제주에 내려가기 위해 짐을 쌌다. 짐을 싸보니 내가 가진 물건들이 알곡인지 가라지인지 나뉘었다.


그 안에 명품이 있었을까?





하나도 없었다. 명품은 단 하나도 가져가지 않았다.


명품을 가져갈지 말지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필요 없어서였다. 군더더기를 다 덜어내고 나를 찾으러 간 여정에 고급진 것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바위 위에 철퍼덕 앉을 수 있는 옷과 모래 위 던져놓을 수 있는 에코백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게 명품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구나.' 그렇게 제주에서 명품 없는 삶을 살게 됐다.


사실 돌아보면, 명품이 좋았던 이유는 '그 브랜드의 심벌이 나를 말해주는 것 같아서'였다. 이걸 뜯어보면, 나의 가치보다 명품의 가치가 높으므로 명품에 올라타보겠다는 생각과 같았다. 도대체 언제부터 나의 존재와 소유를 연결시키고 있던 걸까. 내 자존감은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스스로의 가치가 명품보다 못한 것 같다는 솔직하고 발칙한 생각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니, 비로소 나의 모든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의 작고 빨간 국산 자동차를 미워하고 창피해했던 것,


명품 가방을 들고 백화점에 가서 '나는 도비가 아니라 너희의 고객이다'  라며 우쭐대기도 했던 것


일상 속에서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걸 은연중에 보여주려 했던 것

그야말로 거품이 잔뜩 낀 모습들이었다.


다행히도 그 거품은 시간이 지나면서 뜨거운 제주의 태양에 증발되기도 하고 바람에 사라지기도 했다. 제주에서 건강한 삶을 살며 명품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나 자신의 가치를 알게 되었으니 자연스럽게 명품에도 관심이 사라졌다. 명품보다 중요한 건 내가 오늘 잘 잤는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뭘 느꼈는지, 뭘 먹었는지, 운동은 했는지, 삶에 감사하는지,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지, 사람을 사랑하는지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명품 없는 삶이 4개월쯤 되었을 때, 나는 명품가방을 팔아 제주 깡시골의 삶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런 일기를 썼다.




셀린, 디올, 올드머니룩이 다 무슨 소용인가. 오일장에서 팔천 원짜리 티셔츠와 오천 원짜리 바지를 사 입어도 신나는 시골생활이다. 즐겨 입지 않던 반팔티와도 이미 많이 친해졌다.

무엇을 입었는지 보다 뭘 입어도 상관없는 몸이 되어가는 게 좋은 늦여름!
판교의 아침엔 주식얘기, 부동산 집값, 비트코인 얘기로 가득 찼다면 이곳의 사람들과는 갱신한 달리기 기록과 새로 산 운동화 성능, 오늘 든 바벨무게와 크로스핏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여러 가지로 사랑스러운 삶이다.

이곳에 와서 영화나 드라마를 틀어본 적도, 명품을 검색해 본 적도 없다. 누구는 이곳에서는 유흥이나 재미난 일이 없다고 하겠지만, 내겐 그냥 하늘민 쳐다봐도 재밌고 사람의 따스함이 제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디올의 팔백만 원짜리 가방보다 제주에서의 1년을 사고 싶다.

올리브영이랑 탕후루가 동네에 없다는 것 빼고는 다 좋음!


본디 태어났을 때부터 셀린느를 입었을 것 같은 집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상,  입생로랑을 마트 가듯 갈 정도로 내 힘으로 거대한 부를 벌어들이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내게 명품은 계속 본질과는 거리가 멀 것 같다.


하이엔드 주얼리를 목에 매다는 것보다 미대에 다녔던 친언니에게 오르세 미술관을 보여주려 적금을 들고, 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가끔은 신발이 없어서 맨발로 걷는 먼 땅의 아이들에게 몇 켤레를 선물하고, 암환자의 가족들에게 힘이 되는 사회적 기업에 돈을 쓰는 게 더 가치 있다고 느껴졌다.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다.


그러나 바쁘고 돈 많은 게 제일인 어느 도시에 다시 살게 된다면, 다시 거품 속에서 헤엄치는 삶을 살 수도 있겠다. 나는 너무 약하고 물렁거리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언젠가, 돈을 많이 벌게 된다면 이 글을 내게 꼭 읽혀주고 싶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의 방식이, 돈을 쓰는 방식이 정말 원하는 게 맞는 것인지. 본인의 가치와 소유를 연결 짓는 허망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진실된 나를 만나고 원하는 삶의 방식을 그려나갔던 그 해 여름을 떠올려보기를, 부드럽게 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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